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01. 서론

최근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기업 관련 다큐 몇편을 보게 되었다. <Enron: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 (2005)>, <Wal-Mart: The High Cost of Low Price (2005)>, 그리고 <The Corporation (2006)> 등이고 나온 지는 좀 됬다. 기회가 되면 언제 이런 다큐 상영회같은 거 한번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거대 기업에 대한 망상과 허상 그리고 그들을 광고해주고 먹고 사는 미디어의 농간에 빠져 사는지 알아야 한다.

<월마트>는 월마트가 저임금과 가격덤핑 및 각종 횡포로 지역주민과 지역경제를 어떻게 초토화시키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앙드레 쉬프렝의 <열정의 편집>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미국의 출판사를 접수했던 과정이 대기업 제빵 브랜드가 동네 빵집을 접수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의료보험 민영화도 아마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엔론>은 에너지 회사였던 엔론이 갖가지 혁신적인 금융 파생상품 (말이 좋아 혁신이지 반은 사기성 상품같아 보임) 을 개발하고 각광받는 금융회사로 급성장하는 과정과, 미디어에는 찬란한 미래를 떠들면서 뒤로는 분식회계, 유령회사, 주식사기로 한몫 단단히 챙기는 탐욕의 화신들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사기를 치기 위해 정부에 각종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그런 과정도 보여준다. <엔론>과 <보일러 룸> 또는 <월 스트리트> 를 함께 보면 MB 가 왜 BBK 실패하고 나서 규제완화 운운하는지 이해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엔론 파산의 실체 관련한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의외로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기업>은 좀더 포괄적으로 거대 기업의 속성을 다루는 다큐인데, 기업을 예전에 종교나 왕이 차지했던 그 권력집단의 새로운 핵심으로 규정하고, 그 본성에 해당하는 탐욕과 민주주의와 미디어에의 그 영향력를 분석하고,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윤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다큐의 마지막 장면은 마이클 무어의 장면으로 끝나는데 그는 카메라를 향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든 영화가 어디서 상영되는지 생각해보라. 대기업 소유의 배급사 및 방송사를 통해서 배급되고 방영된다. 그들은 왜 자신들을 비난하고 망치려는 영상물을 상영할까? 그들은 우리의 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한 말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수맣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싶어하니까 그것을 배급해서 돈을 번다. 덕분에 나는 내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다. 나는 자본주의의 놀라운 결함 덕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데, 그 결함은 바로 탐욕이다.

부자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자신을 잡아 먹을 것도 판다. 그리고 그들은 또 이렇게 믿는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어떠한 행동도 하지는 못할 거라고...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우리를 속이는데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나약하고 순응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난 그 반대라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내 영화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 뭔가를 할거라고 믿는다.

02. 본론 1


그제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 Sicko> 를 극장에서 보았는데, 의료보험 민영화 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고려하면 꽤 무서운 경고성 메세지임에도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는지 꽤나 한산하다.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한 경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그야말로 미디어의 꼴통스러움 때문으로 나는 그 탓을 돌리려 한다.



이 영화는 미국의 민영 의료보험이라는 것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미국인들을 보여주고, 이에 반해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의료 혜택만큼은 제대로 받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의 사람들을 나란히 편집해서 그 비교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의료 혜택 관점에서 보면 영국은 헤븐이며, 프랑스는 파라다이스다. 이건 민주주의의 가치와도 통한다.

그리고 911 당시 구조대원으로 활동하며 얻은 질병조차도 구조대원임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보험사로부터 외면받은 구조대원들을 이끌고 마이클 무어는 쿠바로 가서 아주 간단히 치료를 받도록 한다. 미국에서는 120달러 하던 약값을 그저 5센트만 달라고 하는 약사 앞에서 어이없어 하며 울먹이는 그 아주머니의 눈물에는 허무함과 미국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한국도 지금 비교적 나쁘지 않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마이클 무어가 캐나다의 한 병원으로 가서 미국에서는 손가락 봉합 수술비가 "약지 1만2천달러, 중지 6만달러" 라고 손가락 수술 경험자에게 이야기를 하자, "도대체 무슨 소리지?" 하며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은 극장을 나온 후에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가운데 손가락 하나에 6만불이라고?

