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가셔서 이승에서의 모든 번뇌와 억울함, 그리고 분노와 눈물은 모두 거두시고 아름다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 부디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정말 진심으로) 가족의 평화가 다시 찾아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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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전 강원도를 향하는, 불편하기 짝이 없어 몸을 뒤척이던 버스 안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접했습니다. 일순간 마음이 너무 무거워져 버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일요일부터는 너무 어지럽기 시작했습니다. 몸조차 가누지 못했습니다. 딱히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세상이 자꾸 핑핑 돌기만 했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밀린 업무를 모두 뒤로 하고 휴가를 내어 병원까지 다녀와 지금은 약에 취했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돌지 않지만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듯 합니다. 어쩌면 이 땅은 정말로 돈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동해안 해변에 있는 큰 호텔에서 있을 회사 후배 결혼식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저는 결말 만을 남겨 둔 채 읽던 책을 덮고 말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읽고 있던 책은 <난, 꼭 살아 돌아간다> 라는 책으로 <The Last King of Scotland>, 최근에는 <State of Play> 를 연출한 케빈 맥도날드의 2003년 다큐 영화 <Touching the Void> 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난, 꼭 살아 돌아간다..." 결혼식장에서의 잠깐의 배회 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는 계속 이 책의 제목이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난, 꼭 살아 돌아간다... 난, 꼭 살아 돌아간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힘을 내어 결말을 읽어 나갔습니다. 주인공은 살아 돌아왔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나라는 죽으러 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살아 돌아가는 것이 어려운 땅이 되어 버린 듯 보입니다. 왜 이렇게 슬프다는 생각이 들고 눈물이 나려는지... 그의 죽음이 슬퍼서라기보다는 이 모진 땅에서 아둥바둥 어떻게든 꿈을 이루고픈 나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잔인한 그들 및 그들의 정책과 몇 십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 전대통령처럼 이 땅의 아이들이 희망을 버리고 좌절과 두려움만을 대면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한편으로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 거칠고 모진 땅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Touching the Void> 에서 묘사된 안데스 산맥 시울라 그란데 서벽 정상을 오른 뒤 내려 오다가 추락해 크레바스로 떨어져 버린 조 심슨이 밟고 있는 살얼음판, 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 정말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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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상식과 이성을 밟고 이 땅의 사법권과 입법권을 장악한 악의 무리는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권력자조차도 바위로 투신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치는 잔인한 일당임을 국내외적으로 기어이 확인하고야 말았습니다. 어차피 정해진 타겟과 목표를 정해놓은 압박 사냥이었으니까 말입니다. 하물며 저희같이 뭐하나 가진 것 없는 일개 소시민은 그들이 이 땅에서 꺼지라면 꺼지고 죽으라면 그냥 죽는 것 말고 뭐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 나라가 너무 두렵습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가 아니라 말 안들으면 산 정상에서 밀어버리고, 열심히 일해도 소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내쫓아 버리고, 허튼 소리 하면 잡아다 때리고, 그나마 용기 내어 촛불 들고 광장으로 나가면 어린 경찰들은 투견판의 개가 되어 곤봉을 휘두르며 아무나 붙잡고 으르렁거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적법하다 외칩니다. 이것이 과연 '나라'인지 전 참 궁금합니다. 그저 폭력집단의 구역 아니던가요.

'나라'가 아니라면 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경찰을 누구에게 봉사하며, 검찰을 누구를 잡아들이고, 정부는 무엇을 하는 조직이며, 국회는 누구를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일까요. 마치 오래동안 기다려 온 악의 주인을 만난 듯, 물불을 가리지 않고 피로 맹세하여 충성을 다바치는 검찰과 경찰은 그야말로 그 악의 화신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팔고 영원한 생명만을 탐하는 듯 보입니다. 그것이 정치인가요.


2009년 5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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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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