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공산주의자였던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가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 마을에 잠깐 머무를 때 알게 된 소박한 우체부 마리오와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 1994> 는 마이클 래드포드 (Michael Radford) 라는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DVD 로 출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1969년 파블로 네루다는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나 철회하고 사회당의 살바도르 아옌데와 후보 단일화를 이루고 아옌데를 밀어 줍니다. 그러나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한국의 전두환 정도로 보면 됩니다) 는 구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쳐들어가 아옌데 대통령을 죽이고, 이로 인해 네루다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1973년 세상을 떠납니다. 참조


마이클 래드포드는 <일 포스티노> 를 만들기 10년 전인 1984년에 <1984> 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다름 아닌 조지 오웰의 1949년 소설인 <1984> 를 1984년에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우연인지 의도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84> 는 알다시피 에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 We>,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 Fahrenheit 451> 등과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 중 고전입니다. 이 소설들은 그냥 소설입니까? 미래 사회를 걱정하는 선배들의 경고였습니다. 아마도 <1984> 만큼 읽고 나서 마음을 그렇게 무겁게 하는 작품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화씨 451> 은 프랑소와 트뤼포가 영화로 만들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면 인류의 사상 전파를 철저하게 통제하기 위해 책을 금지하고 불태우는 소방수가 등장하고,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커다란 벽걸이식 TV 가 등장합니다. <1984> 에서도 곳곳마다 집집마다 벽에 텔레스크린이 달려 있어, 당의 권력에 절대충성하는 미디어가 그 스크린을 통해 인간을 철저하게 속이고 공포를 조장하고 그 사상을 통제하고 역사를 날조하고 사건을 조작합니다. 저의 집 벽에 걸린 TV 에서도 왜 자꾸 그 속에서 빅브라더가 나를 노려 보고 있는 것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레이 브래드베리나 조지 오웰은 자신들의 소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한 것입니까? 정치 권력에 충성하는 미디어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대중에 대해서는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미디어는 법과 사회 시스템의 가치는 당의 빅브라더에 대한 절대충성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의 하위에 존재한다라고 대중을 세뇌시킨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영화 <매트릭스> 에 나오는 그 기계가 창조해 낸 매트릭스라는 공간도 미디어가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회의 또 다른 변형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매트릭스에서 살고 싶으십니까? 아마 대다수가 매트릭스에서 살겠다고 할 겁니다. 미디어와 마케팅이 꾸미는 나라 미국이 매트릭스 같다는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매트릭스는 선진국입니까?

조중동은 어떤 신문입니까? <1984> 에서처럼 하나의 당에 절대 충성하고, 빅 브라더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골드스타인같이 모든 군중이 증오하는 대상을 만들고, 있지도 않을 전쟁의 공포를 늘 주입하고,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역사를 날조하고, 사건을 조작하고, 자신의 오류를 계속해서 지우고, 거짓말하고... 그렇게 해서 당에 대한 충성을 헌법의 상위개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권력을 등에 업은 웬만한 불법과 범법이 언제부터 그렇게 당연시 된 것입니까?  MB 정부와 경찰이 배후 세력 운운하는 것은 아마도 그 국민 증오의 배출구를 위한 골드스타인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목된 배후세력에게 증오를 퍼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증오해야 하는 것입니까?

<1984> 에서 조지 오웰이 그렇게 통렬하게 비판했던 것은 절대 권력에 대한 미디어의 무조건 충성이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아마 조중동 류의 미디어가 앞장 서서 그런 역할을 해 왔을 것입니다. 그래도 정치 이외의 분야에서는 조중동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권력 위에 군림한 미디어가 내는 모든 소리가 컹컹 개소리가 아님을 저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최근에는 네이버가 조중동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인 스크린을 통해서 빅브라더를 섬겨야 하는 시대?


영화 <1984> 는 조지 오웰의 원작에 아주 충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존 허트 (John Hurt) 가 윈스턴 스미스로, 리차드 버튼 (Richard Burton) 이 오브라이언으로 나옵니다. 리차드 버튼은 이 영화 촬영을 마치고 한 달이 지나 세상을 떠났고, 존 허트는 최근 <인디아나 존스 4편> 에도 출연하는 등 지금도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의 <엘리펀트 맨> 에서 코끼리 인간일 때보다 <1984> 에서 윈스턴 스미스으로 등장하는 존 허트에 저는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윈스턴 스미스는 어떤 인물입니까? 과거 및 현재의 사건을 조작하고, 당과 빅브라더의 오류를 지워 나가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빅 브라더 이미지의 완벽성을 구축합니다. 모든 경제 지수 예상이 틀리게 되면 과거의 예상 수치를 다 고치고 조작합니다. 그래서 성장했다 좋아졌다 라고 난리를 치고 빅브라더에 대한 찬양을 늘어 놓습니다. 이것은 미디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당독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MB 정부와 한나라당 지금 일당 독재 가능합니다.

