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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콜럼버스는 선원이 되고 많은 항해를 다닌 결과 지구는 둥글다고 확신한다. 그는 터키가 교역 육로를 차단한 후,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보면 향료, 비단, 금의 전설의 부(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서유럽 왕조들에게 탐험자금 후원을 탄원하나 거절당하고, 결국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적절한 경비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측은해 보일 정도로 작은 배 3척, Nina, Pinta, Santa Maria 로 스페인을 출발하여 폭풍과 맞서며 두달 이상 대서양 항해를 한다. 선원들은 폭동을 일으킬 지경에 이르렀고 콜럼버스를 위협까지 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492년 12월 서인도제도, 지금의 아이티(Republic of Haiti)에 도착하게 된다.

이후 아메리카를 3번 더 여행하였으나, 자신의 신세계 발견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도로 알고), 평가도 받지 못한채 1506년 죽었으며 후에 이탈리아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곳은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신대륙임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 라고 하게 된다.

현재 콜럼버스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콜럼버스의 용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미국 역사가 가능했다....."라고 한다.

1492년 첫번째 여행


니나, 핀타, 산타마리아 호는 너무나 조용한 바다를 순항합니다. 이 3척의 배는 컬럼버스의 의도에 충분히 부합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항해 마지막날 약간의 높은 파도를 만났을 뿐이죠. 한 달의 항해였으며, 항해를 길게 하기 위해 아프리카 카나리(Canary) 군도에서 머물기도 합니다.


이 곳은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있는 스페인령 화산 제도로 B.C. 40년 경부터 로마인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며, 13∼14세기부터 유럽 항해가들의 쟁탈 표적이 되어 15C부터 스페인사람들이 지배하였고 컬럼버스도 이곳을 기지로 하여 대서양을 횡단했다고 합니다. 선원들은 세상끝으로의 항해를 두려워했다고 하지만, 이미 대서양의 유럽은 "지구는 둥글다"고 생각했다는군요.

10월, 해안가에 도착. 원주민(인디언) 아라와크족(Arawak)의 한 무리를 만나게 되고, 금을 소유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음날, 섬의 다른 부분 (아마도 바하마(Bahama) 군도)과 부락들을 발견, 기록합니다. "50명으로 그들 전부를 정복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그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

10~12명의 인디언들을 납치, 스페인으로 데려왔으며, 7,8명이 생존합니다.. 이들의 앵무새, 금장식등은 세빌(Seville)에서 굉장한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죠. 여기서 세빌이란 the Barber of Seville (세빌리아의 이발사) 의 그 세빌입니다.


1493년 두번째 여행


첫번째 여행결과에 고무된 스페인. 상인과 지도자들은 연합하여 컬럼버스에게 권한을 주고 재정적 지원도 해주고, 여왕 이사벨라와 국왕 페르디난드는 17척의 배와 1,200~1,500명의 남자, 대포, 활, 총, 기병대와 공격용 개를 지원해줍니다. 컬럼버스는 엉성했던 첫번째 여행과 달리 두번째 모든 항해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기록했고, 아이티 정복 과정을 묘사하죠.

다시 돌아온 아이티, 컬럼버스 일당은 음식, 금, 목화, 성관계 등 원하는 모든 것을 요구하고, 비협조시 반항하지 않는 원주민까지 귀나 코를 베었다고... 아라와크족들은 지팡이와 돌로 저항합니다. 아이티에 도착도 하기 전, 카리브에 도착하자마자 부하들에게 강간할 수 있는 원주민 여인들을 선물로 제공하고 성적노예는 하나의 상여금이었다네요.

이 저항은 처음부터 무장하고 온 스페인에게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1493년 3월 24일, 컬럼버스는 아라와크족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죠. 총으로 무장한 200명, 20명의 기마대, 20마리의 개... 무차별 일제사격, 개들은 원주민들을 갈갈이 찢어놓았으며, 도망가는 원주민을 칼과 창으로 꿰었으며, 이 모든 승리의 공을 '신의 도움'이라 합니다. 죽이지 못한 원주민들은 포획하여, 배당금을 받기 위해 스페인으로 돌아갑니다.

1495년, 아이티 거주 스페인인들은 거대한 노예사냥을 주도합니다. 1,500명의 아라와크족을 잡아 최상족 500명을 스페인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아이티 거주 스페인 사람들의 노예가 되고.... 스페인 사람들은 장난으로 원주민을 사냥했고, 개의 식량으로 쓰기 위해 그들을 살해했다고 하네요.

아이티에서 금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컬럼버스는 조공체제(tribute system)를 만들었으며, 원주민들에게 금광을 파게 합니다. 금을 바친 원주민들은 구리징표를 받아 3개월동안 안전했고, 더 많은 금을 모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리고 encomienda 라는 강제노역 위탁제도를 만들어 금의 위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죠. 식민통치자들에게 원주민 부락을 위탁하는 제도로 스페인에서 1502년 공식 채택되고 다른 정복자들에게 확산되죠.

