BOPBOY's JAZZ BAKERY


리차드 커티스는 <러브 액츄얼리> 이후 6년만인 2009년 <락앤롤 보트 The Boat that Rocked> 라는 영화를 연출했다. 이 영화는 아마도 다시 오지 않을 Rock 의 르네상스 시대인 1960년대 Rock 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또한 같은 이유로 60년대 락음악을 숭배하며 점점 불씨가 꺼져만가는 락을 안타까와하는 우리같은 구닥다리들에게는 눈물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60년대를 풍미한 수많은 락앤롤 명곡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BBC 따위가 틀어주는 모범생이나 들을 법한 음악만 듣고 살아야 하는 세상은 싫다. 영국의 청춘들은 바다에 배를 띄우고 24시간 락앤롤만 쏘아대는 해적 방송을 몰래 들으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Cat Stevens 의 <Father and Son> 이 흘러나온다. 해적방송을 없애기 위한 정부의 집요한 노력 가운데에서도 버티던 락앤롤 보트는 결국은 침몰하고야 하는데 그때 흐르는 곡이다. 아버지는 60년대를 황금빛으로 물들인 수많은 락의 명반들을 구해 내려고 몸부림치지만 몸은 가라앉기만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구하려 한다. 락을 구해내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중주.

내가 만약 아들을 낳은 후 언젠가 수많은 락의 명반들을 버려야만 목숨을 건지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그리고 나의 아들이 나를 구하기 위해 그 명반들을 모두 버리려고 한다면, 세상에서 이토록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락이 사라진 적막한 시대에 아들에게 전설이 되어버린 락을 들려주기 위해 그 수많은 명반들을 남기려고 한 것이며 그것이 곧 '삶'이었을텐데...


ooo



아버지
지금은 변화의 시기가 아니란다. 그냥 편하게 받아 들이렴. 너는 아직 어려서 세상을 잘 몰라. 알아야 할 것이 참 많거든. 우선 여자 친구도 사귀고 직장도 잡고 해라. 원한다면 결혼도 할 수 있지. 이 아버지를 봐라. 나는 늙었지만 행복하잖니.

나도 한때 너와 같은 적이 있었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만히 참고 있기가 쉽지 않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좀더 해 보렴. 네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거야. 너는 내일 이곳에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너의 그 꿈은 아닐 수도 있거든.

아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아버지는 다시 외면하시죠. 늘 그래 왔고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네요. 저는 제가 말할 수 있던 날부터 아버지로부터 듣기만을 강요당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길이 보이거든요. 그리고 이제 멀리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내가 아는 그 모든 것들을 나 홀로 속으로만 간직하며 숱한 시간들을 울어 왔어.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기가 너무 어렵거든. 만약 부모님이 옳은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따를 수 있겠지. 그런데 그들이 아는 것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세상일 뿐이지 나와 나의 세상이 아니잖아. 그래 지금은 길이 있어. 나는 떠나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

+++

지금 이 나이에 그 숱하게 지난 5월 8일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40년이 지난 이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생각한다. 또한 지난 수십년간의 이 땅의 기성 세대와 20대들의 대화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 이 땅을 뒤덮은 어르신네들의 권위와 억압,과 어떻게든 그 어두움에서 밝은 햇살 한 줄기를 희망하는 청춘들의 저항과 도전,과의 대화를 생각한다.

지금이 변화의 시기가 아니라구요? 천만에요. 늘 지금이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세상을 잘 모른다구요? 그렇다면 지금 제 눈 앞에 펼쳐진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 땅이 세상입니까?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시다구요? 아이들은 배고파 울고 청춘들은 외로와 울고 부모들은 일이 없어 우는 세상에서? 저는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970년 발표된 Cat Stevens 의 네번째 앨범이자 명반 <Tea for the Tillerman> 의 열번째로 수록된 <Father and Son> 은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이다. 당시 서구 사회의 세대간 갈등을 이토록 아름다운 멜로디로 그려낸 곡이지만  세상은 늘 깨우치지 못하거나 변절하는 어른과 그들에게 반항하고 도전하는 청춘의 격론을 담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일 수도 있고, 독재자와 국민의 격돌일 수도 있다.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의 품을 떠나 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살아 가면서 그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행복일 것이요, 누구에게는 고통일 것이며, 누구에게는 절망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그 고통을 기꺼이 행복으로 변절시키고 자식들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타인의 절망으로 이루어진 행복의 껍질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기꺼이 절망의 맛을 보는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절망의 맛을 보았을 때 그 절망은 희망이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 억압과 저항의 격돌이 끊이지 않는 격랑의 시대 어버이날에 이 땅의 모든 뜨거운 청춘들이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는 꽃은 그 절망이라는 씨앗에서 맺은 희망이라는 결실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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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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