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 4차원에서만 가능한 예술

나는 학부 졸업 논문 과제로 엘리베이터 시스템 설계를 했었다. 고층건물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4대의 엘리베이터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말하자면 엘리베이터의 두뇌를 설계하는 것이었는데, 이때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아주 낮은 수준에서 잠깐 공부한 적이 있고, 인지과학 수업도 하나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출발하지만, 케이스 시뮬레이션의 가지수가 점점 증가할수록 머리가 터질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고려해야 할 상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다보면 층별 유동인구 및 상주인구 정보와 엘리베이터 사용 관련한 각종 통계치만 입력을 하면 이 놈이 알아서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학습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감시간이 임박하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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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보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로보트의 인지능력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연구는 결국은 인간 스스로 그 내면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을 볼 때 스탠리 큐브릭의 <2001: A Space Odyssey> 의 HAL9000 과 리들리 스콧의 <Blade Runner> 의 레플리컨트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A. I.> 의 데이빗을 먼저 생각하곤 한다.

최근에는 <2001...> 의 원작자인 아서 클락의 사망 소식도 있어 <2010: Odyssey 2>, <2061: Odyssey 3>, <3001: The Final Odyssey> 같은 그 후속작을 읽어 볼 생각이다. 이 오딧세이 시리즈의 축은 HAL9000 인데, HAL 은 디스커버리호를 통제하는 인공지능 컴퓨터다. <2001...> 에서는 자신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인간의 입술을 읽어내고는 인간을 죽이고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만, 결국은 정지를 당하는 부분까지 다루어진다.

이 영화들에서 컴퓨터 또는 로보트들은 감정과 기억을 이식받는다. 처음에는 주입된 기억을 기초로 제한적으로 판단하고 느끼지만, 그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스스로 학습을 하게 되고, 점점 더 복잡다양한 사고와 판단능력, 그리고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거다.

유치한 엘리베이터 운영 시스템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겠지만, 어쨌건 나는 엘리베이터의 그 얕은 지능이라도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술하고자 했었다. 각종 데이터를 넣는 작업이 기억 주입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을 일종의 언어로 기술하려고 했던 그 경험 수준에서, 나는 이 "로보트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도 그 시작을 프로그래밍 언어로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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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가 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이것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이런 생각을 해봤다. "감정이라는 것을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니까, 영화의 슬픈 장면을 보고 눈물이 흘렀다고 할 때, 그 슬픔을 인지하여 눈물이 흐르기까지의 체내에서의 변화와 그리고 심리변화의 일련의 과정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거다.

그렇다면 그전에 이것을 또한 고민해야 한다. "슬프다라는 것은 뭘까?" "슬프다" 라는 것은 사실 그냥 표현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그 실체는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느낌이라는 거다. 내가 "슬프다" 라고 쓰지만, 내 슬픔의 감정은 "슬프다"라는 표현에 들어 있지는 않고 여전히 내 마음에만 존재한다.

이제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그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언어로 표현되지 않으면 로보트에게 이것을 어떻게 주입할까? 아마도 인지과학자나 인공지능 학자들이 이런 것을 연구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까, 감정, 그러니까 FEELING 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것은 머리가 아닌 마음과 몸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한번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는데, 음악이라는 것도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발생한 사운드를 인간의 감성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어서 사운드가 발생한 그 순간동안만 음악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라고  했었다.

시간에 따라 음들이 변화하고 사운드가 변할 때, 인간의 감정 변화 일련의 과정은 언어로 표현 가능한 것일까? 방금 들었던 선율이 어떤 곡의 것인지 알고 싶어도 당장 그것을 검색창에 뭐라고 써넣어야 하는 지도 모르는데, 그걸 듣고 느껴졌던 감정을 어떻게 문장으로 표현하며, 그것을 또 어떻게 01010101... 로 코딩해서 로보트에게 주입한다는 걸까?

HAL 은 도대체 어떻게 입술을 읽어내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인간의 의도를 파악하고 우주선 바깥으로 내몰기까지 했을까? 인간의 말  뒤에 원래는 두려움의 감정이 숨어 있었을 거다. HAL 은 인간의 두려움을 읽었을까? 로보트가 슬픈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과정은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그것을 0101010... 이진법으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까? 로보트에게 감정을 주입한다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전제 하에서다.

01010101... 또는 그 어떤 다른 명령어 체계이건 간에... 이진법으로 표현되는 감정과 추억? 이런 면에서 볼 때, 인공지능이나 인지과학은 정말 엄청나게 도전적이면서도 인간의 내면 탐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필수라는 분야로 생각된다.

나는 위에 언급한 영화들을 로보트 자체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아마도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으며, 표현될 수 없는 감정과 추억이라는 세계에 관한 일종의 탐구로 생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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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기록되지 못하는 것들은 정말 많다. 가령 음의 어울림 같은 거... 도-미-솔 과 도-미b-솔, 그러니까 C 와 Cm 의 차이를 문장으로 한번 표현해보라. 밝다, 우울하다? 이것은 언어를 빌려서 표현한 단어이지 감정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란 도대체 무얼까? 무형의 느낌... 로보트 귀에 주파수를 분석하는 감각기관을 넣어 C 와 Cm 를 구별하게 하는 것은 가능할 지 몰라도, 그 느낌의 차이를  인식하게 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문제다.

Steve Howe 의 All's a Chord 라는 노래처럼 모든 게 화음이라면,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낸 세상의 모든 것이 화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지는 것이라면, 결국 우리는 로보트를 생각하기도 전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도-미-솔 하나 하나의 음을 인식하고 도와 미의 차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C 와 Cm 의 차이는 기계적인 수학적 분석 말고도 감정의 영역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음 한음을 구별해 내어 코드의 이름을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 전체 울림의 의미와 다른 화음과의 차이에서 나오는 감정의 변화는 도대체 어떤 방식의 언어로 기술해야 할까?


감각 기관이 달려있다고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며, 세상에는 감정처럼 문장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언어에 의존하는 인터넷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위에 올린 음악이 지금 인터넷 공간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나?  0101010... 로 표현된 언어가 그 안에 있기는 하지만 그 음악의 아름다움은 당신의 마음 속에만 있는 거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 있다면, 그 사람은 실은 로보트일지도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로보트보다도 더 후진 감성을 지녔을 지도 모른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보다는 로보트가 훨씬 더 감정적일지 모른다는 거다. <A. I.> 에서의 고민을 보라. 로보트의 감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감성을 가지고 그저 언어가 중요하다고 주구장창 떠드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2008년 4월 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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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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