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밤 독일의 톰 튀크베어 감독의 <인터내셔널> 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예전에 읽은 <빈곤의 세계화> 라는 책의 내용을 잠시 생각했다. 그 책의 핵심내용은 이런 거다.

"돈 빌려주는 대신 노동비용의 최소화를 강요하여 실업을 증대시키고 중소기업 및 자영업과 내수를 무너뜨린 다음 글로벌 기업의 시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수출로 먹고 살게 하고는 거대 자금관리인으로 하여금 통화 및 주식시장을 타짜판으로 만들어 그 나라의 정치-경제를 확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 IMF 다..." <빈곤의 세계화> 참조.

그리고 그 배후세력 중 하나가 범죄조직의 돈세탁과 글로벌기업의 탈세 자금의 집결지인 해외 조세 피난지에 있는 다국적 은행들이라는 것. 주인이 검은머리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외환은행 꿀꺽했던 론스타의 펀드도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버뮤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영화 <인터내셔널>의 주배경 또한 그 조세피난처 중 대표적인 곳의 하나인 룩셈부르크였으며 영화 속 문제의 배후세력도 그곳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파워있는 은행 중 하나인 IBBC 이다.

나는 "조세 피난처의 다국적 은행들은 과연 무슨 일을 하는가" 에 관한 하나의 사례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았으며, 영화적 완성도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사건 자체가 주연이요 배우들은 조연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밋밋하고 다소 덜 부각되는 캐릭터가 괜찮아 보였으며, 관객들을 배우보다는 은행과 범죄집단의 동침에 더 관심을 쏟게 만드는 연출이라 생각한다. 보게 되면 액션 스릴러와 경제의 중간에 해당하는 관점에서 보기를 권한다.


영화의 주제는 이렇다. 탈규제 및 조세피난처에 만들어진 이 거대 다국적 은행이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까지 무서운 집단이 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으로 그들은 돈 되는 것이면 전쟁이건 테러건 구데타이건 어디든지 찾아가서 자금을 대준다. 영화에서 IBBC는 돈세탁말고도 중국으로부터 미사일을 구입하여 원격 장치를 달고 중동분쟁 지역에 이스라엘과 아랍 모두에게 공급하려는 거대 음모를 꾸민다.

음모의 정황을 포착한 인터폴이 미국, 독일, 이탈리아를 넘나들며 수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제보자와 인터폴 요원이 사고와 독살이라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IBBC 의 비리를 추적하고 있던 샐린저 요원 (클라이브 오웬) 은 이 사건으로 IBBC 에 대해 적개심을 더욱 키우고 점점 더 집착하게 되며 여기에 맨하탄 지방검사 엘레노아 휘트먼 (나오미 왓츠) 이 가세한다.

샐린저는 수사 과정에서 원격장치를 제공하는 이탈리아의 사업가 칼비니를 찾아가서 수수료 말고 돈 되는게 없어 보이는데 IBBC 은행이 얻는 것이 무어냐, 라고 질문한다. 총리 선거 유세를 하던 이탈리아의 거물 사업가는 이렇게 답한다. 은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인이건 국가건 채무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을 빚의 노예로 만들면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다...

무서운 논리다. 생각해보면 파괴된 중동 국가들의 재건사업에 돈을 대줄 은행은 IBBC 가 될 것이고 그래서 정부를 채무자로 만들면 석유건 뭐건 금융세력에 의한 중동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 및 통치가 가능해진다. 은행에 대한 관리 감독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정부 여당이 주장하는 금산분리 완화는 한 나라의 통치권을 삼성에게 주자는 말이라고 하면 과장일지...

은행에 해가 되는 요소로 판단했는지 IBBC 를 도와 요직 암살 임무를 수행하는 전직 동독 경찰 출신인 빌헬름 웩슬러 (아민 뮐러-스탈) 는 킬러로 하여금 칼비니를 암살토록 한다. 킬러를 믿지 못해 이중 킬러까지 고용할 정도로 치밀하다. 샐린저는 킬러를 추적하려 하지만 이탈리아 경찰의 비협조로 좌절하고 미국으로 출국까지 당한다.

그러나 그 킬러가 뉴욕으로 날아간 사실을 알아낸 샐린저 또한 뉴욕으로 돌아와 킬러를 뒤쫓는다. 그리고 그를 쫓아 들어간 구겐하임 미술관. 킬러는 그곳으로 찾아간 웩슬러로부터 새로운 암살 명령을 받는데 암살 대상은.... 아마도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할 미술관 총격신은 꽤나 인상적이다. 뱅글뱅글 나선형으로 감아올린 새하얀 코일모양 구조의 건물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총을 쏴댄다. 범죄조직에게는 미술관도 하나의 전쟁터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빌헬름 웩슬러를 잡을 수 있었던 뉴욕 경찰과 샐린저는 그의 도움을 받아 IBBC 의 불법 무기거래 관련한 중대한 증거 포착을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그러나 아마도 작전의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IBBC 라는 은행은 계속 그곳에서 건재할 것이며 보다 더 나은 수익률을 위해서라면 여전히 전쟁터건 테러집단이건 어느 곳이나 돈을 빌려주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참 우리를 좌절케 하는 것이 이런 은행과 기업과 조직의 속성 중 하나가 '도마뱀 꼬리'같다는 거다. 모든 문제를 꼬리에 몰아넣고 잘라내 버리고는 도망가 버린다. 물론 꼬리는 새로 돋아나게 되어 있다. 부패한 정치인들, 비자금과 분식회계로 얼룩진 대기업들... 도마뱀 꼬리끊기같은 짓들을 하면서도 윤리 개념은 다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가장 철저한 윤리의식과 관리 감독이 필요한 은행이 규제를 철폐하고 탐욕스러워 질 때 세상은 정말 무서운 곳이 될 수 있다는 것, 사실 그거 하나만 이 영화를 통해서 인지하게 되도 내가 보기에는 이 영화는 성공이다.


2009년 3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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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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