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톨스타인 베블렌 (Thorstein Veblen, 1857~1929) 이라는 미국의 철학자, 경제학자가 있다. 그가 1899년 발표한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이라는 저서는 경제학 명저로 꼽히는 서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유한계급론> 또는 <한가한 무리들>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적이 있다. 나중에 기회와 내공이 되면 이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한번 해 보고 싶다.


베블렌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이런 거다. 소비에서 보여지는 속물주의와 세속적 겉치레에 대한 신랄한 비판. 속물 부유층은 윤리적, 문화적, 지적 가치보다는 많은 재산에 따른 사회적 우월성을 즐긴다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절실히 필요할 자원들을 가져다가 쓸데없는 곳에 소비하는 것을 즐기고 그러한 것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옹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와 지위를 이용한다는 것. 자본주의란 그런 것.

그들의 행위는 전체 경제로 볼 때 비합리적인 경제 행위이며 매우 '과시적인 소비'를 하는 이들이라는 거다. 그런데 현대자본주의에서 소비와 공급을 끌어가는 동력의 하나가 바로 이 '과시 소비'에 대한 환상이다. 일부 부자들이 아니라 보통의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것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켜 명품과 유행과 디자인과 마케팅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내어 그 허구적 욕구에 날개를 달아 주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허영의 허공을 날게 만드는 것. 자본주의란 기껏 허영심을 불러 일으키는 기재에 의해 작동하는 시스템.

대중의 인지도를 확보한 연예인들은 스스로를 상품과 결부시켜 상품 또는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여주고 그 대가로 거대한 부를 챙기며, 이 나라의 신귀족으로까지 등장했는데, 난 광고 출연 연예인들을 대중을 '과시 소비' 허영의 노예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첨병으로 보는 편이다. 그래서 CF에 자주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연기력이 어떠네, 공인으로서의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냥 피식 웃어버린다. 한마디로 개소리로 여길 뿐이다. 기껏해야 '쓸데없는 소비'나 부추기는 주제에...

그래서 시장은 과잉공급을 하고 누가 그랬나, "만들면 다 팔려" 를 실현시키려는 듯 그것을 팔기 위해 항상 새로운 마케팅, 디자인, 유행 등이 창조되어 어떻게든 과잉소비를 일으키도록 기업과 연예계가 짝짜꿍하고 명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고, 그러는 사이에 경제의 축이 어느새 합리성의 비주류화, 비합리성의 주류화로 바뀌어 버리더니 '비합리성의 소비'가 마침내 현대 자본주의의 미덕으로 등극을 해버린거다.
 
새로운 디자인과 보다 자극적인 마케팅으로 끊임없이 소비자를 유혹하고 과도한 소비를 불러 일으키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계속해서 옷장이 넘치도록 옷을 사게 만들고, 명품 가방을 사지 않으면 불안하게 만들고, 새 자동차를 사도록 부추기고, 더 큰 브랜드 아파트를 욕심나게 하고... 소위 이것들이 요즘 기업들이 주력으로 하는 일이고 연예인들이 못해서 안달 난 일들이다.

어쨌건 내가 하고픈 말은 인간과 경제는 그렇게 합리적인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았다는 거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다움'이라고 하는 가치도 사라졌고, 자연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자연에 군림하는 위치에 서서는 그 자연을 노예부리듯 마구잡이로 낭비를 해왔고, 정작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성장이라는 GDP 의 부가가치 중 정말로 인간에게 유용한 가치는 몇 % 나 될까 참 의심이 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경제 말고 다른 분야에서의 인간사회는 과연 합리적인 방향을 나아가고 있을까? 이것은 아마도 결국에는 가장 믿기가 어려운 말이 될거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개개인이라도 그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의 합리적 판단이라는 것은 완전 별개의 문제가 된다. '조직의 판단'이라는 것에 대해 당신은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가? 위에서 언급한 부유층을 하나의 조직으로 본다면 그들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겠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명품을 만들어 파는 이들의 합리적 판단은 명품의 가치를 유지한 채 가능한 많이 팔아 치우는 결정을 내리는 것,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재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자원을 독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합리적인 판단이다. 마케팅? 그들이 파는 상품이 무엇이건 간에 가능한 소비자들에게 강력하게 전달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들에게는 합리적 판단이다. 그것이 수많은 문화적 다양성을 말살시키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수많은 그들만의 합리적 판단과 결정을 가지는 조직들이 모인 사회를 또한 전체적으로 볼 때 합리적 판단이란 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걸까? 합리성이라는 개념조차 존재는 하는 걸까? 자, 내가 진짜로 하고픈 말은 그러면 이러한 사유를 통해서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법을 판단하는 국회, 검찰, 법원이라는 조직을 살펴보자는 거다.

국회는 입법 기관이기 전에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조직이며, 법원의 판검사들도 정의에 불탔는지 출세에 눈이 멀었는지 힘들게 공부해서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권력을 손에 쥔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의 조직이다. 문제는 뭐냐... 이 합리적 판단에 있어 조직과 개인의 가치관과 합리성의 충돌 문제가 발생할 때 우선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그들의 선택은 어떠할 것 같은가, 라는 거다.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국회며 법원이며 일단 들어가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조직이며 그 조직의 일원이 됨으로서 상당한 권력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판단 기준의 '합리성'의 근거로서 조직 논리를 우선적으로 따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판사건, 검사건, 국회의원이건 다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의 개인의 권력 욕심과 출세 야망을 도덕적 가치관 및 정의에 대한 신념과 아주 쉽게 맞바꿔 버려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는 거다.

국회와 법원의 기능과 목적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 시스템이 기계적 수준으로 완벽하게 합리성을 판단하여 작동할 수 있지 않고 인간의 판단에 상당히 의존을 하는 조직일 때 그 조직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꽤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고? 베블렌의 주장처럼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고, 정말 철저한 복합적인 합리성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는 슈퍼 컴퓨터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합리성'이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다 다르고 누구나 자신의 합리적 기준을 가진다. 그것은 조직의 합리성과도 충돌하면서, 조직 내에서 개인의 합리성은 부정당하게 되고 조직의 합리성이 결국 개인의 합리성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거다.


2008년 12월 2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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