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말문을 닫았던 손자가 할아버지가 떠난 뒤, 함께 바닷가에 심었던 죽은 나무에 물을 다시 주면 아름다운 알토의 슬픈 아리아가 흐르고, 손자는 그 앙상한 나무의 그늘에 누워 혼잣말로 입을 연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 아빠, 그게 무슨 말이죠?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영화 <희생 (1986)>의 마지막 장면이다. 난 이 영화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3차대전이 발발하고 지구는 파멸을 향해 간다. 믿지 않던 신께 구원의 기도를 드리고 집을 불태우는 할아버지... 성서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구원과 희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처음과 끝에 흐르던 알토의 슬픈 아리아였다.

바이올린 오블리가토가 흐르고, "아, 나의 하느님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Erbarme Dich)" 를 노래하는 그 곡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마태수난곡 (St. Matthew Passion BWV 244) 전 78곡 중 47번째 곡이며, 베드로가 예수를 3번 부인하고 난 후 불려지는 통곡의 아리아이기도 하다. (또는 68곡 중 39번째이기도 하다. 두종류의 넘버링이 있다.) 플룻, 비올라 다 감바 등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이 곡이 아름답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지난 목요일에는 이 곡을 일산 아람누리 음악당에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전곡 연주로 직접 들었다. 이들은 4년 전 쯤에도 내한해서 공연한 바 있다. 이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참 대단한 것인듯 하다. 직접 듣는 4성부 소년 합창단의 코랄과 아리아, 바이올린, 비올, 플룻 등의 솔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긴 공연이 끝나고, 밤늦게 집에 걸어 오면서 <희생>이 다시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47번 아리아를 연주하던 콘서트마스터인 백발의 할아버지의 바이올린 솔로와 인상이 강해 보이던 짙은 갈색 머리 알토 아줌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람누리 음악당은 생각보다 괜찮은 콘서트홀인 듯 하다.)

이 날은 뉴욕필이 화요일 평양에서 연주하고 서울로 와서 낮에 연주한 날이기도 하다. 어찌나 호들갑을 떨어대는지... 정작 음악은 뒷전인 행사는 그야말로 음악을 빙자한 쌩쇼일 경우가 많다. 아는 친구로부터 중계 현지 사정을 좀 들었다. 기왕 하려면 연주되는 곡에 관한 기초 공부 좀 하고 가던가...북한까지 가면서... 난 방송사가 이런거 안하면 좋겠다. 임하는 자세가 정말 싸구려다.



전곡을 연주하면 3시간 가까이 되는 이 마태수난곡은 신약성서 마태복음 중 최후의 만찬에서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의 예수의 수난 부분을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만든 종교 극음악이며, 총2부 78곡 구성이다. 1부는 1곡~35곡으로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예수가 붙잡히고 제자는 도망가고... 등이 그 내용이며, 2부는 36곡~78곡으로 예수의 재판, 베드로의 3번 부인,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의 운명 등이 그 내용이다. (부활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한명의 테너가 에반겔리스트(복음사가)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의 수난을 3인칭 시점에서 해설하고, 한명의 바리톤 또는 베이스가 (이번 공연에서는 바리톤이었음) 예수를 전담하며, 그리고 1명씩의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각기 그때 그때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4성부로 이루어진 합창단은 두 파트로 나뉘어져 합창과 코랄을 부르고 때로는 군중이나 일부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며, 관현악도 두 파트로 나뉘어져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비올라 다 감바와 합시코드를 중심으로 나뉘었다.) 무대구성은 맨 뒤에 합창단, 그 앞에 관현악단, 그리고 맨 앞에 성악 솔로이스트들과 지휘자가 위치한다.

             (연주를 끝내고 인사하려고 일어설 때다. 사진을 못찍게 해서... 구려서 죄송...)

