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악마의 공통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다. 늑대는 왜 양의 탈을 뒤집어쓰고 악마는 왜 천사의 얼굴을 하는 것인지... (물론 잡아먹기 위해서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실체를 감추고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의 속성은 도대체 뭐지... 늑대와 악마에게 과연 윤리에 대한 개념과 의식은 존재할까..."

어린 양에게 접근하기 위해 뒤집어 쓴 양의 탈 속에서 늑대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놈이 속길 바래, 멍청하길 바래, 나의 실체를 모르길 바래..." 인간에게 접근하기 위해 덕지덕지 허옇게 바른 천사의 분장 속에서 악마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간은 다 속아, 멍청하지, 내가 누군지 꿈에도 생각 못할껄..."

가끔씩 눈치 빠른 양들과 인간들 때문에 재수없이 몇번 그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어린 양들과 아이들에게 양의 탈을 쓴 늑대와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를 절대 조심하라 경고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늑대와 악마는 어린 양들과 인간들이 이번에는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좀더 정교하고 좀더 완벽한 양의 탈을 만들고 천사 분장을 하는데 엄청난 공을 들인다. 그럴수록 윤리의식은 더욱 실종되겠지만.

그 늑대와 악마들은 좀더 정교한 탈을 만들고 정교한 분장을 하면서 또한 무슨 생각을 할까. 당신은 당신에게 다가오는 양과 천사 중에서 그렇게 탈과 분장에 지대한 공을 들이는 늑대와 악마를 구별해 낼 수 있을 것 같은가?  빌 S. 밸린저의 <연기로 그린 초상> 에는 다소 충격적인 그 한 사례가 쓰여져 있으니 관심있는 당신은 찾아서 한번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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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S. 밸린저의 1955년 작품 <이와 손톱 The Tooth and the Nail> 은 두가지 이야기를 교차 편집해 놓은 형식을 띠고 있다. 살인사건과 그 용의자를 두고 법원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옥신각신하는 이야기 하나와 떠돌이 마술사가 아내를 죽인 정체불명의 범인을 추적하여 떠돈다는 이야기 둘이 번갈아 등장한다. 그리고 기승전결, 결에 이르러서야 그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건에서 만나고 각각의 궁금증 역시 한꺼번에 풀리게 된다.

1957년 작품인 <기나긴 순간 Longest Second> 역시 유사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목이 잘린 채 발견된 퍼시픽이라는 남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기억을 잃고 그 이후 자신이 누군지 알아나간다는 이야기 하나와 역시 퍼시픽이라는 동명의 남자가 목이 잘렸지만 이번에는 숨진 사건을 조사해 나가는 경찰들의 수사과정을 그린 이야기 둘이 번갈아 등장하고, 역시 결에 이르러서야 그 두 개의 이야기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면서 그 모든 궁금증이 풀린다.

그런데 이 두가지 이야기를 교차 서술하는 스타일은 빌 S. 밸린저의 첫번째 성공작이라는 1950년 작품 <연기로 그린 초상 Portrait in Smoke> 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 작품에서 보여진 교차 편집 방식이 만약에 내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하나의 모델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책으로 읽는 헐리우드의 서스펜스 영화 한편 같다고나 할까...

수금 대행업자 대니 에이프릴과 미녀 크래시 알모니스키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어 있다. 조그마한 수금업체를 인수한 대니 에이프릴은 십년 전 자료를 정리하다가 크래시 알모니스키라는 여인의 이름을 발견한다.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미녀의 사진 한 장이 실린 신문 쪼가리와 함께. 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니는 그저 사진으로만 접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사로 잡힌 것인지 모르겠으나 최초로 그 사진을 실었던 신문사를 찾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크래시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크래시 알모니스키는 빼어난 외모를 지닌 17살 여학생이다. 그녀는 구박하는 아버지와 계모를 벗어나 지긋지긋한 삶을 벗어나 어떻게든 그곳을 떠나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 동네 신문사가 주최하는 미스 선발대회에 지원하고 책임자를 유혹하여 대회 일등까지 하고 받은 상금으로 드디어 그 동네를 떠난다.

