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르 프랑크 (Cesar Franck 1822 ~ 1890) 는 벨기에에서 태어난 독일계 사람으로, 일찍부터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다. 많은 곡이 알려져 있지는 않고 말년인 1886년에 만든 바이올린 소나타나 아주 유명한 복음 성가인 <생명의 양식 Panis Angelicus> 를 비롯한 몇 작품이 유명하다.

동시대에 활동한 작곡가라면, 스메타나, 드보르작, 시벨리우스, 브람스, 말러, 베르디, 구노, 비제, 푸치니, 무소로그스키, 차이코프스키 등.  이들은 서양음악사에서 볼 때 20세기 현대음악으로 넘어가기 전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이기도 하다.

이 시기 프랑스 사람들은 살롱 음악 또는 오페라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크는 당시 프랑스인들의 대중적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고전주의 시대의 형식과 구조를 중요시하는 음악 스타일을 지켰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낭만주의 시대 특징들, 그러니까 열정, 순수 등의 감성을 드러냈다고 한다.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in A 장조> 는 그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그의 대표 작품으로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위대한 걸작의 반열에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4악장에는 캐논의 형식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 도입부 프레이즈의 특징은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다. 먼저 시작하는 피아노 선율을 잘 들은 후, 다시 바이올린 선율을 들어 보라.

피아노가 시작한 후 한마디 후 바이올린이 정확히 한 옥타브 위에서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어릴 적 부르던 돌림노래처럼. 그러니까, 아래와 같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이 두 성부는 동등한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팽팽히 대립하며 시간과 공간을 달려 간다. 이 둘의 하모니는 다소 좌충우돌, 복잡다양한 느낌이 들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도하며 비교적 제 갈 길을 잘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주어진 성부의 선율을 다른 성부가 일정 간격으로 모방하는 음악기법을 캐논 Canon 이라고 하며, 대위법 (Counterpoint) 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4악장에는 이 캐논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구소련의 위대한 연주자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의 바이올린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Sviatoslav Richter) 의 피아노가 엮어내는 캐논의 하모니 1969년 녹음이 유명하다.



주선율과 반주로 구성되는 화성음악 (Homophony), 또는 재즈 콤보에서 보면 솔로와 리듬으로 구성되는 편성도 비슷한데 피아노, 베이스, 드럼이 복잡한 화성과 리듬으로 길을 닦아 놓으면, 색소폰이나 트럼펫 솔로가 그 위를 달리는 스타일.

아무래도 사용되는 화성들은 그 주선율을 돋보이게 하면서 전체 사운드의 어울림과 풍부함을 추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지향한다. 하나의 조직으로 보면 한 사람의 leader 가 있고, 그 리더를 백업하면서 앞으로 밀어 결국은 조직 전체를 앞으로 전진하게 만드는 역할들을 수행하는 followers 들의 구성과도 비슷하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주선율과 화성 간의 어울림, 조화, 안정의 강조다. 그런 조직에서 중요한 것도 역시 리더와 그 리더를 신뢰하고 밀어주는 추종자들의 어울림, 조화, 안정의 강조다.

반면 followers 들이 백업, 즉 반주로서가 아닌 여러 개의 독립된 주선율로서 동시에 참여하는 다성음악 (Polyphony) 도 있다. 이 음악의 매력은 그 선율과 그것을 이루는 음들의 충돌, 아니 마치 두 마리 용이 서로 몸을 꼬며 하늘로 솟구치는 듯이 두 선율이 서로 그 몸을 꼬며 시간과 공간을 뚫고 나아감에서 뿜어내는 그 동적 긴박감에 있다.

다성음악에서도 조화가 역시 중요한데 '안정'에서 나오는 조화가 아니라 '충돌'에서 나오는 조화라는 점, 그리고 단면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2차원 (또는 3차원) 적인 조화가 아니라 공간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3차원 (또는 4차원) 적인 조화라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면 폴리포니 스타일 조직은?  리더와 추종자들로 구성되는 호모포니 스타일 조직과는 어떻게 다를까?  추종자없이 다수의 리더들이 좌충우돌하며 서로 몸을 비비면서 싸우는 듯한 조직의 특징이라... 선뜻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런 폴리포니 구성을 선호한다.

호모포니와 폴리포니를 섞어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고전 음악이나 기타 연주들도 종종 있기는 한데, 이 다성과 화성의 혼합형 조직도 화성형 조직의 대안으로 한번 고려해 볼만 하다. 나의 경우에는 화성형 조직에 들어가 어울림, 조화, 안정의 미덕을 끌어낼 만한 기질의 소유자가 아니고 나같은 이들이 꽤 많이 있을 거라는 예상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직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게 처음에는 참을만 했는데 사회적 환경 변화가 점점 더 악화되는 것으로 추측한다.

어쨌건 난 폴리포니 스타일의 조직의 가치를 믿는 편이며, 그런 곳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다. 누군가 독창을 부르고 나는 화음을 넣어 완성된 음악에 만족하고 사는 삶 보다는, 좀 시끄럽고 어수선하긴 하지만 돌림노래를 부르며 '완성된 음악'이 아닌 '음악의 완성'을 즐기고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화음은 조직형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즐겁게 살자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결국 돌림노래가 더 재미있을수 밖에 없다.

2008년 9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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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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