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 크로스로드에서 벌이는 파우스트와 악마와의 경주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앞서 이야기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20억을 석유로 교체하고, 르웰린 모스와 안톤 쉬거를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 안에 하나로 합친 다음, 다시 텍사스에 덩그러니 떨어뜨려 놓자. 이런 초간단 설정에서 <데어 윌 비 블러드> 를 다시 생각했다. 두 영화 모두 2007년에 Paramount Vantage 와 MiraMax 합작으로 나왔다.

다니엘 플레인뷰에는 그 두가지, 그러니까 악마와 인간이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쫓고 쫗기는 추격전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그의 내면에서 일어날 뿐이다. 사실 이것이 더 중요한 레이스다. 이 끝없는 레이스가 인간을 혐오하게 만들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어느 황무지에서 혼자 곡괭이 하나로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사투를 벌이는 다니엘 플레인뷰를 보여준다. 그리고 땅을 향하던 카메라가 멀리 봉우리를 바라볼 즈음, 귀를 쑤시는 듯한 Jonny Greenwood 의 사운드가 페이드인되며 등장한다. <2001: A Space Odyssey> 에서 리게티의 음악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 괴로운 현의 합창에서 이미 영화는 "나, 이런 영화다" 라고 경고하고 나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심히 괴롭힌다. 이 영화의 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전작 <Punch-Drunk Love> 에서 Jon Brion 의 그 괴로왔던 사운드는 상대도 안된다. 훨씬 기분 나쁘다. 참고로 Jonny Greenwood 는 Radiohead 의 기타리스트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석유에 대한 탐욕에서 시작하는 미국형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는 악마를 대하면서 말랑말랑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다니엘 플레인뷰가 석유를 쫓는 과정은 마치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함께 세상을 쏘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쏘다니면서 쾌락을 안겨다 줄 부의 원천인 석유로 인간을 유혹한다. 그리고 이때에만 그는 인간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일단 유혹에 넘어간 인간에게 행복이란 선물을 주는 법은 절대 없다. 잘 알겠지만, 이것이 돈의 자본주의 생리이며, 도박판과 다름없을 주식시장이 돌아가는 원리다. 악마와의 계약서에는 이런 내용이 써 있는 거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와 마찬가지로 파우스트의 설정을 빌리자면, 신이 등장해야 한다. 물론 신을 자처한 인물이 등장한다. 엘라이. <리틀 미스 선샤인> 에서 올리브의 오빠로 나왔던 폴 다노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파우스트> 에서 신이 메피스토에게 내기를 제안하는 것처럼, 엘라이도 다니엘을 찾아와 제안을 한다. "석유가 묻힌 곳을 알려 주겠소. 돈을 내놓으시오" 그런데, 엘라이는 왜 돈이 필요할까?  이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이 이 영화를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엘라이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 인간의 신망을 돈으로 사기 위해 다니엘 플레인뷰과 거래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이 영화가 지닌 다른 점으로 봤다. 악마에게 한 사이비가 찾아와서는 신이 되고 싶으니 거래를 하자고 하다니... 이 상황이 미국식 기독교가 미국식 자본주의와 거래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나만의 과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파우스트가 흑사병 치유능력을 신이 아니라 악마로부터 얻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앞서 말했지만, 다니엘은 인간과 악마가 혼재된 존재다. 계시록으로 무지한 농가 사람들을 현혹하는 엑소시스트 사이비 교주 엘라이는 교회를 지을 돈을 결국 악마에게서 구하려고 하고, 다니엘은 석유를 차지하고자 하는 탐욕으로 신을 자처하는 엘라이에게 무릎을 꿇고 수모를 견뎌낸다. 이 과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제안을 매우 굴욕적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악마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니엘 입장에서 보면 굴욕이었던 그 계약은 깨진다. 그런데 <파우스트> 에서의 계약파기는 인간애의 회복을 의미했던 것에 반해, 여기서의 계약파기는 그 반대를 의미할 뿐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석유을 교환하는 그 계약서는 결국 피로 물든다.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There Will Be Blood..."  그래서 지금 미국은 피로 물들여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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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부 다니엘 플레인뷰에게도 가족이 한명이 생긴다. 석유의 제물이 된 남자의 아들을 양자로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는 한가족"임을 내세우며 석유사업의 찬란한 미래를 떠벌리는 거다. 아들 H.W. 는 그러니까 악마의 양자인 셈인데, 가족의 가치를 내세워 무지한 이들을 현혹하고, 석유가 가져다 줄 미래의 환상을 받아들이도록 동원되는 존재다. 미국에서 가족의 의미란 절대적이다. 공화당의 모든 보수적 논리가 가족주의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들은 듣지 못하게 되자 이내 버려진다. 그리고 돌아온다. 그 아들이 어떤 존재로 성장할 지는 미지수다. 그것은 지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여전히 20억을 가지라고 (석유를 꿈꾸라고) 사람들을 꼬드기며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세계는 피로 물들여지고 있다. 자원이 있고, 노다지가 있는 곳은 예외가 없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다니엘 플레인뷰의 후손이 등장하고, 신을 자처하는 수많은 독재자들이 거래를 제안한다.


아프리카가 피의 대륙이 된 이유는 다이아몬드와 노예 (백인들이 보기에는) 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며, 중동이 피로 물든 것은 석유와 다른 신 (백인들이 보기에는) 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와 석유에 대한 탐욕과 백인의 신이 승리해야 한다는 열망은 함께 결국 세계를 피로 물들이고 말았다. 다른 이유가 없다.

결과적으로 볼 때, 석유가 없으면 살기 어려운 기계의 세상이 되었고, 고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 승리하는 자가 곧 세상의 주인이 된다. 석유로 세상의 주인 행세를 지속하려면 석유를 삼키며 기계는 쉴새없이 돌아가야 한다. 이는 곧 지구를 파괴시키고 인류를 파멸시킴을 의미한다. 그리고 석유가 사라지면 그것과 바꾼 신의 가치도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미국의 자본주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거다.

다니엘 플레인뷰 역할을 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역으로 80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엘라이의 폴 다노도 참 독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니엘은 진짜 독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2008년 3월 20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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