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때 20대 투표율이 낮음을 개탄하며, <Untraceable, 킬 위드 미>라는 영화에 빗대어 짜증을 낸 적이 있다. 그 때의 논리는 이런 거였다. 시스템 자체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나둘 달라 붙어야 움직이기 시작하고, 떼거지로 달라 붙어야 정상 작동한다. 헌법과 민주주의 자체는 시스템일 뿐이니, 달라붙어 움직여라, 20대 너네는 대체 뭐냐, 뭐 이런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자, 가정을 한번 해보자. 어떤 한 멍청한 놈이 그 killwithme.com 이라는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실수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거다. 예를 들어, 어디 사는 누군데... 뭐 이런 식. 백만명이 접속을 해서 kill 이 발생하고, 그 중 딱 한명이 어떻게 하다보니까 나는 누구, 라는 것이 공개가 되었다는 거다. 이 놈은 어떻게 될까?

그 놈은 함께 접속한 999,999 명보다 특별히 더 나쁜놈도 아니고, 그저 실수로 이름과 사는 동네가 밝혀진 것 뿐. 법적으로는 아니겠지만 윤리적으로 볼 때, 999,999 의 몫까지 그놈이 몽땅 뒤집어 쓸 확률이 얼마나 될까? 불행히도 그 확률 대단히 높다, 고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999,999 명의 그 한명으로의 책임 전가와 이지메까지도 가능할 지 모른다. 그러니까, 마녀사냥.

그래서 더 황당한 건 바로 이거다. 접속자를 가령, 소수의 traceable 과 대다수의 untraceable 로 구분한다고 할 때, untraceable 부류와 아예 처음부터 unconnected 부류와 구별이 안된다는 거. 결국, 모든 화살은 그 소수의 traceable 로 집중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것. 진짜 심각한 게 바로 이거다.

어떻게 해서든지 소소의 traceable 을 찾아내어,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관심을 그 쪽으로 몽땅 쏠리게 한 다음, untraceable 부류로 슬그머니 빠져서는, 결국 unconnected 와 구별이 안되게 해버리는 식. 그러다보니 부패가  unconnected 와 섞이고, 강자의 착취가 약자의 앵벌이와 뒤섞이고, 명확한 개념이 흐려지며, 본질과 예외의 주객전도가 일상생활에 파고든다.

100년 전 친미파나 친일파부터 시작해서, 현 정부가 유난히 심하긴 하지만 역대 정부, 한나라당이 유난히 심하기는 하지만 각종 역대 정당, 검찰, 경찰, 그러한 방식의 아주 최첨단을 달리는 조중동, 100년전 친미파 (그리고 친일파) 를 정통 계승하는 뉴라이트가 유달리 심하기는 하지만 각종 경제단체까지, 이들 조직이나 집단의 생존 방식을 잘 보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종부세 논란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논리를 보인다.

그래서, 방송이건 신문 언론이건 기자들은 자신들의 기사에 정말 지나치리만큼 자신의 논리의 정당성 확보에 목숨 걸어야 한다. 어디서 대충 주워 들은 거 가지고 휘갈기다 보면, untraceable 과 unconnected 를 구별해내지 못한 시각을 세상에 전파하게 되는 꼴이 된다. 특히 대중문화, 예술문화 쪽... 보면 아주 기가 차는 사람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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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블로그나 댓글에서 이런 걸 본다. "너희가 직접 뽑아 놓고 이제 와서 춧불 들고 물어내라고 딴소리네..." 난 이런 소리를 'untraceable 의 폭력' 쯤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과연 traceable, untraceable, unconnected 중 어느 부류에 들어갈까를 종종 생각한다.

그다지 철저한 책임와 윤리 의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의 역사를 볼 때 이런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부패를 쉽게 받아들이거나, 약자를 등쳐먹는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 다들 그렇게 하는 데 뭐, untraceable 로 쏙 들어가 버리고 unconnected 행세하면 되는 거지, 라는 참 거시기한 가치관...

'추적할 수 없는', '추적되지 않는', '책임을 전가하는', '윤리의식이 세탁 된', '결국 스스로 인격의 가치를 포기하는' ...

2008년 8월 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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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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