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영화 보러 극장 들어가기 전 그리고 보고 난 후 극장을 나오면서도 난 도대체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제목이 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인지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고, 한국 포스터는 또 왜 아래 오리지날 포스터에 비해 스칼렛 요한슨의 오른쪽 가슴 부위를 더 팠는지, 참 -_-; 그저 안타까운 생각만 들 뿐이다.

<Vicky Cristina Barcelona> 는 Woody Allen 의 2008년 신작이며, 불같은 연기로 Penelope Cruz 가 아카데미 조연상 받은 영화이고, 어느덧 70대 중반의 노장이 된 우디 알렌이 "니들이 사랑과 결혼을 알아" 라며 사랑과 결혼에 대해 쉴새없이 떠드는 그 특유의 왕수다가 여전히 살아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 저열한 홍보와는 전혀 무관하게 한번 보라고 권하고픈 영화이기도 하고. 어쨌건 이 영화는 요즘 부쩍 '사랑'이라는 것에 관심많은 나에게 참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문제를 제기한다.


뉴욕에 사는 두 친구 비키 (Rebecca Hall) 와 크리스티나 (Scarlett Johansson) 가 있다. 이 둘은 성격과 사고 방식이 사뭇 다르다. 비키는 "지킬 건 지켜야지" 한마디로 모범생 스타일이며, 크리스티나는 "그런게 어디 있어" 자유방임형 스타일이다. 각기 생각하는 올바르고 이상적인 삶의 가치관이 다르다. 그런 그녀들이 열정의 도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놀러 온다. 방문 목적도 비키는 '논문 연구를 위해서'와 크리스티나는 '그냥 즐기러'다.

그리고 제3의 주인공.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각자의 인생관을 품은 채 제각기 멋진 여행을 꿈꾸며 찾아간 스페인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  개인적으로는 사상 최고의 락커로 찬사해 마지 않는 프레디 머큐리가 외치던 바르셀로나가 귓전에 맴돌기도 한다. 그야말로 영화 제목대로... 그래서 이 영화는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경험하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기도 하면서 관객들에게는 "어때 당장 그 열정적인 바르셀로나로 날아가고 싶지 않아" 라고 이야기하는 '바로셀로나 매력에 관한 긴 필름' 라고까지도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으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외 그 어떤 타이틀도 생각할 수 없다.


아주 정열적이고 후끈한 플라멩고 나일론 기타의 나라 스페인, 그리고 또 예술가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1882년에 착공해서 여전히 건축 중이며 앞으로도 100년은 더 지을 거라는 그 유명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Gaudi) 의 사그르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있는 곳이며,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을 토대로 해서 쓴 문학 보고서인 르포르타주 <카탈루냐 찬가> 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르포르타주의 소재가 정말 차고 넘친다는데 왜 작품들은 안 나오나...

그런데 두 여인의 이 설레이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에 한 남자가 개입한다. 떠올리기도 싫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의 그 안톤 쉬거, 아니 후안 안토니오 곤잘로 (Javier Bardem) 다.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한 식당 테이블에 마주 앉아 밥 먹다가 크리스티나가 자꾸 눈길을 주자 안토니오 곤잘로가 이내 그녀들의 테이블로 어슬렁어슬렁 느끼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 "어, 안톤 쉬거가 이리로 온다 어어어..."


하비에르 바르뎀, 아니 후안 안토니오는 사랑과 열정에 충실하고 본능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성실히 따르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예술가다운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며, 역시 마찬가지로 대단한 정열과 불같은 성격의 예술가인 마리아 엘레나 (페넬로페 크루즈) 와는 이전에 부부였지만 현재는 이혼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키는 자신의 인생관과 맞지 않는 삶을 사는 남자이기 때문에 거부하지만, 역시 열정적이고 즉흥적이며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크리스티나는 후안을 그녀들의 여정에 기꺼이 받아 들이고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바르셀로나에서의 여행은 이제 세 사람이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세 사람의 여정에서 결혼을 코앞에 두고 "지킬 건 지켜야지"를 고수하려는 비키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남자 너무 매력있다, 어떡하지..." 결혼에 관한 윤리를 지키며 인생관과 가치관을 지키려는 모범생이 보기에 방탕하게 보이기만 하는 후안 그 놈의 매력에 저항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둔 내가 이럴 수는 없어, 허나..."


우디 알렌은 그 나이를 먹어도 참 얄궂다. 나이 70 먹어서 그런게 이토록 관심있는 주제일까. 5살 위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는 또 확실히 스타일에서 많이 다르다. "오랫동안 축척된 합리적인 인생관도 결국 그 짧디 짧은 순간 지향성 연애 본능에는 무너지는 거 아냐" 라고 우디 알렌은 그 나이에도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으니. 물론 이 영화는 이런 자유방임 연애와 개방된 남녀 관계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겠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마리아 엘레나, 페넬로페 크루즈다. 범인으로서는 참 감당키 어려운 여인. 이 영화가 그리는 캔버스 중심 자리에 자기 자리만 딱 잡아 놓고는 정작 가끔씩만 나타나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강력한 존재감. 영어로 대화하자는 후안의 요구에는 아랑곳없이 빠른 속도로 쉴새없이 몰아치는 그녀의 에스파뇰을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여인과 살아 보는 것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되는데 난.

어쨌건 크리스티나는 자신과 그 자유 및 열정의 아귀가 딱 들어 맞을 줄 알았던 후안과의 관계에 자신이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아가 강한 마리아가 개입을 하게 되면서부터 마치 비키가 자신의 모범스러워야 한다는 관념을 허물듯이 크리스티나도 자신의 자유로와야 한다는 관념을 허물어 버리고 마는 듯 보인다.


그만큼 마리아는 '사랑'과 '윤리', 그리고 '관계'에 있어 비키, 크리스티나, 후안 모두에게 정말로 감당키 어려운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사랑으로 엮이는 인간 관계에 있어 엄청난 매력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명적인 함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매력적 요소를 좀더 부각시키는 듯 하고 나도 비교적 긍정적인 눈빛으로 스크린을 바라다 보았다.

이혼 후에도 후안과의 관계를 지속시키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지키기 위한 대단한 집착과 불같은 열정은 여전한 그녀의 삶을 보면서 내가 한가지 확실하고 새롭게 새기고자 하는 것은, 성격, 인생관, 윤리, 라이프스타일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안맞아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칼을 휘두를 정도로 치열하게 정면 충돌하는더라도 (특히 결혼의 경우) 그것을 '증오'의 관점에서 보면 안되겠다, 라는 거다.


마리아와 후안의 관계는 영화 내내 충돌과 화해의 반복으로 그려진다. 때로는 대단히 위험한 관계로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관계이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영역 싸움으로 충돌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점점 독특한 하나의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런 것이 또한 치열한 '사랑' 이겠지.

확실해진 것은 '관계'의 아귀가 어긋나고 충돌한다 해서 사랑이 어긋나는 거냐, 그건 아니라는 거다. 저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이제부터는 관계의 충돌은 인간이 느끼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과 충분히 양립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가 이런거다. 자신 스스로도 아마추어 사진 작가로서 평가했던 크리스티나에게 마리아가 자신을 찍게 하면서 그녀에게 잠재되어 있던 작가적 영감을 불러 일으키며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하는 마리아의 모습. 그녀는 크리스티나와 후안과의 관계에서 열정이라는 단물을 빠지게 하지만 동시에 크리스티나에게는 작가적 영감을 선사한다. 불같은 정열의 여인과 나름 근사한 거래 아닌가.


2009년 4월 2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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