조중동은 늘 독재일당에 충성해 왔습니다. 계속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조중동은 1년 전 O 라고 한 거 오늘 X 라고 말하고, 2년전 X 라고 말한 거 오늘 O 라고 말합니다. 그나마 MB 정부가 너무 무식해서 그것도 이제는 잘 안 먹힙니다만, 꼭 광우병 뿐만이 아니더라도 늘 그래왔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교육같지도 않은 교육 시스템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까? 과거 참된 교육의 가치가 날조되고, 미래의 가치가 영어에 의해 조작되어 왔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지금의 10대들과 그 부모들이 화를 안 내고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 아닙니까? 우리 나라 교육 시스템을 접수한 사교육 집단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영어는 빅브라더입니까? 영어에 절대복종하라고 종용하는 사람들과 언론사는 누구와 어디입니까?

장담컨대 "외국어로서의 영어"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잘해야 기능 인력 수출 밖에 할 거 없습니다. 한국 내에서야 "의사소통으로서의 영어" 의 필요성이 당연히 없을 테고... 오로지 "시험으로서의 영어" 아닙니까?
"문학으로서의 영어" 라면 저는 환영입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누군가에 의해 되먹지도 못한 조작된 가치 때문에 치열하게 경쟁하고 스트레스 받고 좌절해야 하는 한국의 10대들은 왜 그러고 살아야 합니까?
MB 는 도대체 왜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합니까? 조용히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삶을 꾸려 가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가 말입니다. 그 사교육 집단으로 흘러 들어가는 그 사교육비가 각 가정에서 아이들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쓰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들은 힘들게 벌어 왜 가족의 행복을 희생시키며 누구 좋으라고 사교육 집단에 갖다 바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 없게 만든 것입니까?

미디어 존속의 기반이 권력이냐 신뢰도이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이 권력이면 빅브라더를 만들어야 하고 조중동같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주류 미디어가 신뢰를 쌓고 있습니까? 방송국의 기자들은 눈치보다가 늘 PD 의 뒷북만 치지 않았습니까? 진실과 신뢰란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미디어의 신뢰도는 언론사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버린 조중동은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좀비 미디어로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영혼은 죽고 몸만 살아 있어 식욕 만을 채우는 것들을 좀비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접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그렇다고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 중에서 조작되고 날조된 것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혹 정말 "진실에 목숨거는 기자" 를 지망하는 분들이라면 이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가 흘리는 오늘의 뉴스가 과연 내일도 진실일 수 있는 가라는 것을...

리차드 버튼이 이전에 출연했던 영화 중에서는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나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같은 작품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저는 제프 웨인 (Jeff Wayne) 의 <The War of the Worlds, 우주 전쟁> 뮤지컬 버전에서 주인공인 저널리스트로서의 나레이션 연기를 하는 리차드 버튼에도 상당한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프 웨인과 Moody Blues 의 저스틴 헤이워드 (Jutin Hayward) 의 음악과 락 뮤지션들이 들려주는 <우주전쟁> 이야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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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쟁> 은 어떤 작품입니까?  H.G. Wells 의 1898년 소설인 <우주전쟁> 은 영국이 화성인에 의해 침략당하고 무차별 그리고 무자비하게 뜯기는 상황을 그려내면서, 그러니까 피침략자의 입장이 되어 그 그 야만성과 고통을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영국의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SF 고전의 고전입니다.

글로벌 경제라는 것이 무엇이고, FTA 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래 전 영국과 유럽 대륙이 자행했던 제국주의의 또 다른 미국식 우주 전쟁 아닙니까?  세계 경제 체제와 기구들이 정말 국가간 이익이 되는 자유로운 무역을 권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전쟁을 권장하고 있습니까? 미국은 늘 전쟁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때에도 조작과 날조를 해주는 미디어가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기구와 시스템 자체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달라 붙어 있는 인간은 어떻습니까?  글로벌, 또는 거시적 경제는 멀리서 바라보는 숲에 불과 한 것 아닙니까?  그 숲이 보인다고 해서 그 안에 아름다운 경제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들입니다. 경제적 인간은 도덕적 가치에 의해서 움직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고단수 금융 우주 전쟁으로 우리는 IMF 라는 폭탄을 이미 호되게 맞고 뜯긴 나라입니다. 아직도 미국에게 뜯길 것이 남아서인지 미국은 FTA 재협상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봐라 미국도 재협상 요구할 정도면 우리에게 유리한 거 아니냐" 라며 지금까지의 협상은 잘한거다 라는 논리를 펴고 있고, 미국산 소고기 타령할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지금 얼마나 침체되어 있습니까? 
당연히 미국은 자국의 산업과 자국의 노동자들을 보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적어도 민주당 정권하에서는 말입니다. 공화당은 버렸지만... 한국은 왜 자국의 산업 보호를 안합니까?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만 있습니까?

