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를 두고 논쟁이 벌어질 때, 경제발전론자들은 "현실적으로 경제 성장이 우선 아니냐" 라고 주장하면서, 환경보호주의자들을 "이상론자" 들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경제보다 환경을 앞세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던가, 그런 건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몇몇 서구 국가에서나 생각해 볼만한 주제 아닌가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



이 책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환경론자들이야말로 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불편한 진실에서 Al Gore가 역설하는 바와 같이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고, 경제성장이 초래한 환경오염의 "Consequence"를 감당해야 하는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현실적으로 따져 보아도, 상당히 파괴된 "환경"의 보호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경제고 뭐고 간에 당장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론자들은 아직도 "현실"을 파악 못하고 "성장"과 "발전"만을 외치고 있다는 거죠.

저자는 경제성장은 빙산을 향해 가는 타이타닉호와 유사한 운명과 같다라고 비유합니다. 누군가 빙산을 보고 소리치지만, 다들 자신이 맡은 일을 할 뿐이며 배는 그냥 앞으로 가죠.

이 발전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것은 1949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미국이 미개발 (Under-Developed) 나라들에게 기술적, 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Develop) 정책"


을 제창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이 Develop 라는 단어가 강제성을 띤 발전당함의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유엔헌장에 "식민지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을 때이기도 하며, 그 이전까지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로 이득을 보던 국가들이 제3세계에 대한 패권을 미국에게 넘겨주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큰 호황을 누린 미국은 전쟁이 끝나면서 닥쳐올 불경기의 위기 상황에 대비해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고 있었고, 이제 막 식민지에서 벗어난, 혹은 아직 식민지 상태인 국가들로 하여금 "투자 하기 쉬운", "이익을 내기 쉬운" 경제제도로 바꾸도록 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결국 트루먼이 만들어낸 "발전시킨다"는 용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정 간섭"이나 "착취"를 숨기는 교묘한 언어의 프레임을 이용한 전략이고, 최근에 자주 사용되는 "세계화" 역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는 단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식민주의"나 "제국주의"라고 대놓고 말하는게 그나마 솔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화"라는 단어는 너무 가증스럽다고나 할까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괴상함과 마찬가지로 ...

NAFTA 나 FTA 등의 경제 자유화 정책들을 뜯어 보면, 실제 의미는 무역의 자유화가 아니라 "투자의 자유화"이고,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값싼 임금을 찾아 다니는 대기업 사이의 경쟁과 함께 선진 공업국의 실질임금까지도 내려가게 하여, 결국 투자의 자유화는 곧 "착취의 자유화"가 된다고 것입니다.

실제로 제3세계 국가들 중에는 그 "발전"의 결과로 "슬럼"이 생기고 "극빈층"이 탄생한 나라가 많습니다. 발전해서 잘 살게 되는 게 아니라, 발전의 결과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일까요?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설령 "발전"이 "모두가 잘 사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온 세계가 미국식의 소비 패턴으로 바뀐다면 지구가 결코 견디지 못한다는 겁니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주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자본주의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는 경제 성장이 진보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진보에 따라 바뀌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
물질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진보시켜야 하고,
문화를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라 창조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환경이 파괴되더라도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책없는 이상론자들이고, 당장 지구에 위기가 닥쳤으니,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냉철한 현실주의자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구절:


어떻게 하든지 매년 경제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시스템이면 진짜 필요한 물건만을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필요없는 물건을 생산하여, 그것을 "광고"로 어떻게든 팔아가지 않으면 성장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고전 경제학의 자유시장론에서는 세상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물건은 팔 수 없으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했지만 그건 광고산업 이전의 이야기였습니다.


히스테리에 가까운 선전이나 상업광고를 보고 있으면, 소비자가 물건을 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기업에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가 잘 이해됩니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텔레비전의 상업광고를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자라든지 당근이라는지 콩에 대한 상업광고는 없습니다. 상업광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쓸데없는 것을 사도록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광고를 즐겨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기 보다는 광고만 재미있게 보고, 가능한 물건은 사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게 되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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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을 역설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용어로는 "세계화" 또는 "경제/무역 자유화", 그 본질을 따져본다면 "투자 혹은 착취의 자유화" 라고 했는데요... 이 세계화(Globalization) 의 맹점은 "이분법"과 "통계"가 아닐까 합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책에 보면, 재미있는 비유가 나옵니다. 포유류를 '토끼'와 '非토끼'로 나누면 코끼리와 고래와 개가 같은 범주에 들어가고 종교를 '기독교'와 '이교도'로 나누면 불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는... 이러한 이분법은 유럽에서 오래동안 유지되어 오던 분류법이라고 합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유럽과 非유럽' 또는 '문명국과 야만국'이라는 사고방식이 고착화되죠.

그리고 앞선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트루먼이 말했던 '미개발'이란 용어도 유럽과 미국의 시스템과 이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것의 이분법을 말합니다.

그들의 이분법 하에서 "야만국"과 "미개발"의 범주에 속하게 되는 (인디언의 문화, 이집트와 인도 문명, 잉카등의 남미 문명, 그리고 제3세계 등을 포함하는) 타 문명이나 문화를 서구 문명화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시켜 온 것이 세계화라면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파괴"였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식민지 시대를 본다면, 물질적인 것에 욕심을 내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부끄러운 일로 여겼던 고고한 윤리 의식을 가진 현지인들을 "서구화"하기 위해서 (자국의 노동자들처럼 장시간의 임금노동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세가지 종류의 방법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 노예제와 비슷한 직접적인 강제 노동
- 세금제도를 만들어 세금을 못내면 강제노동을 시키는 간접적인 방법
- 현지인들 자급자족 터전이던 숲을 태워버리고, 대신 커피나 고무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어 그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방법 바나나공화국이 탄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겠군요.

그리고 식민화된 국가들이 "세계화"되었는지는 평가하는 방법으로 개개인의 삶의 질이나 행복을 따지기보다는 경제성장을 눈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측정가능한 수치화된 "통계"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하네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세번째가 통계.

"한손은 뜨겁게 달궈진 난로에 얹어놓고 또 한손은 지독히 찬 얼음 위에 얹어 놓은 뒤 평균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손에 통증이 없을까요?"

세계화를 통해 국민 소득이 "만약" 높아진다고 가정했을 때, 20%의 사람들이 더욱 부유해지고, 80%의 사람들이 더욱 가난해지더라도, 평균 소득이 증가하면 그건 "경제 성장"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에 눈이 먼 사람들은 불행히도 국가의 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 중에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트루먼의 연설 이후 미국에서 '발전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났고,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도입되어 막대한 돈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포드, 락펠러 기금, 국방성 장학금 등이 대학교로 흘러 들어갔는데, 그 수혜조건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언어 공부하기', '경제성장 이데올로기 공부하기' 등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외국의 젊고 유능한 사람을 미국의 대학으로 불러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집어 넣은 후, 각 나라의 소위 경제발전 엘리트로 길러놓고 돌려 보냈다고 합니다. (한미FTA를 진두지휘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저격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요즘에는 "경제"라는 것이 세상의 거의 모든 걸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정치" 문제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도,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도,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기아 문제"도 전 지구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환경 문제"도 결국엔 모두 "경제"와 "자본"으로 귀결되어 버리는 느낌이구요...

한편으론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지만, 썪어가는 알맹이를 숨기는 숫자에 불과한 "통계"에 가능한 속지 않도록 노력이 필요할 것 같고, "세계화(서구화)" 라는 세계 획일화에 맞서 우리 문화와 언어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읽은, 다음 구절이 마음에 팍 들어오네요.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알지 못하면 오늘날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07년 5월 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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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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