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 가 오랜만에 만났다. A 와 B 는 최근 새로 구입한 핸드백을 들고 나왔다. A 의 것은 악어가죽에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몇 개 붙어 있고, B 의 것은 헝겊짝에 반짝이는 큐빅 몇 개 붙어 있다. 마침 어떤 핸드백을 살까 고민 중이던 C 는 B 의 것이 괜찮아 보였다. 저렴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것은 소위 유명 브랜드 명품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다. 다이아몬드를 덕지덕지 붙인다고 해서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제조원가를 높인 비싼 상품에 불과할 뿐이다. 명품으로 향하는 길은 다르다. 우리가 말하는 '명품'이란 유형이 아닌 무형 가치의 대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짝퉁 구매는 그 "무형의 가치"를 값싸게 획득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한다.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물신숭배사회라는 것이.

무형의 가치란 것이 원래 그런건가 보다. 상대방이 속거나 아니면 나만 만족해도 어쨌건 가치는 획득된 것이니까. 진품의 가치라는 부분은 좀 다른 이야기로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 순전히 소유에 대한 욕구 차원이라면 그것은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피곤한 욕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쨌건 핸드백을 만들어 돈을 벌고 싶다면, 물건 자체에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을 할 것이 아니라 핸드백의 개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욕망은 다른 어딘가에 있고 적어도 보석과 함께 있지는 않다. 돈은 이렇게 버는거다. 그리고 물건 자체보다 사람들의 의식 자체를 건드리고자 하는 마케팅의 세뇌 욕망에 물건과 미디어는 공생관계가 된지 이미 오래다.

사람들은 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무형의 가치를 원할까. 우리를 세뇌하고 싶어하는 기업과 미디어의 욕망에 따라 우리의 의식 속에서 무엇인가 無가치에서 有가치로 변화한다. 가치가 생성되긴 하는데 형태는 없다. 형태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만 발현된다. 아무도 모른다. 그런 가치를 구입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사람들은 '명품'의 가치를 좋아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핸드백에 다이아몬드 아무리 많이 박아봐야 사람들은 핸드백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다이아몬드만 떼어낼지 모른다. 사람들은 악어가죽에 다이아 박은 무명제품보다 헝겊 쪼가리로 만들고 루이비똥 딱지 붙인 제품에 가치를 부여하고는 소중히 한다. 가치란 것이 원래 그렇다. 전자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나. 그것은 다이아몬드의 가치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 '가치'라는 것에 그만큼 잘 속는다. 미디어를 통한 물신숭배와 세뇌사회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여기서 '속는다'는 것의 부정적 의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접촉보다는 인상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지를 심는 데에는 소개팅보다는 채팅이 효과적"이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보여주지 않고 이야기만으로 상대방은 알아서 마음 속에 무형의 가치를 생성해 낼 것이다. 돈 벌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미지를 심어 주면 된다.

***

나는 일류와 삼류의 차이를 이렇게 본다. 일류는 헝겊과 큐빅으로 제조해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욕구를 불러 일으키지만, 삼류는 가죽과 다이아몬드로 제조하여 던져 놓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한다.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해당되지 않는 것은 없다. 눈으로 확인되는 비싼 가시성은 삼류가 추구하는 바요, 마음으로 느끼는 만족감은 일류가 추구하는 바다. 명품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일류를 지향한다는 세상의 수많은 기업이나 조직들이 있지만 '일류'라는 가치는 결코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미녀와는 3개월을 살고 양처와는 평생을 사는 법이다. 보통 삼류들이 가능하다고 믿고 단기성과에 목숨을 걸면서 그 "단기의 가치"를 일류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정작 일류를 떠드는 집단 중에서 일류는 없고 까보니 삼류인 경우가 많다. 삼성과 정부 여당 등이 아주 대표적인 조직들이다.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 일류가 되기를 원한다면 길게 보아야 한다. 가령 직장이 아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에 가치를 부여하여 생계가 아닌 인생을 볼 필요가 있고,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외모라는 단기속성보다는 성품이라는 장기 속성을 볼 필요가 있다. 일류의 삶이라는 것이 아마도 이럴 것 같다. 길게 보는 것. 나는 내 경험을 통해 (직장이 아닌) 직업이 없는 사람은 불행할 삶을 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깨닫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 보면 눈으로 확인되는 단기 가시적 성과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대단히 많고 그들에 의해 이끌려 가는 조직이 대단히 많고, 그 조직에 의해 이끌려가는 국가도 대단히 많다. 직업이 없으면 필연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그들에게 봉사하게 된다. 관료제라는 것의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고, 요즘같이 사람의 가치가 물건보다도 못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불행일 수도 있다.

가치라는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길게 보는 일류와는 달리 삼류는 참 짧게 본다. 짧게 보는 이들을 상사로 모시는 부하직원은 필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개 조직이 엉망진창임에도 어지간히 유지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전에 만든 가치가 그 조직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

초단기 가시적 성과주의에 올인하는 나라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은 참으로도 하루하루가 안타깝다. 가치는 매몰 중이다. 명품을 만들고 일류가 되기는 커녕 짝퉁에다 다이아몬드 잔뜩 받아 놓고서는 "우린 일류다" 라고 외치는 집단 때문에 사람들과 나라가 삼류를 넘어 저질이 되는 것도 이제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2009년 6월 24일 작성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bopbo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