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착각 중 하나가 이런거다. 돈이 없어 다급한 상황에 내몰렸을때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쓰고는 열심히 일해서 그 돈을 갚으면 위기에서 벗어난 거라 생각하는 거. 정말 그런가? 10년 상환 대출끼고 아파트 사서 빚쟁이라는 위험부담 속에 10년 동안 살면서 날아가 버리는 갖가지 행복은 왜 비용에 안넣나... 그래서 죽어라 열심히 일해서 다 갚고 나면 과연 행복은 시작될까? 다행스럽게 그 기간 동안 실직을 하지 않고 다 갚는 경우조차도 관점에 따라서는 잃어버린 10년이 되는 경우가 많다.

IMF 빚 500억 달러 다 갚았다고 비로소 경제 위기에서 벗어난 거라 생각하고 샴페인 터뜨리는 것, 참 순진하다. IMF 는 공짜로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닌데. 강도높은 노동비용의 최소화와 긴축정책을 요구했고, 그것을 실천하다보니 10년 지난 지금 우리나라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의 모든 뿌리가 거의 뽑힐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우리나라는 글로벌 거대기업 및 투자자들이 필요할 때마다 쏙쏙 빼먹는 입맛에 맞는 시장으로 변해 있더라 이거다. 위기 벗어나서 행복해?

지난 토요일에는 <인터내셔널> 이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는데 메세지는 심플하다. 은행이란 그 속성상 개인, 기업, 국가를 채무자로 만들어야 먹고 사는 기관인데 민간에게 다양한 금융기법의 문이 열리면서 다국적 자본과 마피아같은 범죄조직이 개입하여 해외 조세피난처에 은행을 만들고 이 은행을 통해 대기업들은 탈세하고 범죄조직은 돈세탁해서 글로벌 금융의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전쟁을 종용하고 무기를 팔아먹기도 한다는 것.

극장을 나오면서 캐나다 경제학자 미셸 초스도프스키가 1996년 쓰고 1997년 출판하고 1998년 초 한국에도 번역출간된 <빈곤의 세계화> 라는 책이 문득 생각이 났다. 원제는 <The Globalization of Poverty: Impacts of IMF and World Bank Reforms>. 이 책은 간단히 말해 IMF 라는 국제금융조직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IMF 에서 돈을 꾸기만 하면 그 나라는 왜 황폐화되어 버리는가, 에 관한 연구보고서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가 IMF 에서 돈 꾸고 헤매고 있을 그 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왔다.


이 책은 전반부는 이론이고 후반부는 예제로 보면 된다. 글로벌 경제를 '전 세계적 외채상환 과정'의 관점으로 보면서 차관을 빌려주고 저임금경제를 강요하고 국가의 정책을 지배하게 되고 그래서 돈을 빌린 나라들이 어떻게 망가지고 가난해지는가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전반부라면,

소말리아, 르완다, 인도, 방글라데시, 베트남,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러시아, 유고연방의 나라들을 예로 들면서 각 나라의 지역적, 민족적 특색있는 지역경제가 어디나 똑같은 요구를 하는 IMF식 처방과 그 나라의 부패세력이 결탁함에 따라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후반부다. 지금 다시 출간되면 우리나라도 포함되려나... 못봐서 확실치는 않지만 <007: Quantum of Solace> 도 대충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듯.

꽤 긴 서문은 주요 내용의 요약본같기도 한데 대충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세계 경제 흐름은 '전 세계적 외채상환 과정' 에 의해 '조절'되고 있는데, 외채상환 과정에서 채무국가의 제도가 위축되고 고용과 경제활동이 파괴된다. 그리고 개발도상국가의 경우는 대부분이 자국통화가 붕괴되고 이어서 정치, 경제, 사회가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가 되고 결국에는 갈등이 터지는데 경우에 따라 종족갈등, 내전으로 치닫기도 한다. (러시아 경제 붕괴 및 소말리아, 르완다, 보스니아 내전 등등...)

