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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 Doubt (2008)

영화2017.04.06 23:39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믿는 신과 소통했을까?" 목사나 신부들을 보면서 늘 하는 생각이다. 난 정말 궁금하다. 그들은 정말로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확신에 차서 신도에게 또는 신을 '의심'하는 비신도들에게 '회개하라, 예수를 믿으라' 를 외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종교적) 직업적 신념에 의한 것인지.

믿음 (faith) 은 옳고 그름의 판단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이명박과 황우석을 믿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린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나는 본다. 나는 믿음을 내향적 다스림의 문제이며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지탱시키는 힘의 근원이라고 본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외부 종교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없을 수도 있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

자신이 연출했던 연극을 직접 스크린으로 옮긴 존 페트릭 셰인리 감독의 <다우트> 라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관점에서 관람했고 생각했다.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기서 믿음이란 종교의 영역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믿는 것이면 그 무엇이건 상관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보아야 마땅하나 난 이렇게 보았다는 거다.



성 니콜라스라는 교구 학교가 배경이다. 피 한방울 안날 듯 원칙과 규율에 엄격한 학교 교장 알로이시스 수녀 (메릴 스트립), 원칙에 철저하기보다는 융통성이 있고 다소 자유로운 (또는 진보적으로 보이는) 사고 방식을 지닌 플린 교구 신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그리고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비교적 순진한 학교 선생님 제임스 수녀 (에이미 아담스), 이 3 인물의 갈등 구도가 이 영화의 내러티브이자 관객 의식의 흐름이기도 하다.

갈등 구도의 중심에는 최근 전학온 한 흑인 학생 도날드 밀러가 서 있다. 유달리 도날드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플린 신부. 제임스 수녀는 신부의 도날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알로이시스 교장에게 이를 보고한다. "플린 신부님이 도날드와 부적절한 관계인 것 같아요" 도날드가 당할 수 있는 차별을 걱정한 플린 신부의 박애 정신일까 아니면 성적 성향의 문제일까? 성적 성향의 문제라면 학교와 교구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영화는 진실이 무엇인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중요하지도 않다. 이것은 진실을 둘러싼 '의심'을 통해 벌어지는 인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고 관객 역시 의심의 심리 상태에서 인물들과 갈등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저 스크린 상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로 상황을 추리하고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다. 추측과 추리도 결국 의심에서 출발한다.

알로이시스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플린 신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의 행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 플린 신부는 알로이시스의 의심은 지극히 부당한 것이며 그녀의 원칙에 대한 맹신을 비난하며 대응한다. 이 가운데에서 제임스 수녀는 마치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추측하는 관객의 심리와도 같이 그 누구도 믿지 못하며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의 갈등은 점점 격해지고 한쪽이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믿음과 의심의 전쟁으로 발전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거의 제임스 수녀와 같은 입장이었다. 교장의 이야기가 설득력있는 것 같다가도 플린 신부를 옹호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알로이시스가 도날드의 어머니를 만나 도날드에 관해서 알게 된 이후부터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영화 종반부. 결말 내용과 나의 견해가 담겨 있으니 영화를 볼 계획이라면 본 후에 열어 보시기를.


열어보기


이 야기 머리에서 나는 믿음의 근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관한 의심에서 영화를 보았다고 밝혔다. 나는 이 영화를 단순히 '함부로 남을 의심하지 말자' 이런 차원의 이야기를 하려는 정도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이미 말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순간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배신해야만 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라는 참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 간은 누구나 끊임없이 자신을 움직이게 할 믿음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돈, 명예, 행복, 사랑, 신,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 가치에 자신을 맡기고 자신의 삶을 기꺼이 맡긴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모든 것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관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이루어질 수 없는 허구적 희망을 쫓았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느냐 아니냐는 인생에 있어서 대단한 시험이 아닐 수가 없다. 꼭 종교인 만의 고민과 갈등은 아니다. 나에게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를텐데...


2009년 2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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