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이야기

직장인 대부분이 늘 꿈꾸는 것, "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닌데..." 평범한 직장인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떠나고만 싶다는 그 맘을 그 답답한 직장인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헤아릴 길이 없을지 모른다.

내가 받는 월급은 회사 나가기 싫은 맘을 꾹 누르고 억지로 출근한 것 그 자체에 대한 보상이라고도 누구는 이야기한다. 큰 조직의 일원이 되고 매일 아침 해가 뜨면 우르르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넥타이 군단과 함께 회사로 나가 공장 기계의 부속처럼 잠자코 특정 업무를 처리하고는 6시 땡 치면 후다닥 숨막히던 사무실을 뛰쳐 나와 안도의 한숨 크게 한번 쉬고 집으로 향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일이, 대기업 조직의 일원이 되어서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저 그런 일 하려고 그 먼 회사까지 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하루를 때우다 밥 먹고 오후 시간을 보내다가 스트레스 한가득 담느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라 한다. 비싼 월급은 바로 그 재미없는 일을 해주어서 특별히 고맙습니다, 라며 회사가 주는 위로금이래나 뭐래나, 어떤 이의 말로는. 재미없으니까 많이 준다는... 대기업의 생리다. 그래서 외도에 대한 유혹에도 쉽게 넘어간다.

무엇이건 자신감이 넘치던 대학생 시절, 낭만과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프로페셔널 인정받으며 돈도 많이 벌거야. 시간을 내서 언젠가 세계 여행도 꼭 한번 갈 것이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프리카도 한번 가봐야겠어. 그리고 멋있는 배우자를 만나 아름다운 집에서 예쁜 아이도 낳고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런데 이렇게 살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내 이야기


그 사람은 대단히 멋있어 보였지. 안정된 직장에 깔끔한 외모와 사려깊은 마음, 언젠가 세계를 누빌거라는 꿈도 있었어. 나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낭만적이고 자유로움을 찬미하던 사람이었던거야. 이런 사람이면 나의 미래도 장미빛일 수 있을거야. 그래서 결혼했어.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가 않더라. 아이 둘 낳아 아웅다웅 키우다 보니 어느새 훌쩍 나이를 먹어 중년이 되어 있더군.

이 가족이라는 조직에서 난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갑자기 나의 존재감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 그래도 그 사람은 억지로 참고 부속처럼 일한다고는 해도 어쨌건  세상과 소통하며 뭔가 자신의 일도 하고 영역도 만들고 인정도 받고 그 댓가도 벌고 있는 거잖아. 난 그것도 아니거든.


그리고 돌아와서는 나에게 푸념들을 늘어 놓지. "빌어먹을 상사같으니라고... 정말 그만두고 싶어. 아 우리 어디론가 떠날까... 이렇게 사는 건 사는게 아닌 거 같아." 그 사람에게 난 뭐라고 해야 할까. 도대체 도대체 나의 상실감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거냐구. 이제 나에게 세상은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지 못해... 그래서 여기가 정말 답답해 미치겠는 장본인은 나라구. 이곳을 진짜 벗어나고 싶은 것은 나란 말이야.

그래서 나를 가두는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탈피하는 방법이 있을거야, 고민했어. 파리. 그래 그 사람도 파리를 좋아했지. 그 곳에서 꼭 살고 싶다고 했어. 나 정도 능력이면 파리에 가도 아직은 내가 할 일이 있을 거야. 뭐라도 해서 먹고 살 수는 있지 않겠어. 꼭 떠나고 말거야. 여기서는 희망이 없어. 어차피 지금처럼 사는 건 사는게 아니라고 그 사람도 그렇게 힘들어 하잖아... 함께 한다면 우리 가족은 뭐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을거야. 그리고 어렵기는 하겠지만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면 되잖아.

그러나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란...