우리나라 그렇게 좋아하는 글로벌 기업은 '노동비용 통제' 의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노동비용 최소화'는 소비시장을 위축시키고 빈곤을 가중시키고 구매력을 심각하게 축소시킨다. 범세계적인 과잉생산과 소비수요 감소는 결국 자본의 팽창을 저해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무역회사들은 개발도상국을 목표로 삼고 그 나라의 생산기반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즉 그 나라의 내수시장과 중소기업들의 생산을 끊어 놓아야 글로벌 기업의 시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 결국 개도국은 수출로 먹고 살게 되며 내수 구매력은 대폭 축소된다. 즉, 타깃으로 설정된 나라에 '빈곤'을 투입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금과 재화의 이동이 자유로와야 하므로 글로벌 기업들은 각종 장애를 제거하고 여신규제를 철페할 것을 주장하고 결국은 토지와 국가재산을 국제자본의 수중으로 끌어온다.

이런 일에 앞장서 왔던 기관이 IMF 와 세계은행 같은 브레튼 우즈 기관들로서 이들은 무디스나 S&P 같은 신용평가회사들과 함께 워싱턴 본부 주재없이 한 나라의 정부를 압박하기도 한다. 무디스가 국가외채 등급을 하향하면 그 나라의 사회복지 계획이 축소되어 버리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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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심화되면 세계경제는 소수의 국제은행과 글로벌 다국적 기업에 의해 좌우되며 이들은 각국의 시민사회와 충돌하기도 한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프랜차이즈 기업 체계를 즐겨 이용하여 지역 시장을 장악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기업들은 다 죽거나 프랜차이지가 되어 프랜차이저(대기업)의 유통망에 편입되고 투자는 직접하지만 가만히 있는 대기업에게 수수료를 챙겨 주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EU 나 NAFTA 같은 경제블록이 형성되면서 지역기업들 설자리가 없어지고 소규모 자영업이 자취를 감추고 생활양식도 변하고, 사고방식도 변하고.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은 대기업의 활발한 활동을 보장하지만 지방의 소자본 이동은 제약을 받게 된다.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경제통합은 겉으로는 정치적 통합을 내걸지만 실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 이후 세계 금융 체제에는 고도의 유동성이 정착되었다. 기관투자자들의 주가차익 취득과 급작스런 이탈. 주변의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각 증권거래소들은 등락 빈도와 폭이 너무 커서 아주 고통스럽고 통화도 크게 손상된다. 이러한 증시가 개도국의 잉여를 빼먹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

1980년대 후반부터 기업합병의 물결로 종합금융회사, 기관투자자, 증권사, 대규모 보험회사, 새롭게 뜬 금융업자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확고히 하게 된다. 이 '자금 관리인'들은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지만 실물경제의 기업가들의 역할은 대폭 축소된다. 국가의 규제를 벗어난 자금관리인들은 선물거래, 투기성 거래, 각종 파생상품, 통화시장 조작, 돈세탁 뭐 할 것은 다한다. 1992년 기준으로 볼 때 총 외환거래 중 상품무역과 자본이동 관련은 15% 에 불과. 즉 85% 가 타짜 놀음이다. 게다가 온라인으로 고속처리.

각종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탈규제화로 마피아 조직들이 국제 금융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이러한 경제 정책을 악용, 자금세탁을 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범죄조직이 통치를 하고 공기업의 민영화로 국가재산을 장악하기도 한다. (페루, 볼리비아, 구 소련 등, 그리고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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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이래로 선진국 대기업과 은행의 채무의 상당규모가 공채로 전환되면서 면제되었다. 또한 선진국들은 개도국 정부에게 은행빚을 대신 부담하도록 하는 차관을 제공한다. 민간채무의 공공채무로의 전환. 기업과 은행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가의 부담이 되고 혈세가 투입된다.

