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의 한국음악계를 대표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년 공식해산하면서 한국음악계는 이제 정신 좀 차리고, 뒤를 돌아보며 정리를 할 수 있나 싶었더니, 어느새 H.O.T, 신화, GOD, 핑클, SES, 보아 등등의 기획상품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바야흐로, 기획사와 언론사가 짝짝꿍 되어 음악상품을 쏟아내고 마케팅하는 시대로 급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예쁜 인형들의 댄스와 랩과 약간의 발라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음악들은 잠수를 타게 된다. 그리고 음악적 재능 外적인 재치와 끼를 가지지 못한 뮤지션은 우리 곁에서 영영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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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간 후 그곳에서 대학생이 된 두 친구가 룸메이트로 만나게 됩니다. 음악을 좋아했고, 기타연주를 좋아했던 그들... " 우리 밴드 할까?... " 몇개의 곡을 만들고 데모테입을 만들어 한국을 찾아온 이들은 여기저기 데모를 돌립니다.

1993년 당시 정경화, 정원영, 한충완, 한영애 등의 실력파 뮤지션들의 보금자리였던 송홍섭 스튜디오는 이 두 친구의 곡을 맘에 들어했고 앨범작업에 착수를 합니다. 이 두 친구의 음악 사운드는 그 당시 한국의 대중음악의 것에 비해 아주 많이 세련되어 있었죠.

유앤미 블루의 음반이 세상에 나옵니다. 1994년 첫번째 앨범 Nothing's Good Enough 이 나왔습니다. 1996년 두번째 앨범 Cry... Our Wannabe Nation 이 나왔구요. 당시의 한국음악에 비해 정말 많이 세련된 사운드, 국내에선 보기 힘들었던 수준높은 연주, 다채로운 작곡, 편곡 및 언뜻 보노같다 라는 진한 느낌의 보컬로 이루어진 얼터너티브 성향의 당시로써는 꽤나 충격적으로 진보된 모던 락이었습니다.

10년 전쯤에 Cry... Our Wannabe Nation 을 처음 들었을때 기억이 납니다. Suede 같은 모던락을 하는 밴드가 우리나라에도 있네 하면서 당시로써는 굉장히 세련된 락음악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구요.

그들은 홍대 클럽가를 누볐습니다. 인기몰이를 하던 자우림의 전신 김윤아와 미운오리보다도 인기있는 보기드문 실력파 밴드였죠. 그러나 그게 다였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맞서 신해철의 넥스트가 고군분투하던 이 시절... H.O.T. 라는 아이돌스타에 한국과 TV와 우리의 아이들이 미쳐가던 이 시절 ... 한국은 유앤미 블루를 소화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유앤미 블루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두 음반은 존재감도 없이 사라지죠. 유앤미 블루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그들의 음악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크게 좌절했습니다.

그들에게 연주가 아닌 MR을 틀고 노래만 하라는 요구를 하는 방송사, 그들을 유앤미 블루스라 소개하는 어떤 공연장, 기자들과의 다툼 ... 한국에서는 뮤지션으로서의 품위는 버리라는 주변 선배 ...

유앤미 블루는 1997년 공식 해체합니다.


두번째 음반 Cry... Our Wanna be Nation 은 후에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재발매되지만, 금방 동나버리고 지금은 정말 정말 구하기 어려운 앨범이 되었습니다. 반면, Nothing's Good Enough 재발매작은 아직은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죠.

유앤미 블루의 두 친구 중 방준석은 한국의 대표 영화음악가가 되었습니다. JSA  공동경비구역,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주먹이 운다, 극락도 살인사건 등등... 그리고 많은 락 뮤지션의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있죠. 또 다른 한 친구였던 이승열은 방준석을 지켜보다 조금 뒤늦게 솔로로 음반을 발표하고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뮤지션들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꽤 많답니다...... 뮤지션으로써의 품위를 지키고 사는 사람들....

2007년 7월 1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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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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