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점에서 프릿츠 랑 (Fritz Lang) 과 함께 독일표현주의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프레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F. W. Murnau) 의 1926년 걸작 <Faust> 를 보아도 좋을 듯 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파우스트는 유럽의 오래된 전설로 이 영화는 그 전설에 기반하고 있으며, 괴테의 <파우스트> 와는 좀 다르다.

신으로부터 페스트를 치료하는 능력도 얻지 못함을 좌절하던 파우스트 박사는 크로스로드로 가서 그 한가운데에 서서 주술을 외워 메피스토를 불러내고 시험삼아 하루동안 유효한 계약서를 쓴다. 그리고 신을 배반하라는 요구를 수락하고 악마로부터 흑사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신이 아니라 파우스트의 종을 자처한 악마로부터 받은 능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돌을 던진다.

계약한 하루가 다 지나가고... 다시 좌절한 파우스트는 독약을 마시고 죽으려 하나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로 하여금 젊음을 갈구하게 만들어 젊음을 주는 대신, 영혼을 빼앗아 가두고 아래 이미지의 왼쪽 상단의 모습으로 변신 후 젊어진 파우스트를 따라 다니며 시종 역할을 한다....



그런데,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계약 이면에는 신과 메피스토의 내기가 있었다. 실은 신이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의 고결한 영혼을 뺏어 가둘 수 있을 지 내기를 제안한 것이었다. 빼앗으면 세상은 메피스토의 것이 되는거다. 물론 신은 파우스트를 믿었다. 메피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있었고 정말로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앗아 가두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계약은 결국 깨진다...왜?  궁금하면 DVD 사서 보시기를 (2,900원이면 사니까. 대신 화질은 조악하다)...

무르나우는 브람 스토커의 1897년 소설 <Dracula> 를 원작으로 1922년에 만든 <Nosferatu> 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노스페라투> 는 드라큘라를 다룬 최초의 영화라는 점 외에도 독일 표현주의의 특징이라 할 만한 무르나우의 시각적 효과에 대한 실험영화이기도 하다. 당시로써는 무성영화시대에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룬 것이라고도 하는데, 여러가지 획기적인 기법들이 사용되어 있다고 한다.


카메라 이동, 화면배치, 이중노출, 기하학적 미장센 등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어둠의 이미지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마적 본성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그리고 <파우스트> 에서 카메라에 담아 내는 공포의 형상화는 지금 봐도 놀라운 것이다.

<노스페라투> 는 영화사에 위대한 걸작 10 에도 들어가는 영화다. 뉴저먼 시네마를 대표하기도 했던 베르너 헤어조그가 1979년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기도 했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1992년에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만들었다.  독일 표현주의의 또 다른  대표작인 로베르토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과 프릿츠 랑의 <도박사 마부제 박사> 도 추천작이다.

++++

의학박사만 크로스로드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은 아니다. 크로스로드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음악적 재능을 얻었다고 알려진 델타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 (Robert Johnson) 은 생전에 딱 2번 레코딩해서 29곡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명곡 <Crossroads>는 CREAM 이 불러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한 기타 키드가 미지의 30 번째 곡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로버트 존슨과 함께 활동했던 윌리 브라운을 찾아내어, 그와 함께 그 문제의 크로스로드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악마를 만나게 되는 그들은 이번에는 그들의 영혼을 내걸고 기타 배틀을 벌이게 된다.

월터 힐 감독의 <Crossroads (1986)> 라는 영화인데, 악마의 하수인 역할에 스티브 바이가 출연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서도 악마와의 계약은 깨진다는 점이다.


악마와의 계약을 깬다는 것... 그것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 피를 뒤집어 쓰고 나와 사람에게 잔뜩 겁을 주고 공포의 대상을 물리치는 따위의 스캐어리 무비를 악마에 관한 영화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악이란 선한 인간과 대립하는 존재로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원래부터가 인간의 내면에 포함되어 있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에는 늘 자신이 키운 악마와의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가 이러한 기본 설정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악마의 실체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곳에서 천사인 사람이 저곳에서 악마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에 내재하는 악마의 정체성에 대해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악마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내 안에 있는 악마와 내 주위에 존재하는 악마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 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와 <데어 윌 비 블러드> 는 악마의 속성에 관해 정말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라는 영화인 것 같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 텍사스를 가로지르며 지옥 (나는 여기서 이것을 미국의 속성이라 부르고 싶다) 에서 온 악마와 벌이는 죽음의 레이스를 잔인할 정도로 건조하게 그려내고 있다. 너무 건조하다.

신이 인간을 벌하는 방법이 두가지라고 한다.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거나, 반대로 세상을 사막으로 만들거나... 홍수와 가뭄 중 더 잔인한 것을 묻는다면 가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가뭄은 신이 아닌 악마의 벌일지도 모른다. 그 가뭄 속에서의 레이스라...

<데어 윌 비 블러드> 는 불구덩이로부터 화염을 내뿜으며 그 지옥에서 나와 인간을 검은 기름으로 뒤집어 삼킨 다음 그 인간인 척하는 진짜 악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난 이 영화가 더 무서웠다. 기름이 땅속에서 솟구칠 때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가 분출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The Mist> 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다른 차원의 문으로 통해 들어 온 악마적 속성같기도 하다.

요즘의 미국 영화를 보면, 선과 악의 대결구도 속에 영웅과 오락성을 띤 사건만 잔뜩 쏟아 내어 악의 속성과 그 실체에서 눈 멀게 했던 기존의 상업영화들과는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노인...> 과 <데어...> 와 최근 많이 달라진 미국 영화들을 유심히 보면서 진짜 악마란 무엇일까... 한참 생각 좀 해야 할 것 같다.


2008년 3월 18일 작성


Posted by bopbo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