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독일에서는 <DIe Welle 2008> 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큰 흥행을 했었다. 이 작품은 <Emmas Glück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2006> 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도로를 질주하다가 야밤에 엠마의 집과 농장으로 돌진해 버렸던 그 남자, 막스를 연기했던 위르겐 포겔이 고등학교 역사 선생으로 등장하고, 그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어떤 실험과 사건' 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Die Welle> 즉, <The Wave> 라는 이 독일 영화는 토드 스트라써 (Todd Strasser) 라는 미국 작가가 1981년에 출간한 소설 <The Wave> 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파도> 라는 다소 좀 쌩뚱맞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그냥 <더 웨이브> 라고 해도 될 듯 싶은데...



그리고 <The Wave> 라는 비교적 짧은 이 소설도 순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실은 실화라는 과거의 '어떤 사건에 관한 짧은 텍스트'를 재료로 삼아 TV 드라마용으로 각색했던 대본을 소설화한 것기도 하다. 그리고 그 짧은 텍스트라는 것이 일전에 번역해서 올렸던 미스터 존스의 제3의 물결이다.

미스터 존스의 제3의 물결이라는 이야기는,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체험을 통한 역사 학습'의 일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나아갔던 교실 실험' 을 주도했던 론 존스 (Ron Jones) 라는 역사 교사와 그가 가르치고 그가 주도했던 어떤 실험에 참가했던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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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존스의 제3의 물결의 그 긴 이야기를 다시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존스는 역사 시간 2차 세계 대전과 나치 독일에 관해 가르치다가 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왜 독일사람들은 강제 수용소와 유태인 및 소수 인종 학살을 몰랐다고 주장하는가?", "이웃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유태인들이 학살될 때에도 왜 거기 없어서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존스는 역사 교사로서 그 대답을 찾기를 원했다. 그는 나치의 특징을 파악하여, 훈련, 공동체, 실행, 긍지,같은 대중의 힘을 집결시킬 수 있는 어떤 요소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 요소들을 통해 집결시킬 수 있는 어떤 힘의 위력을 맛보게 하는 식으로 실제 나치 독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권위주의적인 틀을 계속 만들어 주고 학생들을 밀어 붙이고 자신을 쫓아 오게 만든다.

학생들은 기계적인 신체 및 정신 훈련에서 나오는 일체감의 힘, 멤버십 공동체를 만들어 배타적인 집단 및 그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하는 것의 힘과 세력 확대의 욕구,를 경험하면서 그 집결된 힘에 대해 점점 복종하게 됨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킨 댓가였으며, 거스를 수 없는 그 힘을 보유하게 된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 개인 각자의 생각하는 능력을 스스로 마비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공동체에 집결된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더 거스를 수 없게 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더라도 이미 커져 버린 그 힘을 거역할 수 없게 된다. 죽을 줄 알면서도 불나방이 불로 돌진하듯 학생들은 그 힘에 점점 더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다가 집단 이기주의와 배타성이 더욱 크게 드러나게 되면서 '제3의 물결' 이라는 이 교실 실험에 대한 학교의 우려가 커지고 존스는 결국 실험에 종지부를 찍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게 된다.

모두 모인 그 비밀 집회에서 존스는 '제3의 물결'이 실은 정치적 변화를 꾀하는 전국적인 청년 운동이라면서, 전국 지도자의 연설을 들어 보자고 한다. 그러나 잠시후.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으며, 너희는 조종당했고, 실제로 너희가 했던 행동은 너희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일뿐이야, 라며 가볍게 치부했던 바로 그 나치 독일 사람들의 행동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일깨운다.

"과거는 과거, 역사는 역사일 뿐" 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고, 바로 그러한 생각 때문에 그 쓰라린 과거가 또 다시 되풀이되는 것, 이라는 것을 정곡에서 팍 찔러 일깨운 것이라는 말이다. 예전에 직접 경험하여 깨닫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다.

그 집회가 끝나고 학생들은 하나씩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집회와 '제3의 물결' 운동 자체가 비밀로 간직되길 바라면서 그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제3의 물결 멤버가 아니었다, 그런거 모른다, 라는 식으로, 마치 독일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에 대해 모른다고 주장했던 것을 그들 스스로가 반복하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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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학생들과 함께 비밀을 지키던 론 존스는 3년이 지나 그 침묵을 깨고 1972년  미스터 존스의 제3의 물결이라는 짧은 텍스트를 남긴다. 이 사건이 실화냐 아니냐에 관한 논쟁도 있는데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 짧은 텍스트는 약 10년 뒤 1981년에 ABC TV 드라마로 한차례 만들어져 방송이 되었으며, 토드 스트라써의 <더 웨이브> 라는 소설은 그 드라마 대본을 기초로 해서 쓰여진 소설로 같은 해에 나온 작품이다. 그리고 2008년에 다시 독일에서 <The Wave> 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된다.

