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펼쳐진 두시간의 영상을 구경하는 사람과 읽는 사람...

꼬마소녀 아나는 동네회관에서 상영한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같이 본 언니 이사벨에게 묻는다.  "언니, 괴물은 아이를 왜 죽였어?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괴물을 왜 죽였어?"


이사벨 : 사람들은 괴물을 죽이지 않았어. 괴물도 아이를 안 죽였고..."
아나 : 어떻게 알아?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이사벨 : 영화는 모두 가짜야. 속임수야. 난 그를 봤어. 마을 근처에서. 사람들은 못봐. 밤에만 나와서.
아나 : 유령이야?
이사벨 : 아니 정령이야. 하지만 정령에겐 육체가 없어. 그래서 죽일 수가 없는 거야.
아나 : 영화에선 육체가 있었잖아. 팔, 다리도 있었고.
이사벨 : 사람들이 입힌 거야.
아나 : 밤에만 나온다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나눴어?
이사벨 : 정령이라고 했잖아. 너도 친구가 되면 언제든지 말을  걸수 있어.

스페인의 거장, Victor Erice 의 벌집의 정령 (The Spirit of the Beehive : 1973) 장면 중에서.


강물에 꽃을 던지는 소녀를 따라하다가, 던질 꽃이 없어지자, 소녀를 강물에 던져버린 괴물.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해 낸 이 피조물, 보리스 칼로프의 실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명장면을 통해, 빅토르 에리체는 그 정령을 찾는 다섯살 짜리 꼬마의 눈으로 바라본 암울한 40년대 스페인을 그리고 있다.

아나는 영화를 본 이후, 괴물이 소녀를 왜 죽였는지 알고 싶어 하는데, 바로 이 호기심과 그 알고 싶은 욕망을 채워 나가는 작업이 비평이라는 거다.

만일, 당신의 딸이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나서, 괴물이 소녀를 왜 죽였는지 물어 본다면, 그리고, 그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딸의 그 질문에 성실히 대답을 해 주고 싶다면?

19세기 초반에 쓰여진 그 원작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한번 읽어 봐야 하겠고, 이 소설의 작가는 당시 급진적 여성주의자인 메리 쉘리라는 영국의 여성이고, 그리고 이 소설은 남성 중심문화에 던지는 여성의 은근한 도전장이라는데, 도대체 당시에는 시대상황이 어떠하였는지, 더구나, 이 소설의 원제는 <프랑켄슈타인 : 일명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인데, 프로메테우스는 또 뭔지...

제임스 웨일 감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충분하고 진지한 고민을 한 다음, 나름의 생각을 더해, 이 소설 원작을, 소설이 쓰여진 후 120년이 지난 1931년에 영화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120년이라는 시간적 간극과 사회의 변화상 등은 또 어떻게 반영했을까?

이쯤되면, 이제 비평이란 것은 정말 골치아프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작업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만약에,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영상만을 구경하고 박수치고 나온 사람이 있다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영화는 그것 만을 위해서도 가치있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영화에 대해서 비평은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감독들은 관객들이 자신의 영상을 구경하기보다는 읽어주기를 원하며, 실제로 대부분의 감독은 시대의 흐름과 그 사회상을 관통하는 고민을 하고 그것을 영화 속에 표현하기 때문이다.

관객이 읽지 못했다면 그것은 감독이 자신의 능력을 탓해야 하는 문제가 되지만, 관객이 그 영상을 읽지 못한 채 비평을 하는 것은? 그것은 결국 이사벨이 아나에게 들려주는 정령에 관한 자의적 이야기가 되고 말 확률이 아주 높다.  

또한, 비평이란 OX 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진선미를 따지고 드는 일이다. 따라서, 비평이라는 것을 하고 싶으면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평가이건 일반 관객이건 누구나 그 취향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헐리우드 블락버스터를 보는 정도의 관객이 영화에 대한 취향을 가질 수가 있나 의아하지만, 어쨌건 정말 취향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피곤한 지식축적 작업도 불사할 정도로 앎에 대한 욕망이 있는 블로거들이 비평을 할 때만이, 아마 블로거 영화비평의 미래가 있을 것 같다.

물론, 구경만 해도 되는 영화들이 판을 치고 있긴 하므로, 이런 영화들에 한해서는 아마도 누구나  비평가가 될 수 있을 거다. 그야말로 보는 것이 믿는 것인 그런 영화들 ... 그러니까 비평을 할 수 없는 영화들...

2007년 9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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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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