너무 길어 예배용으로 쓰이기가 어려운 탓이었는지 1729년 초연 후 잊혀졌던 바흐의 이 마태수난곡은 멘델스존이 초연 100년 만인 1829년 3월 베를린에서 다시 부활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토록 위대한 곡이 묻힐 뻔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멘델스존의 그 역사적인 마태수난곡 재연 10일 후에는 재공연도 있었는데, 이때 베를린의 지식인 계급이 모두 왔다고 한다. 그중에 헤겔도 있었는데, 그가 마태수난곡을 폄하했다는 내용이 첼터(Zelter) 가 괴테에 보낸 편지에 들어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 음반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이 2006년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한 마태수난곡 전곡 녹음으로, 공연 현장에서 구입한 것이다. 마태수난곡의 다른 음반들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이 귀여운 꼬마들이 부르는 코랄이 듣고 싶을 것 같다. 공연에서 긴 금발 머리에 파마를 한 아이는 아무리 봐도 여자아이같다. 너무 귀엽다. 귀여운 꼬마들에게서는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어찌 그리 노래를 잘 할까... 다소 헝크러진 머리에 껄렁하게 보이는 반항아들 같던 큰 소년들이 베드로가 되어 유다가 되어 노래를 할 때, 코랄을 부를 때 계속 신기했다.

1212년 설립된 성 토마스 합창단 (Thomaner Chor) 는 8~18세의 소년 80명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으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의 성가대원들이기도 하다. 당시 성 토마스 교회의 유럽에서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했다고 한다. 많은 중요한 음악가들이 거쳐갔고, 교회 음악을 제공하던 곳이기도 했다. 1723년에서 1750년에는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을 하고 이 합창단도 지휘를 했는데, 마태수난곡도 이때 만들어져서 1729년 (또는 1727년) 바로 이 성 토마스 합창단이 초연했었다. 그리고 이들은 바흐 이후 어제 연주한 16대 감독의 지휘로 250년 넘도록 지금도 이 곡을 부른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Gewandhaus orchester zu Leipzig) 는 1743년에 만들어졌고 1835년부터 멘델스존이 지휘를 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러니까 멘델스존이 1829년 마태수난곡 재연 당시 지휘한 오케스트라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아닌 것 같다. 확인이 필요하다. 어쨌건... 슈만이 찾아낸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을 초연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 오케스트라가 성 토마스 교회의 예배 칸타타 연주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봐도 뉴욕 필보다는 더 유명하기도 하고 중요한 오케스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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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상징으로 다성음악의 최고봉인 푸가를 집대성했지만, 바로크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다성음악이 쇠퇴하고 화성음악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카톨릭에서 주로 사용했던 팔레스트리나 양식의 다성음악에 대해, 신교에서는 새로운 어법을 수용했는데, 그 중 하나가 합창과 코랄이고, 그리고 바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코랄과 합창곡인 마태수난곡까지 만든거다. 그래서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의 음악인 옛 것과 인간의 음악인 새로운 것을 아울러 최고의 걸작을 남겼으니...

난 종교가 없지만, 바흐는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이었다. 바흐의 음악을 가까이 하는데 이건 너무도 높은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건 원과 삼각형의 차이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진보성과 열정을 당시로써는 어떻게 보면 음악을 가두는 틀이기도 했을 (지금 보면 그렇다는 거다.) 기독교 안으로 모두 쏟아 부은 거다. 그래서 이 곡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내가 이해를 한다거나 평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될거라고 생각한다.

종교개혁, 계몽주의 ... 음악도 진보했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음악을 뺏어 오긴 했지만, 아쉽게도 베토벤 이후로 진보는 하되 적어도 위대해지지는 않은 거 같다. 음악의 위대함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 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난 꼭 이 곡을 들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이 마태 수난곡을 들을 때만큼은 인간의 철학을 버리는게 이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거라는 이야기도 같이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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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태수난곡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바흐의 음악이 아닌 10대들로 구성된 이탈리아 아트락 밴드인 Latte e Miele 의 데뷔 음반인 <Passio Secundum Mattheum (1972)> 에서였다. 개인적으로는 사연이 참 많은 음반이다. 이 음악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답게 강렬하지만, 그 강렬함이라는 표피 아래에는 그 아름답지만 구슬픈 수난의 드라마가 격정적으로 쓰여 있다. 바흐의 작품과는 달리 이들의 마태수난곡에는 부활이 담겨 있다. 마태수난곡의 락버전도 겸하여 추천한다. Latte e Miele 는 올해 내한공연 예정이라고 한다.


2008년 3월 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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