1980년말 미국에서는 국가가 파산한 기업을 인수하고 기업손실 부담을 떠안았는데 곤경에 처한 기업과 은행에 제공되는 '긴급 구제금융'은 기업의 채무를 국가재정의 부담으로 전환시킨다. 사실 이거 되게 웃기는 거다. 기업의 구조조정 비용이 국가의 부담이 되면 공공지출도 소수에 집중되고 산업노동력도 대폭 감소한다. 중소기업의 연쇄도산과 대규모 해고사태가 발생하고 정부는 조세수입이 또한 대폭 감소하게 된다.

서구의 외채위기는 조세제도를 크게 후퇴시켰는데 이것은 공공채무의 증대로 이어진다. 한쪽으로는 시민들 세금을 올리고 한쪽으로는 세금이 기업보조금 및 기금의 형태로 대기업에 헌납된다. 여기에 새로운 금융기법이 대기업의 이윤을 해외로 빼돌릴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하마, 스위스, 샤넬 제도, 룩셈부르크 같은 해외 조세 피난처 (Tax Haven) 국가들. 이곳에 있는 은행들은 예치금 중 상당수가 대기업에서 온 것들이라고. 기업들의 탈세, 이윤 유출... 그리고 이 돈은 다시 대미투자로. 영화 <인터내셔널>에 나오는 은행이 룩셈부르크에 세워진 은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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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중앙은행들은 힘이 빠지고 있다. 그 국가의 채권자들의 신탁통치에 놓이게 된다. 제3세계와 동유럽의 중앙은행들은 대부분이 파리클럽과 런던클럽의 대리자인 IMF 의 통제권에 들어있다. 일국의 재무부가 민간 상업채권단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간다. 중앙은행은 민간금융권의 신탁통치 아래서 관료기구로 작동하고 민간금융권이 실제 통화정책을 지시한다. 막강한 금융세력은 한 나라의 통화를 발행, 이동, 붕괴시킬 수 있다.

화폐의 공급이란 인적, 물적 자원을 조절하는 기본수단인데 이것이 민간채권자들의 손에 들어가고 IMF 가 제3세계와 동유럽에 주문했던 통화발행 동결 조치는 전체 경제 마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1992년 IMF의 중앙은행 여신발급 규제 요구로 러시아 경제는 전부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뽑은 정치인들은 관료로서만 기능하게 된다. 채권자들이 그들의 배후에서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한다. 천편일률적인 정치이념의 등장. 이념에 관계없이 경제 개혁 노선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미국은 금융회사의 이해관계가 재무부와 금융기관 최고위층까지 침투되어 있다. 금융가들이 정치를 한다. 민간경제와 금융기업의 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위기에 빠진다.

선진국들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투표의 결과가 국가의 사회, 경제 정책방향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는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제약, 아니 철저히 밟는다. 노동자 탄압이 아주 기본이다.

현재의 빈곤의 세계화는 인적, 물적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실업과 전세계적인 노동비용 최소화에서 비롯한 과잉생산의 결과다. 해결책은? 은행과 다국적 기업 포함 금융세력이 타깃이 되어야 한다. 각종 시민단체의 사회운동, 국내외 연대 강화를 통해 그들로부터 권력을 되찾아와서 금융기관을 감시 및 관리하는 기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 그건 뻥이다. 위기가 커질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관건은 빈곤퇴치, 고용창출, 구매력 창출을 이루어 내는거다. 내수가 살아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이 살고 자영업으로 먹고 산다. 그래야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사교육의 망령에서 벗어난다. 사회적 투쟁이 필요하다.

금융자산의 엄청난 집중과 실물자원의 소수지배를 푸는 것이 해결 방법인데 한편으로 이들이 통화발행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통화정책의 사회적 통제를 이루어내고 중앙은행을 몇몇 채권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투쟁의 핵심이 될거다. 한 나라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뭉쳐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2009년 3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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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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