메모리 더 팔고 자동차 더 판다고 과연 한국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되고 그래서 선진국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까? 다른 부분에서
미국에게 뜯긴 부분을 메꾸는 방법으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를 뜯어 먹는 것이 FTA 라는 우주 전쟁의 실체 아니었습니까?  한국은 화성인의 침공에 대응할 수 있습니까? 지금 미국과 한국의 우주 전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글로벌 금융 또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볼 때, 한국 내에서의 환율 위기, 금육 위기, 스태그플레이션이니... 하는 말들이 지금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안으로는 유가 급등, 물가 폭등, 서민경제 붕괴, 부동산 거품 위기... 뭐 그런 말이 계속 들립니다. 수출 많이 해도 다 기름값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점점 줄어 들고 있는 석유의 경제 의존도를 낮추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FTA 를 해야 하네, 글로벌 경제여야만 살수 있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편입했고 10년 전엔 왕창 깨진 바 있습니다), 수출해야 먹고 사니 FTA 비준 좀 제발... 하고 있습니다. 운하, 건설, 자동차... 뭐 석유 들입다 쓰는 사업만 벌이겠다고 하니... 조중동이 떠드는 마케팅과 수치 중심의 경제 뉴스 다 거짓말 아닙니까? 진실을 알리고 위기를 진단하기보다는 여전히 날조하고 있는 조중동에게는 그렇다면 한국의 대기업도 대중이 절대 복종해야 하는 빅브라더인 겁니까? 삼성은 빅브라더입니까?


저는 조중동 따위가 조작해내는 우리들의 각종 빅브라더 이미지를 깰 그 해답은 위대한 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런 책들을 많이 읽어 주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미래라는 것은 아마도 그냥 버리고 사는 편이 나을 지 모릅니다. 우리 주위에는 조작과 날조를 위해 쓰여진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이들과 싸워 가면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위대한 문학, 철학, 역사, 예술, 인문, 사회학 등의 책들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 편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좋은 영화 한편이 만들어 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술? 돈? 오호호호... 천만에 말씀... 문학, 철학, 인문학, 미학... 이런 거 아닙니까?

대부분의 영어 교재는 인간의 사상을 통제합니다. 대부분의 10억벌기 처세술 교재는 인간의 행복을 앗아 갑니다. 대부분의 학원은 인간의 자유를 통제합니다. 대부분의 TV 는 우리의 시간과 영혼을 뺏어 갑니다. 우리의 시간으로 시가를 말아 피워야 생존할 수 있는 회색인간들처럼 말입니다.

미하엘 엔데는 1973년 소설 <Momo> 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효율적이지 않은 거, 필요없는 거 다 버려라, 여유있는 삶? 그게 뭐냐... 바쁘게 뛰어야 살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을 아껴라... 라고 하는 회색인간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한 것 아닙니까? 때로는 뒤로 가는 거, 거북이처럼 가는 거 절대로 나쁜 거 아닙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아껴야 하는 것인지 저는 궁금합니다. 한정된 시간을 아껴쓰기 위해 우리는 고전소설 대신 영어교재를 읽어야 합니까? <Momo> 에서 회색인간은 또대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말아 피우는 시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자꾸 조중동과 MB 정부에 달라붙은 기회주의자들이 떠올려 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지 궁금합니다. 그들은 혹시 지금 자신들의 시가를 말아 피우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삶의 여유를 빼앗고 있는 쥐색 인간들은 아닙니까? 강하게 읽으면 쥐새끼...?

우리가 책과 때로는 위대한 예술을 위해서 시간을 아끼지 않을 때 그 쥐색 인간은 그들의 시가를 만들지 피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먹어야지 쥐색 인간이 먹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쥐색 인간은 돈주고 책을 살 줄만 알았지, 우리는 우리의 시간으로 그 책을 읽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것은 위대한 책 한권과 그것을 읽는 그 시간 말고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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