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을 흘리다. 피와 땀을 흘리다. 피 흘리며 번 돈, 땀 흘리며 번 돈. 그 가치를 구별한다. 피를 팔아 큰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허삼관은 피와 땀의 가치를 구분하고 피 흘려 번 돈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허삼관에게 피는 곧 돈, 힘도 곧 돈이다. 인생 역정의 커다란 몇몇 분수령에서 그는 피로 돈을 사서 위기를 넘기고 행사를 치루기도 한다.

"땀 흘려 번 돈을 일락이한테 쓰는 건 나도 바라는 바지만, 피 팔아 번 돈을 그 애한테 쓰는 건 왠지 좀 그렇다구..." 아내 허옥란과의 첫 아들 일락이가 친자식이 아님을 알고 나서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허옥란과 일락이를 구박하고 피를 팔아 번 돈을 그들에게 쓰기를 꺼려한다. 친아빠 찾아 가라, 소리지르고 티격태격 함께 살면서도 허삼관과 허옥란과 일락이는 (물론 이락이 삼락이도 함께) 가족이라는 끈은 절대 놓지 않는다.

긴 가뭄이 들면 절대로 힘쓰지 말라며 온 가족이 그냥 누워서 굶는다. 문화대혁명의 폭풍이 몰아치면 함께 손잡고 허옥란을 헛비판하면서 시대의 아픔을 공유한다. 허삼관-허옥란, 허씨 부부와 그와 자식들 일락, 이락, 삼락 가족은 그렇게 非인권의 나라로 달려가는 중국의 격변과 시련을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 나간다. 아... 중국이라는 나라

병들고 아픈 허삼관의 아이들, 노인이 된 허삼관은 거의 정신이 나간 듯 친자식 아닌 그의 아들 일락이 그리고 이락이를 위해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피를 팔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한다. 목숨을 건 노인의 매혈.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이다. 아, 아버지란... 친자식이 아니라며 아내에게 그토록 욕을 하고 일락이를 구박하던 허삼관이 자신의 모든 피를 뽑아 줄 자식은 기른 자식이지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거다.

중국의 위대한 작가 위화가 1995년에 발표한 <허삼관 매혈기>는 허삼관-허옥란, 그리고 그의 아들 삼형제 이렇게 한 가족의 이야기로서, 피를 팔면 죽어라 땀흘리는 노동으로는 만질 수 없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허삼관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큰 역경이 닥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팔아 위기를 넘기곤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소설을 읽기 전 매혈(賣血)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가난, 아픔, 고단함, 슬픔이었으나 <허삼관 매혈기> 문장의 터치는 시종일관 익살과 해학이다. 좀 기이하기도 하고 너무 웃긴 나머지 버스에 앉아 회사로 가면서도 혼자 키득키득거리기까지 한다.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 광기의 시대가 민중의 삶이 고단할 것과 극한의 개인주의의를 강요하며 메말라가지만, 그 속에서 허삼관이 파는 피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의 이미지로 점점 변화한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마음에 드는 소설이고 중국어를 모르기는 하지만 위화의 문장에 상당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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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아직도 매혈과 AIDS 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위기의 미국에서도 피를 파는 서민들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헌혈이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조직적인 매혈단이 성행하고 혈장, 적혈구, 백혈구 등으로 분리되어 각국으로 수출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온다.

실은 우리나라도 혈액수출국이던 시절이 있었고 625 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매혈 국가이기도 했단다. 피를 파는 날이면 병원은 피를 팔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1980년대에 매혈이 금지되고 헌혈이 도입되면서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그건 모를 일이다. 예전에 적십자가 피장사를 한다는 뉴스 듣고 열받은 적도 있지만, 가진 것이 몸뚱아리 뿐이라고 이 '피'라는 것이 참...

중국의 고속성장과 부의 소수집중, 그리고 소외되는 대다수 민중들의 가난, 그리고 매혈. 대단히 개인주의가 강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중국에서 헌혈이라는 제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공동체로서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면서 재생산과 훈련의 의미가 더해만가는 우리나라 가족 개념의 변화와 부의 소수집중화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다시 매혈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우려, 솔직히 많이 든다.

그러다보니 허삼관이라는 아버지상과 인간상,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매력있고 어찌보면 순수하게 보이는 그의 매혈 행위는 개인의 그러나 위대한 삶의 단면같기도 하다. 슬픔과 아픔의 이미지보다는 인간애와 가족의 소중함의 이미지를 그려나가는 이 매혈기(賣血記), 어찌 이 소설이 멋지지 않을 수가 있을지.


2009년 3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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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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