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배철수가 예능프로에 나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20대들은 원래 투덜대고 이유없이 반항하고, 사회에 불만이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고, 40대 이후부터는 세상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기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자기들이 투덜대서는 안 된다."


2004년, 독일/오스트리아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The Edukators> 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20대에 반항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것이고,
40대가 되어서도 반항하는 사람은 이성이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그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열혈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갑부의 벤츠와 교통사고를 낸 율은 보험을 들지 않은 탓에 어마어마한 피해보상금을 빚으로 지게 되고,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며 근근히 갚아 나갑니다. 게다가 집세를 밀려서 늦게 냈다는 이유로 아파트에서 쫓겨나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갚아야 하는 보상금은 어쩌면 일생 동안 그녀를 옭아 맬수도 있는 큰 돈이지만, 갑부에게는 그가 가진 여러 대의 자동차 중 한 대 값일 뿐이었죠. 그러나 그녀는 이런 와중에도 다국적 대기업의 아동 노동 착취 실태를 아디다스 매장 앞에서 비난하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남자친구 피터 집에 얹혀 살게된 율은 피터의 룸메이트 얀을 알게 되고, 얀 역할은 <굿바이 레닌!> 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Daniel Brühl 이 맡았죠. 얀과 피터가 밤마다 고급 빌라에 침입하여, 자신들의 침입 흔적을 남기고 Edukators 라는 이름으로 부르주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들은 단순히 침입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구를 재배치하고 오디오를 냉장고에 넣는 등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괴상한 인테리어를 해놓고 나가지만, 절대 훔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죠. Vandalism 이라는 장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저였지만 이들의 행위예술은 지루하고 진부한 인테리어를 바꾼다는 의미에서 꽤 신선하더군요.
    
이들이 글로 남겨 놓는 메시지는 "Your days of plenty are numbered." (영화의 원제목임.) 또는 "You have too much money." 등의 부유함을 부끄러워하기를 바라거나 부유함이 오래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기를 바라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서 얀, 율, 피터 세 젊은 친구들은 원치않는 납치를 하게 되고, 납치된 한 백만장자를 데리고 산장으로 가서 숨어지내게 됩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좀더 흥미로운 상황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 백만장자는 놀랍게도 자신이 68혁명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멤버들 중 하나였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이 네 명 사이에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영향인지 공감대와 연대감이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하고, 사회시스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벌일 정도로 비교적 화기애애한 시간을 나누기에 이르죠. 매우 흥미로운 이 영화의 결론이 어떻게 나는지는 직접 보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토론에서 충돌하는 것은 어쩌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일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분노하고, 혁명을 주장하는 젊은이들에게 나도 한 때는 너희와 같았지만, 현실에 부닥치게 되면 어쩔 수 없다면서 변명하는 백만장자의 논리는 영화 속에서 참 궁색하게만 들리더군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신/구세대 간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 문화가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나이 든 사람들과 토론을 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대든다거나, 버릇없다는 식의 꾸지람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겠죠. 어린 것들이 뭘 아느냐 하면서, 전혀 존경스럽지 않은 "그동안 먹은 밥그릇 수"를 따져가며 토론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분위기라면, 사회 개혁은 꿈도 꿀 수 없으며, 오히려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율이 아파트에서 쫓겨나면서, 율과 얀은 페인트칠과 도배를 하게 됩니다. 아파트 내부 상태를 원상복귀해 놓아야 보증금을 돌려받기 때문이죠. 어설픈 도배실력으로 고생만 하고, 제대로 되지 않아 낑낑 매던 두 사람은 빨간 페인트로 낙서의 퍼포먼스를 벌이며 아파트 벽들을 엉망으로 만들고서는 벽에다가 "보증금 다 처먹어라." 하고 써 놓고 나와 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하고, 진짜 젊음이라는 게 바로 저런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20대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반항심과 뜨거운 에너지를 어디에다 쏟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에너지에 불을 붙이기도 전에 고분고분한 기성세대 안으로 편입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현 사회 시스템에 단지 막연한 불만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혁명을 꿈꾸는 사람은 몇명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끝으로, 영화 대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Every heart is a revolutionary cell."


2008년 8월 10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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