영화 중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민영 의료보험사의 수익인 보험료는 웬만해서는 치료비로 지불되어서는 안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치료비 지불은 Medical Loss, 그러니까 손실이 되는 것이며, 이 손실이 적어야 이익이 많이 발생하는 셈이다. 손실을 많이 줄이는 직원, 그러니까 지불 거절을 많이 하는 직원은 보너스를 받는다. 민간 보험회사는 쉽게 말해 이렇게 굴러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계 민영보험사들이 한달에 18,000원짜리 만병통치 보험상품을 선전하여 고객을 현혹하지만, 정작 국민건강보험이 민영화가 되고 나면 보험료는 바로 상승하고 보험사와 병원과 제약사의 짝짝꿍이 바로 본격화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병원은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되버린다는 말이고, 주식상장도 하여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처럼 돈 없고 아픈 사람은 병원과 보험사 입장에서는 그냥 LOSS 요인 덩어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의료제도가 엉망임을 분개해 하며 영국도 비슷할 거야 생각하고 영국과 프랑스도 찾아가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의료제도는 간단히 말해 "모든 국민은 무료로 병원 치료를 받는다" 였다.

영국의 의료 복지를 본 마이클 무어는 한 정치인에게 찾아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질문을 한다. 그 정치인은 민주주의의 기초에서 답을 찾았다. "원래 모든 권리는 부유층의 것이었지만, 민주화를 통해 중하층민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되고, 자연스럽게 세금으로 만들어진 의료보험을 통한 의료복지가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를 불문하고 가능해졌다. 대처수상조차도 건강보험을 지키려 했고, 민영화하려고 한다면 이 나라에는 혁명이 일어날 거다..." 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무어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보통의 직장인이 빚을 지면 시스템이 이득을 보는 것 같다. 어떤가?", 정치인은 대답한다, "빚이 생기면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하게 된다. 절망한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돈 가진 자들은 국민들을 계속 절망하게 해야한다."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 두가지! 공포 (Frighten) 와 사기저하 (Demoralize) 다. Educated, Healthy, Confident 한 국민은 통제하기 어렵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배워서도 안되고, 건강해도 안되고, 자신감 있어서도 안된다." 비싼 사교육시장 만들고, 의료보험 민영화시키고, 온갖 융자 상품 만들고... 우리나라는 이미 한참을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 결국 가난한 이들은 포기한 채 순응하며 투표도 안하고 소박하게 살아 갈 생각을 한다. 설마 이거 남 이야기로 생각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이걸 뒤집는 건 투표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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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간간히 튀어 나오는 마이클 무어의 유머 덕에 가끔씩 웃곤 하지만, 실은 내내 어이가 없었고, 한숨만 나왔고, 캐나다, 영국, 프랑스, 심지어 쿠바도 한없이 부럽기만 했고, 그리고 한국을 생각하며 답답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영화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는 말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그 오랜 투쟁을 통해 획득한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것도 여전히 그렇게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마이클 무어는 프랑스에 가서는 거기서 사는 미국인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 프랑스 정부는 국민을 두려워 한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 한다." 이 말은 두고두고 곱씹을 말이다.

여기에 한마디를 더 추가하자면, <The Corporation> 과 <Enron> 에도 나오는 이야기로써 <식코> 에서도 나오는데, "기업을 두려워 하는 정부"에 관한 이야기다. 엔론사는 정부를 구워 삶아 규제를 완화시켜 주식 사기를 쳐왔다. 제약회사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로비집단이 득실한데, 각종 특허권 관련 규제를 풀어왔다. 제약회사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들, 그리고 그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법안을 만들어 놓고는 은퇴하여 그 기업의 대표로 가는 식의 커넥션... 이건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MB 가 떠드는 규제완화가 바로 이런 거다.


그럼에도 병원과 제약회사도 민영기업이 하면 잘할거다 라고 믿는 사람들은 기업의 윤리라는 것을 믿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돈에 대한 탐욕 앞에서는 사람의 윤리라는 것도 심하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이 그 앞에서 질끈 눈을 감아 버리게 되어 있다는 거다.

