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사와 스폰서"와 "이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등을 방송하여 정치, 사회적 이슈를 계속 터뜨리고 있는 <PD 수첩>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전문 인터뷰어로 유명한 지승호의 신간 <PD 수첩>은 <PD 수첩> 제작진들과 함께 지난 20년 간의 <PD 수첩>에 대해서 회고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다짐과 바램을 정리한 책이다.

그 동안 <PD 수첩> 제작에 참여했던 아홉 명의 PD를 인터뷰한 글이 들어있고, 책 뒷면에는 손석희와 진중권의 짧은 추천글이 있으며, 제작에 함께 한 아나운서와 작가의 글, 시청자 모임 운영자의 글, 우석훈 교수의 격려의 글이 들어있는데, 그 중 우석훈 교수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선진국'다웠던 요소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그건 정당도 아니고 대학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고 언론도 아니다. 오직 <PD 수첩> 하나뿐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좋은 방송은 미국에도, 일본에도, 유럽에서도 이제는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어떤 나라가 '선진국'다운지에 해당되는 기준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국민소득 몇 불" 같은 허술한 숫자 놀음이 아닌 다른 기준들 - 민주주의, 자유, 평등, 복지, 사회 투명성 등등 - 을 따져볼 때,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에 가깝게 느껴지는 구석은 아무래도 영 찾기가 힘들다. 더군다가 "언론"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욱 커지고 있는 요즈음, <PD 수첩>과 같은 사회 고발 프로그램이 그나마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물론 공중파 TV 저널리즘에 있어서 이러한 탐사 프로그램이 단지 <PD 수첩> 하나 뿐인것은 아니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주제들, 금기에 도전하는 이슈들을 용감하게 다룬다는 면에서 MBC의 <PD 수첩>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들에 비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고, 그 대표적인 아이템으로는 "황우석 사태", "한미 FTA 쇠고기 협상 - 광우병 관련 보도" 등이 있었다.

우석훈 교수는 황우석 사태의 제보자가 다른 프로그램이 아닌 <PD 수첩>을 찾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찾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황우석 사태의 제보자는 <PD 수첩> 700회 특집 방송의 클로징 멘트에서 최승호 PD가 "<PD 수첩>이 능력이 부족해서 취재가 부실한 적은 있지만, 어떤 외압 때문에 보도하지 못한 적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제보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굽히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해 줄 거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는 곳이 언론사 중에 하나, 종교계 중에 하나라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많은 언론사, 그 많은 종교 단체 중에 믿고 기댈 수 있는 곳이 단지 한두 군데라는 것은 그만큼 다른 곳들이 얼마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느냐에 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진실을 파헤쳐 밝혀야 하는 기자들의 진정한 저널리즘, 정의의 편에 서야 하는 종교인들의 올곧은 신념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그 빈자리를 메꿔주고 있는 시사교양 PD들의 노력이 오랜 시간 쌓여서 지금의 <PD 수첩>을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언론사에서처럼 데스크에서 편집 혹은 검열되는 구조가 아니라, 기획, 취재, 방송 단계에서 국장이 최종적인 권한을 가지며 동시에 책임을 지는, MBC만의 독특한 "국장 책임제"도 지금까지 <PD 수첩>의 뚝심있는 방송을 가능하게 했다고 PD들은 말하고 있다. (최근에 방문진을 통해서 이러한 "국장 책임제"를 없애기 위한 압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니 걱정이다.)

인터뷰집을 읽다보면, 사이비 종교에 대한 취재를 하여 방송할 때 수백 명의 신도들이 MBC 방송 주조정실에 난입하여 방송이 중단된 에피소드라든가, 온갖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PD가 경찰의 신변 보호까지 받아야 했던 에피소드 등 에피소드라고 부르기에는 좀 서늘한 사건들도 회고담에 담겨 있으며, 여러가지 다양한 제작 뒷이야기들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또한 언론인에 대한 소송이나 구속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최근 사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담겨 있어서, 현 정부의 언론 통제 시도가 얼마나 억지스러운지도 실감하게 된다.

사회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법원과 검찰이 제 구실은 커녕 시대에 역행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검찰에 대한 분노, 타락하고 부패한 경찰에 대한 불신, 정부의 입맛에 맞게 순순히 길들여지고 있는 언론에 대한 실망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이제 20년을 맞은 <PD 수첩>이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부끄럽지 않게, 어떠한 협박과 회유, 정치적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본과 권력의 치부를 과감하게 드러내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오래도록 계속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010년 7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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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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