약 20년 전인 1990년에는 <Das Schreckliche Mädchen, The Nasty Girl> 이라는 영화가 나온 적도 있다. 독일 사회를 발칵 뒤집은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라는데, 어떤 도시 전체의 역시 잊고 싶은 친나치 행위에 대한 침묵과 그것을 낱낱이 조사하고 캐내고 스스로 밝히려는 한 소녀가 그 꽉다문 입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번 주 씨네 큐브에서 <더 걸 The Girl> 이라는 타이틀로 개봉 예정이며, 내부 사정인지 홍보가 거의 제대로 안되었는데 그 사건을 다루는 터치가 비교적 경쾌하고 흥미가 넘치면서도 매우 진지하다. 꼭 보아 두어야 할 영화라고 여겨진다. 자세한 사항은 www.cineart.co.kr 참조

                                           원서도 엄청 얇으니 이걸 구해서 봐도 좋다.

소설에서는 고든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역사 교사 벤 로스 (Ben Ross) 가 등장한다. 역사수업 시간 나치의 대량 학살 필름을 보여 주자, 로리 손더스와 단짝이기도 한 똑똑한 여학생 중 한명인 에미 스미스는 질문한다.

"독일사람들은 모두 나치였나요?"   "아니, 아마 독일 사람들 10% 정도만 나치였을거야."   "그런데 왜 아무도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말리지 않았나요?"   "나치는 소수였지만, 잘 조직된 군인들에, 위험하고... 나라 전체가 인플레이션으로... 나치가 경제를 살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을거야... 독일 사람들 대부분은 몰랐다는데.."   "천만명을 죽이는데 그 수용소와 학살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요?"   "글쎄다....... 쩝...",  으로 책은 시작한다.

이 이후의 전개 과정은 미스터 존스의 제3의 물결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벤 로스는 나치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아이들을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빠지게 한다. 개인들이 모여 훈련을 하고, 성취감과 일체감을 느끼고, 이어서 공동체를 만들고 거기에 집결된 힘이 한 개인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그 권위와 힘에 복종하게 되고, 거부하려고 해도 따를 당하거나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거부를 못하고, 권력은 점점 남용되고 멤버가 아닌 사람들을 위협하고 따돌리고, 정작 멤버들은 그 집결된 힘의 정체와 실체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소설에서는 '웨이브' 라는 이름의 공동체가 등장하는데, 이 집단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며 '웨이브'로부터의 위협과 피해를 받아들이는 일부 레지스탕스의 존재도 등장한다. 나치와 이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그랬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예로 들자면, '친일파' 와 독립군들이 그랬을거다.

사실 이 <The Wave> 의 이야기는 한국의 '친일파' 문제와 다를 것이 거의 없다. 다만 독일은 <The Wave> 를 청소년 필독서로 읽히면서까지 계속해서 '역사는 역사일뿐, 과거는 과거일뿐' 이 아니니 "아이들아, 정신 차려라" 라고 가르치며, 제2의 나치의 등장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한국과 일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한심한 수준의 역사 의식을 보이며 '제2의 친일파를 아주 대량생산' 하고 있으며, 게다가 아주 득세하며 잘 났단다. Forgetting History is Repeating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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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시즘이나 나치즘이 그렇게 특이하거나 별종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말 별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속하고 있는 단체나 조직 대부분이 사실은 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위기의 순간, 바로 파란약 삼키고 "그게 누구?" "난 모르는데..." 라며 돌변하거나 시치미 뚝 떼고 침묵하게 되어 있다. 우리 주위에서 파시즘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명박과 그 일당의 득세와 폭정이 괜히 가능한게 아니다. 애초에 정치가들이 법이나 시민을 두려워했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집권할 수 없었다. 그들은 촛불, 시민, 법, 이런 거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런 것보다 훨씬 더 두려워 하는 것이 뭐냐... 바로 역사를 잊지 않는 것. 잊지 않는다는 말은 '청산'한다,라는 말과 같다. 만약 우리나라가 '친일' 행위에 대한 철저한 정리를 단 한번이라도 한적이 있으면 지금과 같은 국내 상황은 가능하지도 않다. "지금이라도 정리할 것은 정리하자" 이거만큼 무서운거 없다.

히틀러도 '경제 살리기'와 '이게 다 누구 때문?' 이라는 전략을 사용하여 아주 정상적인 방법으로 집권했으며 (이명박과 똑같다) 그가 한 일이라고 해봐야 신체를 단련하는 훈련과 공동체를 만들어 힘을 집결시키고 개인의 생각과 자유의 힘이 넘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집결된 그 힘을 괴벨스와 함께 언론을 철저히 통제해서 '조종'하여 모든 독일 사람들을 복종하게 만들고... 뭐 그런 일을 했던거다. 갖가지 공사를 벌여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 부흥이라는 착시 현상도 불러 일으키고...

군대, 경찰, 종교, 학교, 관료제, 언론사, 일반 회사, 조직, 조폭, 재벌, 기업... 모든 조직의 속성을 한번 잘 들여다 보자...


2008년 9월 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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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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