이것이 공공의 서비스에 해당하는 분야를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아주 당연한 그리고 기초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며, 이것이 잘 되어 있느냐 아니냐는 "복지"수준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의 척도가 되기도 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식코>의 엔드 크레딧을 보면 커트 보네거트에 감사한다라는 자막이 있는데, 아울러 커트 보네거트의 많은 책들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블로그에 감상평이 하나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03. 본론 2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고, 정부가 기업을 두려워 하는 나라에서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과연 뭘까? 그리고 그 나라 꼴은 도대체 뭐가 될까? 물론 이 지구상에 그런 나라는 많다. 한국이 그토록 되고 싶어 안달 난, 그리고 전 서구에서 유일하게 전국민 대상의 의료보험제도가 없다는 나라인 미국은 그 대표선수다. 한국은 지금 이 나라에 인수합병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 중이다.

마이클 무어는 탐욕의 실체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으로 감추고 있는 그 나라의 그 사나운 꼴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것 좀 보세요. 알고 보니 이게 이렇더군요..." 라고 하기 위해 여기저기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사람이라는 거다. <로저 앤 미>, <볼링 포 콜럼바인>, <빅 원>, <화씨 911>, 그리고 <식코> 등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돈을 버는 참 별난 사람이기도 하다. 본인의 말대로 자본주의의 헛점을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이클 무어가 다큐멘터리 감독치고는 과장과 미화를 즐기며 가끔은 객관성이 살짝 떨어지는 듯한 연출을 하지만 주류 미디어들의 농간과 위선에 비하면 이건 애교 수준이다. 어쩌면 세상에 이런 감독들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식코> 를 관심있게 보았다면, 먼저 나온 영화이긴 하지만 닉 카사베츠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의 <존 큐 John Q> (2005) 라는 영화를 봐도 괜찮을 듯 싶다. 이 영화는 간단히 말해 <식코> 에 등장하는 병원과 의료보험사의 거절로 결국 어린 딸을 잃은 한 어머니의 경우를 상업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전반부는 주인공의 어린 아들이 심장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왜 보험의 혜택을 못받는지 분개해하며 혜택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HMO 와 PPO 라는 제도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이며, 후반부는 방법이 없어 보이자 병원 사람 및 환자들을 인질로 잡고 아들의 수술을 시켜주면 놓아주겠다며 벌이는 인질극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기승전결 과정에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의 모순과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가" 에 관한 매뉴얼 같은 내용들이 계속 담겨 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돈부터 먼저 내놓으라는 것이 현재 미국의 병원과 보험사의 철저한 기업형 이윤추구형 사고 방식이다. 이거 꼭 배울 필요도 없고 따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러한 방식은 돈이 없는 이들에게는 사형선고이지만, 병원과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실을 막았다는 안도의 한숨이기도 하다. <식코>와 마찬가지로 영화적 완성도보다는 그 외치는 메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04. 결론


소방서가 민영화되었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내 집에 불이 나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냥 지나칠 거다. 그들의 고객이 아니므로... 경찰서가 민영화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집에 강도가 들어 내가 칼에 찔렸는데도, 경찰은 보험에 가입하셨는지부터 묻고 아니라고 하면 오지 않는다. 그들의 고객이 아니므로... 의료서비스? 이것이 과연 민영화할 만한 서비스인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자. 그것이 정말 경찰서, 소방서, 도서관의 서비스와 그렇게 많이 달라야 하는 것인지...

민영화란 사유화를 말한다. 즉 주인이 생긴다는 거다. 그리고 그 어떤 주인도 돈버는 일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돈 안 쓰는 것이 돈 버는 것이므로, 그러니 그들이 누구든지 그들은 가능한 돈 안 쓰려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 한다고 했고,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한다고 했다. 그 어떤 경우이건 정부는 똑똑한 국민은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똑똑한 것? 그런데 그게 사실은 별거 아니다. 소신있게 투표 정도만 할 희망과 용기만 있어도 정부가 두려워 할만한 국민의 지성은 실현된다.

Don't Be Shy. Just Let Your Feelings Roll On By.
Don't Wear Fear, Or Nobody Will Know You're There.
Just Lift Your Head, And Let Your Feelings Out Instead...
                                                                                Cat Stevens <Don't Be Shy> 일부

2008년 4월 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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