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관점 (Point of View) 이라는 거... 지금 나는 어디에 서서 그것을 바라 보고 있나?

그것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때 또는 말을 할 때 언제 어디서나 워밍업으로 항상 떠올려야 하는 거다. 난 지금 어떠한 관점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거야... 스스로 계속 되뇌라는 거다. 지금 자신이 밟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으면, 생각한 것과 내뱉은 말은 그저 유령일 뿐이다.

관점의 분류라는 것을 미시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일단은 크게 크게 보자. 그래서, 세상의 모든 관점이라는 것을 우선 <예술가, 철학자, 사업가> 이렇게 세가지로만 나누고, 비슷한 방식으로 <문화, 사회, 경제> 이렇게도 가능할 것 같다. 이 중에서 나는 어느 집단의 부류에 속하냐부터 따져 보는 것도 나름의 방법일 수 있다.

한편의 시(詩)가 있다고 하자. 예술가는 그 시를 읽고 행복감을 느낀 또는 실망한 이유와 그 이유로써 표현의 미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자는 그 시를 읽고 좋았던 점 또는 나빴던 점의 이유로써 사유의 힘을 이야기하며, 그리고 사업가는 그 시를 읽고 팔리겠네 안팔리겠네 하는 식의 대중성을 이야기하게 된다.

심형래의 D-War 가 있다고 하자. 예술가는 한국영화의 흥행코드인 애국심과 자극적-선동적 이미지, 그 스펙타클에 질질 끌려다니며 찢겨지다가 아예 자취를 감추어버린 내러티브를 비웃고, 철학자는 내러티브가 없기 때문에 이것이 뭔지도 모르겠다고 하거나 아예 안 보고, 사업가는 자극적 스펙타클의 철저한 대중성만 덜렁 남으니 와이드릴리즈로 치고 빠지기 좋다고 기뻐한다.

간단하다. 이 영화가 좋았으면 사업가고, 나빴으면 예술가고, 안봤으면 철학자 관점이다.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아마도 자신이 신뢰하는 집단의 관점이 여러분 자신의 관점과 일치할 확률이 클지도 모른다.

본론

극장을 나오면서 방금 본 그 영화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영화를 보는 관점도 미시적으로 보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크게크게 세가지로만 보자. 사실 이 세가지면 충분하다. <예술가, 철학자, 사업가>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이미지  :  메세지  :  스토리

카메라 이동과 렌즈, 쇼트, 편집 스타일, 미장센, 색감, 포스트 프로덕션 등은 이미지 관점, 역사적 사건의 진실, 사회의 부조리, 전쟁의 비판,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은 메세지 관점, 누가 출연했고, 줄거리는 무엇이며, 대사가 멋지고, 반전이 있다 등등은 스토리 관점이다. 스토리가 곧 메세지인 영화도 있는데, 보통 이런 영화 시나리오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기도 한다.

스토리는 상업성과 관련되어 있어, 대중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흥행과 직결되고, 메세지는 스토리 한꺼풀 안에 숨어서, 대중이 발견하여 많이 생각하고 논쟁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이미지는 장면 장면에서 테크널러지 미학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성과 흥행성의 의미는 스토리 >> 메세지 >> 이미지    이기도 하며, 예술성의 의미라는 것은 스토리 << 메세지 << 이미지 이기도 할거다.

그래서 사람들을 이 세가지 관점을 대표하는 세가지 직업군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예술가 : 철학자 : 사업가 = 이미지 : 메세지 : 스토리 = 문화 : 사회 : 경제> 라는 어줍은 공식을 하나 끌어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학적 완성도에서는 욕을 먹어도 메세지 또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훌륭하게 바뀌는 영화들도 많고, 스펙타클과 내러티브의 그 완성도가 뛰어나도, 정작 그 안에 메세지가 없어 비난받는 영화들도 많고, 대박과 동시에 높은 완성도의 스펙타클과 메세지까지 담은 수작 영화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보통은 미학적-철학적 관점에서 뛰어나면, 그 영화는 쪽박을 찬다. 방금 이 말은 사업가 관점이다. 예술가이자 사업가라면 나름의 관객을 찾으면 가능성있다 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냐 하는 거다.

베토벤처럼 완벽하게 구조적 그리고 형식적인 미학 속에 로맨스를 넣은 음악에 완전감동하는 것과 밥 딜런의 기타 연주와 노래 가사를 들으며 치밀어 오르는 저항의 정신을 느끼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게 된다. 즉 같은 관점이 아니다라는 것으로, 전자는 예술가적 관점이고, 후자는 역사가-철학자적 관점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원더걸스의 텔미를 듣고 춤추고 좋아하는 것은 사업가적 관점이 되겠다.

***

그런데, 문제는 현실에서는 직업군별로도 이 세가지 관점이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영화를 예로 들면, 기획자 - 제작자 - 감독 - 극장주 - 평론가 - 관객의 유통 과정 각 단계마다 세가지 관점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는 거다.

