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Jose Saramago) 주제 사라마구라는 포루투갈 작가가 1995년 그러니까 그가 70대 초반에 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 을 최근 읽었는데, 그렇게 쉽게 읽어 나간다거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듯 하다. 원제를 영어로 번역 돌려보니까 <Test On the Blindness> 라고 나온다. '실명에 관한 테스트'...


일단 유럽에서 포루투갈이라는 나라의 위치와 그 역사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구체적이기보다는 막연하게만 스케치가 가능하다는 느낌이다. '실명'에 관한 테스트라고 했으니까 작가는 아무래도 실명 상태의 경험 전후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 같고, '실명' 자체에는 다중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 철학, 인류학, 경제, 정치, 사상 등등등...

그러니까 일종의 사고의 틀을 제공한 셈이라는 거다. 그 공간을 역사로 채우면 "역사적 실명에 관한 테스트", 경제로 채우면 "경제적 실명에 관한 테스트", 사상으로 채우면 "사상적 실명에 관한 테스트". 즉, 역사적 실명, 경제적 실명, 사상적 실명 등등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해보라는 것. 우리의 정치나 역사 인식은 과연 눈뜬 장님 상태는 아닌가, 실명이 되고 나니 펼쳐지는 토나올 정도로 더러운 그 실체와의 조우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은 아닐까, 뭐 그렇다는 거다.

의도적으로 문장부호도 없고 화법의 구분도 없애 버려 꽤나 집중력을 요구하게 만드는 이 소설의 화자, 즉 담담하게 실명한 인간들이 연출하는 장면을 묘사하고는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는 그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이 실명 경험의 충격 영상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 눈뜬 화자의 입장에 서게 만든 다음 실명한 인간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여 철저하게 독자의 경험과 추억과 느낌을 이입을 해서 실명에 관한 테스트를 치루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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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격한 '실명'에 관한 테스트, 그 결과에 관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실명에 관한 테스트를 통해서 지금 우리들 눈 앞에 있는 햄버거에 관한 진실 게임을 해보자는 거다. 지금 누가 누구를 속이고 속고 있는 건지, 그 공포의 도살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양배추는 도대체 어떻게 재배되고 있는지에 관하여 백색 실명 공포의 도가니탕에 한번 빠져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허우적 대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진실을 접한 다음 그 공포에서 깨어나 보자는 거다.

실명의 혼돈 속에서 드러나는 그 실체들, 우리가 그동안 먹은 햄버거가, 광우병 걸린 소의 SRM 물질 잔뜩 발라진 살코기를 갈아서 다지고 뭉친 다음 기똥찬 바베큐향 나는 100% 인공 감미료를 잔뜩 친 패티와 도대체 어떻게 재배가 된지도 몰라 농약 덩어리인지 아닌지도 모를, 그리고 도대체 또 어떤 농업을 파괴시키고 수급한 것인지 알 길 없는 양배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나에게는 이것이 관심있는 '실명'에 관한 테스트 중 하나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소고기가 식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경시하는 인간에 의해 그 인간성이 파괴되고 오염되고, 그래서 소고기 정치를 하는 정부를 오염시키고, 이윤창출에 눈이 멀어 원산지를 속여 팔아대는 마트를 오염시키고, 그것을 사먹은 국민들이 온 나라 여기저기에서 신음하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한 것을. 이 정도면 가히 실명상태에서 경험할 만한 아비규환 아닌가... 이 과정에서 눈먼 사람들 많이 눈 뜨긴 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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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속에서도 실명 상태에서의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의식과 윤리와 존엄성에 대해 중대한 시험적이면서도 위협적 매개체로 등장시키는 것들이 바로 식량이다. 육체적 양식 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까지 포함해서. 이 이야기는 사실 작은 식량 전쟁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확보한 식량을 먹고 싸고 똥칠하고 또 더 먹겠다고 싸우고 또 먹고 또 싸고. 그러면서 생존의 공간은 지옥이 된다.

정신병원에 갇힌 이 실명자들은 가장 먼저 그들 각자의 생존부터 걱정하기 시작한다. 정신병동을 선택한 이유는 연출되는 공간 한정의 의미도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인간의 정신을 치료하는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건강하지 못한 인간 생존의 실체적 의미를 접하게 하려는 의도같기도 하다. 어쨌건 생존이란 곧 '식량 확보'를 의미한다. 소설 속 위기는 식량을 그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정치의 위기, 역사의 위기, 인간 존엄성의 위기의 시뮬레이션이기도 하다.

그 생존의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고 악과 폭력적 남성성이 '식량 확보'를 통해 구체화되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추락하는 것을 실명자들은 체험하고 이 소설의 화자, 즉 독자도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 홀로 실명하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그들의 윤리 및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리더가 되면서도 백업을 조용히 그리고 기꺼이 해낸다. 그 지위는 일종의 영웅과는 다르다. 구원자라기보다는 그 존엄성 추락의 목격자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그 상황에서는 차라리 실명상태가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페스트에 걸려 죽어 나가듯 그 백색 실명의 엄청난 전염성 때문에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되던 실명자들은 나라의 지도자를 포함한 온 나라 사람들이 실명을 하고 군대를 포함한 인간이 만든 모든 시스템이 정지할 때 비로소 불태운 정신병동을 탈출하게 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세상이 다 눈멀고 모든 것이 정지하자 이 실명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다니... 전염병 파상공세에도 전염되지 않는 여인의 의미, 사실 이런 것들이 꽤나 흥미로운 요소다.

의사의 아내는 그녀와 함께 탈출한 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편안한 안식처로 가서 그곳에서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일 벌거벗은 세 여인네의 우중 발코니 목욕을 한다. 똥과 오물로 더럽혀진 몸을 씻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해 내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들은 깨달았을 거다. 진짜 '인간'이 무엇이며 그들은 왜 사는 것인지.

아울러 역사, 철학, 정치, 문화, 사상, 인류, 경제 등등의 존재 의미와 각각의 존엄성은 정말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며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도 비슷하게 생각될 수 있을 듯 하다.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을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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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고의 틀에다가 주인공으로 줄리안 무어를 비롯한 영화배우들을 넣고 이 소설을 영상으로 재현한 작품인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Blindness 2008> 는 사실은 관람 그 자체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독자가 소설 속 화자로서 상상하던 그 인간성 및 존엄성 추락의 현장을 어떻게 보면 책 내용 그대로 시각적으로 옮겨 준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인간성 추락과 그 회복에 대한 고민에 관한 그의 이전 영화인 <City of God> 이나 <The Constant Gardener> 급을 기대하는 것이 다소 무리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 원작소설이 '나좀 읽어 봐요'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생각좀 해봐요'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었다 소리를 들으려면 아마도 좀더 새로운 우화를 만들었어야 했을런지도 모른다. 재현 영상을 통해 소설 저자가 의도한 '생각좀 해봐요' 를 끌어 내기란 쉽지 않으니까. "Seeing is not Thinking" 이기 때문이다.

다중적 의미가 부여되는 실명이다 보니 아마도 그 의미의 다양함을 제한해서 조금더 구체적으로 만들면 비교적 흥행 요소가 될 수도 있었을 법 하지만 감독은 그냥 원작의 의도에 충실하게 냅둔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건  그나저나 책을 읽을 때부터 의사의 아내는 줄리안 무어로 설정이 된 탓에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의사의 아내는 줄리안 무어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솔직히 두번 보기는 어렵다.


2008년 12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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