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 (음악), "음을 즐겨라". 음악의 정의가 애당초 이렇다. 음악의 본질은 즐기는 데에 있다. 따라서 즐길 수 없다면 음악일 수 없다. 듣는 사람이건 들려 주는 사람이건 공통의 원칙이다. 고로 즐길 수 없는 연주 노동에 박수치기를 강요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다.

음악은 자신의 연주를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물론 돈벌이 수단은 더욱 아니다. 그 연주가 마음이 아플 때 친구가 되어 주고, 삶이 고단할 때 용기를 주고, 울고 싶을 때 눈물을 흘리게 해 주고, 화가 날 때 미소를 짓게 만들고,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웃어 줄 때 비로소 음악이다.

나는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마에스트로 또는 비르투오소라는 음악가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에 감탄하기를 원할까 아니면 자신의 연주를 즐기기를 원할까, 아니면 권위를 원하나. 비싼 돈을 주고 찾은 조용한 공연장에서 애가 울 때 기꺼이 그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연주를 하는 사람에게 나는 박수를 친다.

만약에 청중을 감탄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마에스트로가 있다면 그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한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자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고강도의 연주 노동을 강요하는 지휘자가 있다면 그 역시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연주인의 연주를 구경하고 '잘 하네' 라며 그 연주력에 감탄하기 위해서 공연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비싼 돈 내고 왜 훌륭한 연주 노동을 구경해야 하지? 그래서 내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그들이 평소에 얼마나 즐겁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냐,다.

누구는 눈물 젖은 빵을 못 먹어 본 이, 예술을 논하지 말라 라고도 이야기한다. 실은 위대한 창작력과 예술가의 꿈은 고용 보장과 고액 연봉이라는 환경에서는 사그러 들 위험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왜 과거의 위대한 고전음악을 연주하며 먹고 사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배고픈 예술가의 창의성을 요구해야 하나, 그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오케스트라의 목표와 작곡가의 꿈은 다르다.

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고난도의 연주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요조건이다. 그것은 연주자가 자신의 연습실에서 홀로 악기와 치열하게 싸우고 이겨 낸 희열과 성취감에서 나오는 본인 만의 즐거움이면 족한거다. 듣고 즐기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그 혼자 만의 즐거움까지 필요치는 않다. 실은 듣는 즐거움은 바로 그 연주하는 즐거움의 복제물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가 나에게 주는 즐거움은 고도의 연주 노동보다는 단원 하나하나가 자신들이 내는 음들의 하모니와 교감을 즐기는 것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연주자 스스로가 자신의 음을 즐기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부자로 태어나지 않은데다가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비정규직 연주자가 한가하게 자신의 음을 즐기며 단원들과 즐겁게 연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요즘은 악기를 연주해서 돈 벌기가 참 어렵다. 돈을 벌기가 어려우니 즐거울 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도 연주의 즐거움을 잊어가고 있는 듯 하다. 솔직히 말하면 연주한다는 것의 즐거움은 극소수에게나 허용된 사치에 부르조아나 즐기며 이미 옛것이 되어 사라진지 오래되기도 했다. 요즘의 가난한 연주자들은 돈이 필요하면 악기를 연주하는 대신 레슨을 한다. 안타깝게도 도구로서 음악을 팔고 있다.

그러니 그 레슨은 열정적이며 즐거울 리 있을까,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음악 학원에서의 레슨이 즐겁다는 이의 말을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어렵사리 오디션을 통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도 언제 짤릴 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연주를 해야 한다면 필시 우리는 그들의 연주 노동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듣는 우리는 감탄은 할지언정 즐겁지는 않다.

ooo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에서 칠레 감독인 안드레스 우드의 <La Buena Vida> 라는 작품이 있었다. '좋은 인생', '즐거운 인생' 정도 되나...

기억은 잘 안나는데 교향악단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마리오라는 클라리넷을 부는 젊은 청년이 등장한다. 오디션을 치루지만 이미 내정된 연주인이 있었고 실력에 상관없이 그는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억울해 한다. 그러나 그는 돈이 궁했던 가난한 연주인이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군악대에 들어간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그는 이 군악대에서 자신의 음을 즐길 수 있을까. 그 연주를 듣는 사람 또한 음을 즐길 수 있을까.

"연주 노동이 곧 음을 즐기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들에게도 연주자의 연주는 그저 노동일 뿐이다. 군악대에서 요구할 때 클라리넷을 부는 마리오의 연주에서 설마 즐거움을 느끼지는 않을테니까.

나는 연주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팔아 돈 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팔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즐겁기 위해 당신들의 음악을 듣는 것이지 '당신 연주 참 잘하더라' 감탄하려고 듣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연주' 그 자체란 노동에 불과하다.

"음악을 연주했더니 너무 즐겁고 행복하더라, 그래야 듣는 사람도 즐겁고 행복해진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이며 나의 음악 철학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중음악으로 먹고 사는 가수와 연주인들 중에서 공연장에서 그들의 열정과 즐거움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들의 노동을 팔고 있다면 그들은 경멸의 대상일 뿐이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자 할 때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꿈을 키워 나갈 때는 즐겁지만 막상 직업 뮤지션이 되고 나서 그것이 노동이 된다는 사실이다. 노동이 즐거우려면? 뭐 다른 것이 있나,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어야지.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어떤 연주도 즐거울 수가 없다.

간단하다. 어떤 도시가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 가지고 고민하지 말도록 해라. 비정규직의 불안한 연주 노동은 전혀 즐겁지 않으니까. 혹시 고난도의 연주노동을 강요하며 비정규직으로만 오케스트라를 채우는 지휘자가 있다면 내 생각에는 그 사람은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다.


2009년 3월 2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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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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