영화를 기획하는 사람이 "영화는 산업이야. 일단 흥행이 되야지" 라는 관점만 가진 사업가이거나, "영화는 메세지야. 진실과 철학을 담고 있어야 해" 라는 관점의 철학자이거나, 또는 "영화는 예술이야. 장면 하나하나가 완성된 작품이어야 해" 라는 관점의 예술가일 수 있다. 이것은 영화를 만드는, 극장을 운영하는, 영화를 보고 평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획자는 예술가인데, 제작자는 사업가이며, 감독은 철학자요, 극장주는 극우 자유주의 사업가이고, 평론가는 좌파 철학자인데, 관객은 우파 보수 사업가들이라면... 기획자는 좌파 사업가인데, 제작자는 철학자요, 감독은 예술가이고, 극장주도 예술가인데, 평론가는 극우 사업가에, 관객은 좌파 진보 철학자들이라면... 모든 관점에 양극을 비롯하여 그 사이에 존재하는 정도별 단계까지 고려하면 정말 복잡해진다.

영화가 기획  - 제작  - 상영  - 비평  -  관람   의 단계를 거치면서, 각 단계별 종사자들이 메세지-이미지-스토리-메세지-스토리 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영화가 온전한 형태로 관객에게 전달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말이다. 비교적 그 관점의 개입 단계가 간단한, 책에 있어서도, 작가가 자신의 사상을 글로써 표현했을때, 읽는 사람이 작가의 사상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을까 와 같은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가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획자, 감독 또는 작가의 관점과 비슷한 관점으로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될 때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가와 철학자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그에 상응하는 관점으로 보아주는 관객에게만이라도 제대로 전달되면 사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 관점을 없애버려 무관점의 영화로 만들어 버리고, 모든 관객들에게 어필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사업가의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업가는 하나의 관점이기보다 관점 킬러일 수 있다.

결론

영화는 예술일까? 아니면 진실과 철학일까? 그것도 아니면 산업일까? 이미지와 편집에서 눈에 안보이던 메세지까지 복원시켜내면 당신은 예술가이며 철학자이고, 표면적인 스토리에서 한꺼풀 밑에 있는 메세지까지 발견해내면 당신은 사업가이며 철학자인 셈이다.

결국 관점의 종류 세가지... 미학이냐, 철학과 역사와 진실이냐, 아니면 산업이냐 의 경계에서 다시 강조하는 이야기이지만 당신은 어디에 서 있냐 이것이 중요하다. 보는 사람의 관점과 만들고 배급하는 사람 간의 관점의 최적의 조합은 도대체 무엇일까?

영화를 배급하고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저 사업가라면, 극장에는 헐리우드 블락버스터나 한국의 깡패 코미디물이나 주구장창 걸릴 것이고, 그저 철학자라면, 극장에는 60,70년대 프랑스, 유럽 및 헐리우드 영화와 다큐멘터리만, 그저 예술가라면, 타르코프스키와 잉그마르 베르히만 영화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상물만 상영할 거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저 사업가라면, 극장에는 자극적 스펙터클과 가슴에 손 얹어 보라는 애국심 코드의 영화만 득실거릴 것이고, 그저 철학자라면 극장에서 베를린영화제용 다큐멘터리 영화들만 지겹게 볼 수 있을 것이고, 그저 예술가라면, 깐느영화제용 예술영화나 무척 지루한 한국영화만이 극장에 걸릴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영화는 관점에 따라 예술 / 역사 / 철학 / 산업 / 유희 ..... 가 될 수 있다.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면, 당신의 관점이라는 것부터 먼저 한번 살펴 보기를 바란다. 예술가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사업가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 이 둘은 붙기만 하면 싸울 수 밖에 없다.

가끔 영화기획이나 마케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예술나 철학으로써의 영화를 이야기하면, 빈정거리는 태도를 보이거나 웃기시고 있네 하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식의 반응을 하는 이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누구에게는 유희이겠지만, 누구에게는 목숨 걸만한 신념이고 철학이며, 누구에게는 사업이겠지만, 누구에게는 예술이고 테크널러지와 미학의 만남이라는 것, 늘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삼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는 노릇... 누구에게나 세가지 관점은 혼재되어 있기 마련이며, 단지 비율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거대 자본을 들여 예술-철학 영화만 만들면 어떻게 돈벌고 누가 돈을 대려 할 것이며, 소자본을 들인 예술과 철학 영화만을 만든다면, 세상에서 영화보는 즐거움 또한 사라질 거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의 영화를 볼 때, 이 영화를 바라보는 세가지 관점을 확보해야 한다. 만약 내가 사업가로써 봤다면, 철학자와 예술가로써 바라 본 사람들과 싸우려 들지 말고, 내가 가지지 못한 관점에 대한 의견 수렴에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사실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2008년 1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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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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