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더 걸 Das Schreckliche Mädchen 1990> 에 관해 쓰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져서 따로 뺀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보면 좋을 영화 몇 편을 먼저 소개하자면, 올리버 히르비겔의 <Der Untergang 몰락 2004>, 마크 로드문트의 <Sophie Scholl - Die letzten Tage 소피 숄의 마지막 나날들 2005>, 알란 J. 파큘라의 <Sophie's Choice 소피의 선택 1982>, 그리고 코스타 가브라스의 <Music Box 뮤직박스 1989> 정도를 나는 보라고 권하고 싶다.



<몰락>은 베를린 지하 벙커에 숨어 지내면서 괴벨스와 함께 패망 직전의 나치를 지휘하며 소련과 전투를 벌이다가 자살하기까지 히틀러의 마지막 12일을 영상으로 재현한 영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히틀러의 개인 타이피스트로 일하게 된 한 젊은 여성인 트라우들 융게 (Traudl Junge) 가 살아 남아 할머니가 된 후 그 때를 회상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유겐트 대원의 충성과 집단 자살, 광신도 집단과 다를 바 없는 이 전멸 직전의 군대를 오히려 독려하고 자살 직전 에바 브라운과 결혼하는 이 히틀러를 브루노 간츠가 연기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 의 그 천사 브루노 간츠가 말이다. 이 영화의 끝맛, 굉장히 씁쓸하다. 브루노 간츠의 이미지에 또한 꽤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러다가 <Vitus> 에서는 또 변신. 천사와 미친놈의 경계엔 구분이 없다?

올리버 히르비겔은 이 영화 때문인지 헐리우드로 가서 니콜 키드먼과 함께 <신체 강탈자의 침입> 네번째 리메이크작인 <인베이전 Invasion 2007> 을 찍기도 했다.


<소피 숄의 마지막 나날들> 은 광신에 가까울 정도로 히틀러와 그의 국가사회주의를 추종하고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까지 했던 소피 숄과 한스 숄 남매가 어떻게 하여 뮌헨 대학생 시절 반나치 저항단체인 백장미의 단원이 되어 활동하고 교내에 히틀러 체제를 거부하는 전단을 뿌린 후 체포되어 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을 당하기까지 하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실제의 소피 숄과 많이 닮아 보이는 줄리아 옌치가 소피 숄의 연기를 하고 있다. 한스 바인가르트너의 <Edukators> 에서도 에듀케이터의 일원인 율을 연기했던 바로 그녀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조피 숄 평전> 을 읽어 보면 더 좋을 듯 하다. 소피 숄을 조피 숄로 표기한 이유는 뭘까... 독어식 발음?

<몰락> 의 마지막 장면, 트라우들 융게가 소피 숄에 관해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소피 숄과 같은 나이였고, 자신이 히틀러의 편에 서던 그때 소피 숄은 처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아주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중요한 한마디... 보고 확인들 하기를. <몰락>은 국내에도 DVD 가 나온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닌가 보다.


알란 J. 파큘라의 <소피의 선택> 에서는 메릴 스트립이 소피로 나온다. 소피 숄의 그 소피와는 관련이 없다. 메릴 스트립의 가장 빛나는 연기를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소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영혼은 맑지만 심하게 흔들린다. 너무 불안하다. 바라보는 관객들의 영혼마저 불안하게 하고 그 마음의 병을 공유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고통의 이유이기도 한 아우슈비츠에서의 그녀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그녀의 슬픔에 대한 연민에 그저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만다.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은 나치에 의해 총살당한다. 소피는 어린 아들 그리고 딸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 가다가, 한 독일 장교가 거기 가면 어차피 모두 가스실에서 죽는다며 한 아이만을 보내라는 선택 아닌 선택의 강요를 받게 된다. 그러니까 '소피의 선택'을 강요당한다.

소피는 어린 아들을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이후 소피는 피말리는 삶을 시작된다. 아들의 생사를 알기 위해 목숨을 건다. 영혼이 메말라가고, 마음은 바싹 타들어간다. 아들이 살아 있기를 바라며 수용소의 비참한 생활도 견딘다. 그러나 그 실낱같은 희망이 꺼졌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손목을 그어 버린다. 그리고 장면은 미국에서의 삶으로 전환된다.

천재인지 미치광이인지 그 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과학자 네이단에게 집착과 의지하는 소피, 그리고 그 소피를 감싸 안지만 역시 소피에게 집착하고 학대하며 과격해지는 네이단, 홀로 살아 남은 자의 고통과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그 슬픔의 선택, 의 상처를 표현하는 메릴 스트립에 당신은 아마도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정치 영화로 유명한 코스타 가브라스가 <Z 1969> 와 이브 몽땅이 출연한 그 문제작 <État de siège 계엄령 1972> 이후 만든 <뮤직박스 1989> 는 한마디로 아버지가 유태인 학살에 관련되었냐 아니냐를 딸이 법정에서 따지는 법정 진실 공방에 관한 영화다.

나치 시절 유태인 학살 앞잡이던 헝가리계 아버지 마이크 라즐로 (아민 뮐러-슈탈) 가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정착하여 딸 앤 (제시카 랭) 을 변호사로 키워 낸다. 물론 자신의 전력은 이 미국에서는 모두 세탁된 상태다.

어느날 마이크는 유태인 학살 전범 미쉬카라는 의혹을 받게 되고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앤은 평소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확신과 믿음으로 변호하고 관련되어 있지 않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원래부터가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앤은 진실을 결국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질끈 눈을 감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을 그토록 고이 키워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역사에 배신하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버지의 과거에 눈감아 버리는 순간, 그녀는 <소피의 선택> 에서 소피의 고통과 유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

<더 걸> 은 내용상으로 보면 <뮤직박스>와 <소피 숄>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영화다. <더 걸> 이 <소피 숄> 보다 15년 먼저 나온 영화이긴 하지만. 다만 그 터치가 굉장히 유쾌하고 이전에 못보던 스타일의 영상들이다. 시종일관 유머가 스크린 표면에 흐른다. 그러나 그 유머는 불편한 진실의 집단 은폐라서 사실 유쾌하지 않다. 불편한 유머. 이 영화를 보면서 유머가 한순간에 역겨움으로 돌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감상은 아무래도 영화 한번 더 보고 쓸까 한다.


2008년 9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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