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더 로드 The Road

서적2017.03.30 09:1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코맥 맥카시는 2006년 <더 로드> 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번역판의 표지를 보니 어른과 아이가 손을 잡고 서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으음, 아이와 어른이 함께 길을 걸어 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떤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인가, 고개 한번 갸우뚱 하고는 첫장을 넘긴다.

책의 절반이 넘어 가도록 페이지를 넘기지만 한 남자와 그의 어린 아들은 여전히 걸어가기만 한다. 먹고 걷고 자고 먹고 걷고 자고. 산을 넘고 언덕을 넘고 숲을 지나고 모두 불타버려 파괴된채 재만 남겨진 도시와 마을을 지나서...

3차 대전 핵전쟁이 일어난 건지 아니면 거대한 핵발전소가 파괴된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결과적으로 이 부자가 처한 현실은 모든 것의 파괴 그 후, 라는 거다.

어쩌다 통조림을 발견하면 함께 나누어 먹고 베낭과 끌고 다니는 카트에 잔뜩 담기도 하고 밤이 되면 가지고 다니는 침낭과 방수포로 잠자리를 꾸미고는 해변가에서 길가에서 때로는 으슥한 곳에 숨어 들어가 잠을 자기도 한다. 이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하는 걸까?

페이지를 넘기면서 한가지 분명해지는 것은 "세상은 불타버려 파괴되었고 먹을 것은 고갈되었다" 라는 점이다. 인간 생존과 가치의 대전제인 '식량'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라는 거다.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디스토피아? 그것은 식량이 사라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곡물로 세계를 위협하는 세력의 존재가 두렵고 세계의 모든 무역이 중단될 때에도 식량 자급은 가능해야 한다는 농업의 중요성이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절실해짐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정부의 정책 방향은 대단히 아찔하다.

먹지 못하는데 사랑, 박애, 절제... 따위의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라는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이 보통 사람에게 가능한 일일까? 일단 이 소설은 이런 의문을 던지고는 하루를 생존하며 하루를 그 가치를 지켜 나가려 애쓰고 인간성 상실 그 유혹의 위기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가는 보통 남자와 그의 어린 아들의 고단한 매일매일 삶을 그려낸다.

ooo

절반쯤 읽은 상태에서 책을 덮고 아주 어릴 적 TV에서 본 영화 한편이 어렴풋이 기억한다. 한 소년이 타고 있던 경비행기가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 한 복판에 추락한다. 소년은 살아남고 사막을 정처없이 헤맨다. 물도 먹을 것도 없고 태양은 강렬하고 숨을 곳이 없다. 전갈에 물리고 정신을 잃기까지 한다. 한편 이 소년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들을 찾기 위해 이 칼라하리 사막에 몸을 던지고는 같이 헤맨다.

하여간 이런 내용으로 초딩 초반 때 본 것 같은데 당시 그 소년의 살기 위한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을 찾기 위한 필사의 노력에 감정이 격한 나머지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비교적 최근에야 그 영화 제목을 알아냈는데 역시 칼라하리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부시맨> 감독인 제미이 우이스의 1969년 작인 <Dirkie: Lost in the Desert> 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너무 구하고 싶은데 도저히 구할 방법을 모르겠다.

사막에 던져진 어린 아들과 그 아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던져 사막에 뛰어드는 아버지. 아들에게 "우리는 따뜻한 불을 옮기고 있는거야." 라는 아빠, "아빠 우리는 인간임을 포기하면 안돼요" 라고 아빠에게 울먹이며 호소하는 아들, 이 두 부자의 정처없는 사막과 길에서의 행군은 우리들에게 감동 그 이상의 것을 전달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그 신을 닮은 순수성은 그래서 늘 희망과 구원의 메타포인가보다.

이 상황은 요즘의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자기 자식 명문대 보내기 위해 올인하는 부모들과 그 아이들이 만드는 사회 자체가 이미 저 사막과 다를 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사막, 아니 불타버린 도시 위로 난 길, 더 로드를 자신의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를 걸으면서 자신들의 가치를 허물어뜨리지 않을 수 있는 이들... <더 로드> 는 바로 그런 인간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희망의 메세지일지 모른다.

ooo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는 몇분간을 생각을 했다. "그래 잘 성장할거야. 잘 살거야. 나아질거야" 그러면서도 <더 로드>에서 묘사되는 그 잿더미만 남은 듯한 건조하고 황량한 풍경과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죽고 죽일 인간 군상의 풍경에서 그저 잘 성장하기만을 기원했다.

그리고 그 두개의 황량하고 잔인한 풍경들은 자꾸 우리가 조만간 처하게 될 잠시 후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확신만 점점 더하게 됨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나는 책을 책장 안으로 넣어 두었다. 그 책 속의 아빠와 아들이 옮기던 그 희망의 불은 부디 꺼지지 않고 이 세상에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우리가 배운 "인간이라면 이래야 해" 라는 철학과 윤리를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되고 싶어? 그러면 이렇게 해" 라는 목표와 수단의 가치로서 보는 편이다. 따라서 식량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인간의 윤리를 지키고 철학을 생각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런 문제를 한번쯤 고민해 보아야 하고 누구나 살면서 한번 이상은 그 시험에 부닥치게 되는 현실로 다가오기도 한다. 식량은 꼭 식량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양식일 수도 있고 공기, 물, 수도, 전기... 인간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2009년 2월 2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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