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투박하고 굵은 입자의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랜디 램(미키 루크)를 그야말로 밀착해서 쫓아다닌다. 늙고 잊혀졌지만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동네 경기장, 그가 몰고 다니는 구닥다리 닷지 램 내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위생 모자를 쓰고 고기를 썰고 샐러드를 담아 파는 식료품 마트,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캐시디(마리사 토메이)를 만나러 종종 들르는 성인 술집... 어디나 함께 한다.

영화 <더 레슬러> 는 미키 루크가 나오지 않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그래, 정말 단 한장면도 없다. 이 영화는 감독이 캠코더 들고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면서 찍고는 편집해서 그 배우에게 바치는 영화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야,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야말로 미키 루크의, 미키 루크를 위한, 미키 루크에 의한 영화이며, 배우 미키 루크의 재기작이자 인간 미키 루크의 부활이다. 그래서인지 포스터 문구도 이렇다. "Witness the Resurrection of Mickey Rourke in ..."


개봉 당시 청소년관람불가여서 들여 보내달라고 극장 입구에서 사정사정하며 한참을 싸우고 나서야 볼 수 있었던 <엔젤하트> 이후 처음 극장에서 본 미키 루크의 모습. 그 잘생긴 얼굴과 날렵한 외모는 모두 사라졌다. 복싱을 했다고 하던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몸은 거대해졌고 얼굴은 완전히 망가져 있다. 그러나 <더 레슬러> 에서는 자신의 삶과 인생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미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카메라가 그림자같이 붙어서 그의 모습을 담아내는 이유이기도 할거다. 진짜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담아내는 방법. 밀착취재 말고 있나. '편집'에서는 최선의 태도라는 것이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정말 눈물 난다.

극장을 나서면서 나는 딱 한가지 생각만 했다. "진짜 열심히 산다는 거..." 요즘같은 암울한 세상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뚫고 남을 밟고 생존하기 위해 사는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짜 열심히 산다는 것은... 그래, 그런 거야..." 누구나 자신의 가슴 속에 품고 살면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견딜 그 무언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산다는 거,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의리와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 거...

최근 영화를 대단히 많이 보았는데 이 영화만큼의 강한 인상과 감동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듯 싶다.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구나 고민하겠지만, 그것이 꿈과 열정에 관련된 것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라고 나는 추천한다. 늙고 병들고 초라해지고 뚱뚱해지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해 외톨박이가 되어도 '인간'으로 산다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곳을 향해 나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으니까.

***

1980년대 말은 헤비메탈 매니아 고딩이라면 광분했을 Metallica 의 <Master of Puppets> 과 Guns N' Roses 의 <Sweet Child o' Mine> 이 뒤흔들던 시대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세운상가 뒷골목으로 달려가 그 빽판을 구해다가 카세트 테이프에 옮긴 다음 버스로 등하교하면서 닳도록 들었던 기억. 라이센스로 나온 건스 앤 로지스의 <Appetite for Destruction> 에서 지워진 곡들에 대한 분노의 기억도.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2008년 영화, 아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배우 미키 루크의 영화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한 <더 레슬러> 는 1980년대 헤비메탈에 대한 헌정이기도 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모든 영화음악을 담당해왔던 클린트 만셀의 오리지날 스코어보다는 영화 전편에 걸쳐서 흐르는 80년대 메탈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마지막. 경기장에는 건스 앤 로지스의 <스위트 차일드 오 마인> 이 흐르기 시작하며 링으로 오르기 전 랜디 (미키 루크) 는 그가 왜 링에 올라야 하는지 그 한마디를 남긴다. "아, 이 음악이 이렇게..."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스위트 차일드 오 마인> 을 듣고 감동먹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점점 격렬해지는 선수들과 관중 뒤로 흐르는 만셀의 스코어, 그리고 이어서 흐르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더 레슬러>. 만약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을 메탈팬, 아니 락매니아로 부를 수가 없다.




90년대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를 필두로 상업성을 띤 얼터너티브락이 득세를 하면서 얼터너티브 밴드들과 80년대 메탈 밴드들은 언더로 언더로 내려가야 했다. 메탈 플레이어들의 트레이드마크인 치렁치렁 긴머리도 잘려 나갔다. 랜디 램의 긴 머리는 어쩌면 80년대를 호령하던 스타 플레이어에서 동네 선수로 전락했음에도 그 레슬러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그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인상깊게 본 장면 중 하나가 이거다. 어떤 바에서 Ratt 의 <Round & Round> 가 흐른다. 맥주 한잔 하러 온 랜디와 캐시디. "90's fucking sucks" 를 외치면서 코베인이 다 망쳐 놨다며 맥주를 마시며 80년대를 예찬하며 메탈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던 랜디와 캐시디 (마리사 토메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참고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더 레슬러> 는 그의 새 음반 <Working on a Dream> 에서도 들을 수 있다. 짧은 버전이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가 있어 아쉽기는 하다만... 좋은 음반이다. 이런 거 하나 사면서 돈 아끼고 그러지 말기를, 당신이 락 팬이라면...


2009년 2월 2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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