이 두 제도는 잔혹행위 외에도 원주민의 생태계와 문화를 파괴합니다. 컬럼버스 이전 800만이던 원주민수는 1496년 110만으로 격감하였는데 컬럼버스가 주도한 이 원주민 정책은 원주민의 수를 1516년 12,000명, 1542년에는 200명, 1555년에는 모두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 전체에서 민족말살의 최초 예입니다.


1498년 세번째 여행

1499년 마침내 많은 금을 발견합니다. 원주민의 파업에 맞서 싸우면서 컬럼버스는 금을 파내도록 더욱더 강압하고, 엄청난 돈이 컬럼버스에게 쏟아졌으며, 그는 18대 후손까지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을 상속했다고 합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1500년 이후 포루투갈,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앞다투어 대륙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모두들 스페인만큼이나 잔인했다고... 영국인들은 스페인들처럼 노동력을 착취하여 식민화한 것이 아닌,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방법을 채택하였죠.

아메리카 대륙 착취로 유럽은 부자가 됩니다. 대륙 여기저기서 금과 은이 나왔으며 유럽은 금천지가 되고... 그러나, 대부분의 비유럽국가를 파괴시키는 결과도 나았으며, 400% 인플레이션을 초래, 유럽의 세계시장 점령의 계기가 되었고, 아프리카와의 교역도 붕괴되어, 아프리카에서는 노예만을 들여오면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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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버스가 약 5,000명의 첫 원주민 노예를 대서양을 횡단하여 보냈을때, 다른 국가들은 급속도로 컬럼버스를 모방했습니다. 이제 노예를 사고 파는 일이 빈번해지고... 수백년간 이어지게 되며.. 노예무역중 성적노예매매는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고 컬럼버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예무역은 모든 인디언국가를 파괴했습니다. 너무 많은 수가 죽어 그 수가 줄게 되자, 인디언 노예제도는 아프리카로부터의 노예무역으로 바뀌었고, 이 무역의 선봉장은 다시 컬럼버스의 아들이었으며, 1505년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1519년 아이티는 흑인과 인디언 연합의 최초 거대 반란 지역이 되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노예제도에 대한 가치관이 어떠했는가는 컬럼버스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될 것입니다. 만약 노예제도가 일반적이었던 것이라면 비난은 이성적이지 못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당시에도 노예무역, 컬럼버스의 제도를 비난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있었으며, 죄악의 하나로 규정하여 노예반대법 제정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1492년 12월 산타마리아호가 아이티에서 떨어진 곳에서 좌초했을때, 컬럼버스는 아라와크족에 도움을 청했었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도우러 왔습니다. 갑판을 청소해주고, 집을 주고, 모든 짐을 궁전에서 보관해주었다고 컬럼버스는 기록했고, 1502년 4번째 마지막 여행에서는 자마이카에서 배가 좌초되고 남은 배도 잃게 되는데, 아이티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1년을 아라와크족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군주나 위계질서가 없는 아라와크족 사회는 유럽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1516년 Thomas More의 'Utopia'는 페루지방의 인디언 제국을 모델로 한 것이기도 하고, Montaigne(몽테뉴), Monteaquieu(몬테스키), Rousseau(루소)에서 Marx(맑스), Engels(엥겔스) 의 유럽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모두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상의 변형이라고 합니다.

1492년 이전의 아메리카는 어떠했을까요? B.C. 수천년부터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 이미 여러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 정착하여 사는 사람도 있었으며, 유럽도 이미 1480년대에 이곳을 탐색하러 다녔습니다. 컬럼버스 항해는 마지막 '발견'이었지만 약탈.착취의 최초 '출정'이기도 한 것이 아니었을런지... 1492년 전에는 "유럽"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스페인인, 프랑스인...이었는데 아메리카 원주민과 대조하면서 그들의 유사성을 바라보기 시작... 흑인과 비교하면서 유럽인들은 점차 "백인"을 중요한 인간적 특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재미있는 것은 많은 이들의 지적이 시작되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Christopher Columbus 를 국가의 위대한 최초의 영웅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갈수록 지루해지고 있다는 것... 이게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위의 내용은 James W. Loewen 의 <Lies My Teachers Told Me>에 기초합니다. 이 책은 미국의 대표역사교과서 12권의 왜곡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으며, 미국의 역사가들은 하나씩 하나씩 수긍하거나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급적 정치적, 사상적 가치관을 배제한 채 읽으시기 바랍니다.



정치와 사상 중립성을 기반으로 하여 Fact 를 접하고 사고할 수 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뇌의 기반영역에는 이미 무엇인가로 가득차 있으며, 그것은 주어진 Fact 와 Fact 사이에 연결고리를 자동적으로 생성하죠.


문제는 이 연결고리입니다. 연결고리가 무수한 Fact 일 경우 촘촘히 연결되어 관계의 왜곡은 어렵게 되는데, 제공받은 Fact 가 듬성듬성인 경우 우리는 자체 연결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위 책은 그 연결고리 생성에 큰 도움을 주고 있거나, 적어도 나의 시스템에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죠.

2006년 10월 2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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