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하나> 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2008> 라는 영화가 곧 개봉 예정이다. 영화가 대단히 훌륭하다. 오랜만에 모여 음식을 함께 해먹으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 자식간 가족의 이야기이며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더> 가 바보 아들을 지키려는 어머니였다면 <걸어도 걸어도> 는 죽은 아들을 가슴에 품은 어머니다. 바보 아들과 죽은 아들 모두 어머니에게는 큰 상처이지만 전자는 진행형이고 후자는 완료형이다. 그러나 그 완료형은 실은 완료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리고 진행형도 마찬가지로서 완료가 불가능하다. 어머니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단 한 줄의 리뷰나 정보도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하는 편이고, 영화에 대해 뭔가 쓰고자 할 때에도 감독 또는 배우의 관련 인터뷰는 가급적 사절한다. 그렇게 쓰여진 이야기는 대개 나의 생각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감독과 함께 하는 시네 토크 낀 시사회 등은 웬만해선 가지 않게 된다. 그 담화를 듣는 순간 텍스트로 환원되어야 하는 생각들에 방향이 설정되고 폭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갔다.

어쨌건 영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보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토크 중 기억에 남는 감독의 말이다. "철저히 계산을 해서 각본을 쓰고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막상 촬영장에 가면 뜻대로 안되는 경우는 늘 있기 마련이다. 돌발, 의외, 우연 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룰 거냐는 거다." 그러니까 진짜 능력이란 배운 대로 얼마나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얼마나 슬기롭게 풀어내나,라는 것.

세상의 이치다. 이론과 실제, 상상과 현실의 차이.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보다 현장경험이 풍부한 경력사원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몸값은 공부 잘했다고 결정되기보다는 현실 대처, 즉 돌발, 의외, 우연을 처리한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학계와 업계의 괴리, 그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득 "영화 찍는 법을 배워 배운 대로 하는 것"과 "예기치 못한 상황 또는 우연에 대처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가령, 앵글에 포착된 의도하지 않은 이물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결정부터 시나리오 수정까지도 고려하게 하는 우연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결단 등등...

이런 돌발, 의외, 우연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 방법은 가령 "영화 찍는 법 강의" 에는 포함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마디로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대처하라" 라는 것에는 일종의 정답이 없다. 한참 찍고 있는데 카메라 렌즈에 파리가 한마리 앉았다고 하자. 다시 찍어야 하나, 아니면 즉흥적 의미를 만들어 내고 그냥 사용하나, 에 대한 판단.

대학교에서 이론을 배우지만 사회에 나가면 이론대로 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불가능하다. 이론은 관념에 불과하고, 실제는 느닷없이 나타난 파리 한마리와 같다. 직장이건 가정이건 사회의 구석구석은 이론과 지식의 습득만으로는 예상하기 어려운 예기치 못했던 돌발의 연속이다. 그 돌발과 우연에 대처하는 방식은 직업훈련 따위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혜와 가치관이 해결한다. 그러니까 이게 없이 그저 배운 대로만 하면 <마더> 의 바보 아들처럼 되는 거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던간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해당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적용해보는 것이 아니라 철학, 윤리, 역사, 예술, 문화 같은 '교양'으로 통칭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에 따른 판단이라는 말이다. 잘 따져 보면 몸값을 올리는 것은 교양이지, 기술이 아니다. 사람들은 판단은 비싸고 노동은 싼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인문학, 교양, 예술 경시 풍조는 그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대단히 멍청하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간단하다. 판단은 교양의 문제고 노동은 기술의 문제다. 후자만 들입다 판다고 몸값 올라가는 거 아니다. 글씨를 예쁘게 쓴다고 해서 훌륭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며, 노래를 대단히 잘한다고 해서 멋진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 풍부한 교양에서 비롯한 방대한 지식과 판단 능력, 그리고 의식으로부터 훌륭한 글이 나오며, 예술을 이해하는 교양으로부터 멋진 음악이 나온다.

까놓고 말해서 심지어 돈을 밝히는 세상이 칭찬하는 모든 아름다움조차 '기술' 관점으로 설명하려다 보면 십중팔구 헛다리 짚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교양'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배운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우연적 상황과 돌발까지 읽어낼 수 있어 상당히 본질에 접근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기술'이란 의외로 실용적이지 않고 '교양'은 예상외로 실용적이다. 또한 '기술'의 관점이 읽어내지 못하는 비밀을 '교양'의 관점은 아주 간단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술을 강조하다보면 그저 OEM 그림만 잘 그릴 뿐 이야기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결국 돈도 많이 못번다. 세상의 그 수많은 산업을 보라고. 누가 "그림 잘그리기"에 투자하나, "글 잘쓰기"에 투자하지.

2009년 6월 1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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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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