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7월 12일 저녁 7시, 경찰의 원천봉쇄로 어디로 가야 하나를 고민하던 시민들과 깃발들, 하나둘 광장 서쪽에 모이기 시작하고 무작정 행진을 시작했다. 을지로 입구에서 종각으로, 종각을 지나 안국동으로.

슬금슬금 내리던 비는 갑자기 장대비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선두 진열에 있던 광우병 대책위원회 차는 갑자기 조계사에서 멈춰 서더니 촛불문화제를 하자고 시민들의 행진을 멈춰 세웠다. 비는 퍼붓고, 아무도 없는 깜깜한 그 곳, 왜 갑자기 행진을 멈추고 어떤 형태의 문화제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되던 찰라, 앞 삼거리로부터 "앞으로, 앞으로" 가 들려왔다. 앞쪽은 텅텅 비었다.

조계사 앞에서 차를 기준으로 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느냐 차 앞쪽에서 소리지르는 사람들과 차를 뒤따르면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섞여 뭐라 하는지 알아 듣기 힘든 한동안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장대비 속에서 잠시 방황하던 촛불은, 다시 앞으로 행진을 재개하긴 했으나 삼거리에 도달하자 다시 한번 방황을 했다. 버스 바리케이드로 막힌 청와대로 좌회전하는 촛불들, 대학로로 가자며 우회전하는 촛불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대학로가 낫겠다 싶어 우회전 행진대열에 합류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행진 대열이 뒤따른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시작된 종로 행진,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그 엄청난 폭우에 거의 모든 촛불들은 꺼지고, 물이 다시 신발에 가득 차서 2주전 까진 발이 또 까져 걸을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행진은 대학로를 가는 듯 했지만, 동대문까지 갔고 거기서 우회전했다. 불을 환하게 밝힌 동대문 의류 쇼핑몰을 지나, 을지로 3가를 지나고 을지로 입구에서 직진하지 않고 명동으로 좌회전, 처음 행진의 출발지였던 그곳은 이미 경찰들이 버스로 막아 놓은 모양이었다. 어쨌건, 롯데백화점을  지나,

남대문을 끼고 돌아, 또 다시 원천봉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경찰이 있는 시청으로. (사실, 남대문에서도 YTN 으로, 시청으로, 갈려 여기서도 다시 한번 촛불은 방황했다.) 이것이 지난 7월 12일 폭우 속을 뚫고 진행되었던 촛불행진이다. 빨간선으로 표시한 구간이 그저께 걸은 행진 코스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3번 있었던 그 촛불의 잠깐의 방황 속에서,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 정치> 와 월터 살레스 감독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의 한 구절과 한 장면이 생각났다. 오래 전에 읽은 <직업으로서의 학문, 정치> 는 누구나 살면서 꼭 한번은 읽어야 한다고 항상 추천하는 리스트에 넣는 책이기도 하다.

정열, 책임감, 판단력, 이 세가지가 정치가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막스 베버는 이야기하고 있다. 정열, '사물의 상태에 즉응(卽應)한다' 는 의미에서의 정열. 정열을 열정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문맥에 큰 변화는 없을 듯 해서 이후로는 열정이라 하겠다.

열정, 그러니까, 즉응하다, 즉응하려면 생각이라는 걸 할 겨를이 없음을 의미한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에서 청년시절 체 게바라는 형과 함께 모터사이클로 남미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한 나병 환자촌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나병환자들만 한 외딴 섬에 격리 수용시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3 주를 보낸 후, 떠나기 전날 밤에 생일을 맞아 파티를 하던 청년 체 게바라는 파티 도중, 갑자기 파티장을 나와 강물로 뛰어 든다. 그는 강을 헤엄쳐 건너 나환자촌이 머무는 섬으로 생일파티를 한다며 갔던 것이다. 강에는 악어가 살지도 모르고, 그는 천식환자였다. 배는 어딨나, 를 체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도 <막스 베버> 의 열정에 대한 정의가 생각났고, 이 장면에 너무 감동을 받아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 나의 명장면으로 손꼽는다. 막스 베버의 '열정' 이라는 개념을 월터 살레스의 체 게바라는 영상으로 묘사해 준 것이라고 본다. 이후로 '열정' 이 무엇이냐 누군가 물으면 나는 대답한다. "두번 생각하지 않고, 듣는 즉시, 바로 강물로 뛰어 드는 것",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열정이 아니다.


열정과 냉정, 만약 냉정을 책임감과 판단력이라는 부분으로 해석할 때, 사실 열정과 냉정은 대립의 관계는 아니다. 열정 안에는 이미 책임감과 판단력이 내재한다. 다만, 머리가 아니라 몸에 베어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늘, 책임감과 판단력이 본능처럼 섞여 있는 열정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어제 행진 도중, 종로에서 안국동으로 가던 길목에서 갑자기 서서 촛불문화제를 하자 했던 광우병 대책위원회의 제안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두달 넘는 촛불 집회와 행진의 목적은 모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스스로의 열정에 의해 인도되어 거리로 나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사람들의 열정은 판단력, 즉 냉정에 기초한다.

몇십만은 모이는 것만으로도 보여 줄 수 있지만, 모이는 것 자체가 원천봉쇄당하는 상황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보여 주고자 하는 '앞으로' 열정에 가장 충실한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보았다. 물론, 앞으로 나아 갔으며, 결국은 '앞으로' 열정을 표출했다.

나는 체 게바라의 혁명정신도 열정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열정에는 책임감과 판단력이라는 냉정이 이미 내포한다. 말장난 같지만, 냉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열정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촛불이 시민들의 저항과 분노의 절제된 표현이 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혁명전야같은 뜨거운 열정의 함성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가슴 뜨거운 '열정'을 택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이유는, 정치가는 아니지만,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판단력이라는 냉정을 감싸안은 열정의 본능을 그저 믿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1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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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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