이 부부가 꿈을 현실로 옮기고자 용기를 내어 짐싸들고 파리로 이사가면 그들은 과연 그들이 꿈꾸던 행복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현실성 없는 망상, 한순간의 꿈이라 치부해버리고 깨끗하게 포기한 다음 평소대로 답답하지만 안정된 삶을 사는 것에서 그들은 그토록 원하던 진정한 가족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까?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 1999> 에서 '생각보다 쉬운 가족의 몰락'을 냉소와 조소로 바라 본 이후, <로드 투 퍼디션 2002>, <자헤드 2005> 같은 좀더 넓은 세상의 무대로 나갔다가, 10년 만에 다시 가족이라는 무대로 되돌아와서 2009년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를 통해 이번에는 '가족과 부부, 그 위선의 속성' 이라는 정말 심각한 문제를 샘 멘데스는 제기한다. 스티븐 달드리의 <The Hours> 와 도리스 레싱의 <To Room Nineteen> 의 이야기를 무척 닮아있다.


(어떤 이상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된 영화)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에서 아주 특별한 연인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레볼루셔너리 로드> 에서 '월급쟁이 남편과 가정주부 아내'가 되어 두 아이를 낳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맨하탄 교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사는 여느 부부, 프랭크 휠러-에이프릴 휠러로 등장한다. 특별한 부부가 아니라 여느 부부라는 점, 명심하길 바란다.

영화는 시종일관 질문한다. 부부라는 관계에서 낭만적 삶이란 가능한 것인가, 오히려 하나에서 열까지 충돌의 관계는 아닌가를. 결혼이라는 인간의 발명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부부로 산다는 것은 사회, 문화, 경제적 배경의 대충돌과 그 상호작용에 직면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충돌로 인한 팽팽한 긴장관계는 누군가 자신의 삶과 영역을 포기해야만 안정궤도에 들어선다는 냉혹한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 현실적 부부의 법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한다. 이런 건 사랑과 이해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마을 사람들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젊고 아름다운 휠러 부부를 부러워 하는 듯 보인다. 예쁜 집, 귀여운 아이들, 착실히 내조하는 아내,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화목이라고. 그러나 누군가 한사람은 삐딱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쇼? 당신같은 부부의 삶은 비정상이며 위선이고 한쪽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한심한 가정일 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냐는 거지. 당신들의 아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야" 라 독설을 퍼붓는 막 정신요양원에서 나온 존 (마이클 쉐넌) 의 관점이다. 실은 가장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시선이다.


아내의 소망은...

파리로 떠나자는 아내의 소망에 담겨진 것들, 그것의 의미를 남편은 결국 이해하지 못한다. 실은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전혀 다른 가치관과 성장배경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그림같은 예쁜 집에서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의 의미란 것이 도대체 뭔지...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직장에 다닌다며 "그만두고 싶어 떠나고 싶어" 라는 남편의 푸념을 듣는 것? 아이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다가 어느덧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예쁜 집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아내의 삶 단편들이 조각조각 흩뿌려지는 광경을 흐뭇하게 목격하는 것?  "그래서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어디론가 떠나자" "내 직장은 어떡하고..." 티격태격 싸우고 충돌하며 서로의 감정을 공격하는 것?

존의 개입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직장동료와 이웃들은 망상이라 치부하는 것들이 부부라는 관계에서는 현실이 될 수 있어야 하며, 세상이 "그것은 한낱 망상일 뿐이야, 결국은 이런 것이 삶이지" 라고 주장하는 가치를 단호히 거부하고 부부만이 공유하는 가치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그 미치광이의 독설에 귀기울여야 한다.

당신은 남편이다. 자, 선택해라. 아내의 소망이냐 당신의 직장이냐. 당신과 아내는 부부로 살것인지 아니면 그저 동거인으로 지낼 것인지. 세상의 남편들아, 당신이 직장을 선택하고 아내를 설득하고 달래려 하는 순간 세상의 아내들은 아름다운 집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세상의 모든 아내의 표정을 담아낸 케이트 윈슬렛이 선택한 그런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 영화의 조용한 경고에 꼭 귀기울기를 바란다.


2009년 3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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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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