대니는 크래시가 이름을 바꿔가며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더해만 가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 이 아름다운 여인은 모델 학원과 비서 학원은 왜 다녔을까, 취직한 광고회사는 왜 그만 두었으며 이름은 왜 자꾸 바꾸는 걸까... 때로는 그 단서가 끊겨 추적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크래시의 현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크래시는 지난 기억에 대한 흔적과 발자취를 지워 나간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랑과 이별'의 계략과 연기를 반복하며 계속 남성을 바꿔 나가고 하나하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나간다. 사진기자의 모델에서, 광고회사의 비서로, 군인의 아내로, 그리고 은행갑부의 아내로... 오로지 성공을 향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뿐이다. 그녀에게 남자의 가치는 스쳐가는 도구일 뿐이다.

<연기로 그린 초상>은 앞선 두 작품보다 기승전결은 꽤 긴박감이 있는 편이다. 대니가 잘 모르는 상상 속 여자에 사로 잡혀 그녀를 찾아 나가는 과정과, 크래시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는 과정을 교차시킨다. 그러다 드디어 그 둘은 만난다. 그래서 도달하게 되는 결. 어이구, 이런... 팜므 파탈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군... 지금 읽어도 꽤 놀라운 반전도 있다. (이 정도면 요즘도 충분히 먹히는 반전일 듯 싶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대니의 이야기는 대니가 크래시에게 점점 더 집착을 하면서 그녀를 쫓는 것이지만 크래시의 이야기는 그녀의 실체를 하나하나 벗겨내며 그녀가 악녀임을 밝혀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독자는 일종의 안타까움으로 대니의 이야기를, 일종의 분노로 크래시의 이야기를 읽어나가게 된다. 크래시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채 그녀를 쫓는 대니와 또한 자신의 흔적을 밟아 온 추적자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여전히 자신의 성공가도에만 매달리는 크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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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맨 처음 제기했던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이런 팜므 파탈의 유혹과 계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녀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 외에는 그 아무것도 염두에 두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방의 실패와 파멸은 관심없고 오로지 자신의 성공만이 최대의 가치다. 순진한 당신은 과연 이런 사람의 계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냐는 거다. 철저하게 준비한 사기꾼을 피할 수 있느냐, 라는 물음도 마찬가지.

'팜므 파탈'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상상의 이야기?  <연기로 그린 초상> 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나는 그 누군가의 인생 발자취가 떠올랐다. 정말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름을 바꿔가며 흔적을 지우고 새롭게 이사간 곳에서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 듯 행세하며 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치명적 옴므 파탈. 대통령 경선 토론회를 보고 거의 확신을 했었지.

TV 와 드라마에 등장해서 사람들의 영혼을 확 뺏어가 버리는 수많은 연예인들과 TV 그 자체, 양의 탈을 쓴 늑대와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김태희, 전지현, 송혜교가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나? 혹시 당신은 스스로를 그녀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크래시의 흔적을 쫓아가는 대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나?  그녀들이 이름을 바꾸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는 그 치명적인 팜므 파탈의 정체를 드러내는 이야기는 혹시 궁금하지는 않냐는 거다.

나는 사람들이 TV 라는 미디어와 연예인들의 윤리의식에 대해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절도, 도박, 음주운전, 마약, 폭력, 심지어 살인 같은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버젓이 TV 에 등장해 깔깔대는 연예인들과 성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눈을 찢고 턱뼈를 깍아내고, 몸을 바치고, 학력을 조작하고, 지난 삶의 행적을 뜯어 고치는 그들에게서 과연 그 어떤 윤리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할지... 난 그것이 궁금하다는 거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그 세계에 뛰어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윤리라는 덕목이다. 성공하고 싶어? 성공하고 싶으면 연락해... 라며 더 정교한 양의 탈을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더 새하얗게 천사로 분장시키는 그들과 그들의 세계에서는 과연 윤리라는 것이 있을런지...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만들어진 연예상품들과 콘텐츠들을 보고 우리는 왜 마냥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난 당최 이해가... 결국 TV 가 쏟아내는 각종 이미지는 훅 불어버리면 다 날아가 버릴 연기로 그린 초상과 다를 것이 없는 것 아닌가.

2009년 3월 1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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