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노래의 완성은 감정표현


오디션 프로그램의 흔한 장면. "노래에 감정이 없어. 어쩌고저쩌고..." 심사위원의 평에 지원자는 눈물을 떨구고 만다.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이 감정 표현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무엇일까. 심사위원들은 가수가 노래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얼마나 빠져드는가를 본다. 음정, 리듬, 발성, 고음, 호흡, 음색 등 테크닉이 좋아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탈락. 만약에 세상의 모든 테크닉으로 중무장한 알파고가 오디션에 참가하여 노래를 한다면 알파고는 감정 처리를 어떻게 할까.


완벽한 테크닉에는 감탄을 그리고 진심을 다한 감정 표현에는 감동을 하게 된다. 결국 노래의 완성은 감정 표현이다.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심사위원도 지원자도 그리고 청중도. 청중은 내가 감동할 수 있도록 가수가 감정 표현을 잘 해주기를 원한다. 심지어 테크닉은 좀 부족하더라도 감정이 잘 실려 있다면 청중은 기꺼이 마음을 움직인다. 알파고의 노래는 감탄은 해도 감동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알파고는 감정이 없는 그래서 나와 공감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슈퍼컴퓨터이니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고전음악은? 고전음악도 연주의 완성은 감정 표현이 아닐까. 엄격한 형식을 지킨 고전주의에 반해 자유롭게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 낭만주의 특징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테크닉에는 감탄을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수많은 마에스트로와 비르투오소의 명연에 지금까지 우리는 감탄만 한 것인지 아니면 감동을 한 것인지 궁금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대중가요 오디션 현장에서도 심사위원은 테크닉이 완벽해도 감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원자를 다그치는데 고전음악은 어떨까,라는...


다음 이야기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하여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3부 형식 : ABA form


장조와 단조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소나타나 교향곡 같은 작품들은 장단조를 오가면서 변화를 주기 때문에 감상할 때 그 조성의 변화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장조와 단조 간에 멋진 조바꿈을 사용한 <아기 염소>라는 동요를 예로 들었다. 그 악보를 다시 한번 보자.



8마디로 이루어진 A가 앞뒤로 사용되었고 중간에 8마디로 이루어진 B가 끼어 있다. 이러한 ABA 형식을 3부 형식(ternary form) 또는 세도막 형식이라고 한다. 변화를 주었다가 다시 반복한다는 서양음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형식이기도 하다. 이 3부 형식 ABA를 기억해두자. 대중음악에서는 이 기본 형식을 응용하여 AABA 또는 그 확장형인 AABABA 형식을 많이 사용한다. 주디 갈란드의 <Over the Rainbow>나 더 비틀즈의 <Yesterday>등 이 매거진을 통해 소개한 대중음악들은 대부분 AABA의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아기 염소>는 가장 기본적인 ABA 3부 형식을 따르고 있다. 게다가 A는 장조 B는 단조 구성이어서 매우 극적이기까지 하다. A는 장조에 맞게 밝고 유쾌하며 B는 단조에 맞게 어둡고 슬프다. 가사 또한 이 곡의 조성 변화에 알맞게 쓰여 있다. 두 번째 A는 B라는 변화에 의한 긴장감 이후 반복되는 A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기능을 한다. 첫 번째 A가 아이디어의 제안 또는 문제 제기였다면 B는 반론 또는 위기나 갈등이 되고 두 번째 A는 결론 또는 갈등의 해소를 통한 긴장 완화이니 ABA는 하나의 3막 구조 이야기인 셈이다.


3막 구조의 이야기


논리학 기초가 되는 3단 논법을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story)는 3막 구조일 때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발단-전개-정리, 제시-전개-해결 등. 지금도 시나리오의 핵심은 3막 구조로 규정한다. 시작-중간-끝. 1막은 시대와 장소 및 인물의 설정 제시, 2막은 이들이 벌이는 사건과 갈등, 그리고 3막은 갈등 해결과 상황 종결. 이것은 음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음악에서 3부 형식은 가장 기본이 된다. 물론 꼭 ABA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AAB, ABC 같은 다른 3부 형식의 곡들도 있다. 일단 지금은 패스.



이제부터 하나의 음악은 3막 구조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자. 1막에서 등장인물과 배경이 소개되어야 한다. <아기 염소>의 1막에서는 푸른 언덕에서 풀을 뜯는 아기 염소들로 설정했다. 2막에서 사건과 갈등이 나타나야 한다. 비가 내리고 아기 염소들이 엄마를 찾는다. 3막은 갈등이 해결되어야 한다. 해가 다시 뜨고 파란 하늘이 다시 나타났다. 1막에 사용된 장조의 선율은 파란 하늘과 밝게 웃는 아기 염소를, 2막에 사용된 단조의 선율은 비와 우는 아기 염소를, 3막은 1막에 사용한 선율을 반복 사용하여 다시 파란 하늘과 신나게 노는 아기 염소를 보여준다.


아이가 오디션에서 이 노래를 부를 거라고 한다.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음정, 리듬, 발성, 호흡 등 테크닉적인 부분을 마스터한 후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음악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것을 노래하는 가수는 결국 노래로 연기를 하는 셈이니까. 청중이 A 부분을 들을 때에는 신나는 감정이 들고 B 부분을 들을 때에는 슬픈 감정이 들 수 있도록. 그런데 노래가 아닌 피아노로 오디션을 본다고 하면 어떻게 연주를 해야 할까. 마찬가지이겠지. 연주 테크닉을 마스터한 후 그 연주에 감정을 담아야 할 것 같다. A부분은 신나는, B부분은 슬픈 감정이 들도록.


5막 구조로의 확장 : ABACA


이야기는 3막이 기본이기는 하지만 때때로 인물과 사건의 진행에 따라 4막이나 5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같은 방식으로. 발단은 인물과 사건의 배경, 전개는 사건의 진행과 인물의 갈등, 위기는 갈등과 대립의 심화, 절정은 갈등과 대립의 폭발, 결말은 갈등의 해결. 2막을 다시 세분화하여 3단계로 나눈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음악에서도 5막 구조의 이야기를 담는 형식은 있다.


기본 3부 형식 ABA을 이렇게 확장하면 된다. A-B-A-C-A. B라는 변화에 긴장하다가 다시 A가 등장하여 해결된 줄 알았는데 새로운 C가 등장함으로 큰 위기감이 생긴다. 필요한 것은 A. A가 다시 반복되어야 긴장은 해소되고 위기는 종결된다. 이러한 ABACA 형식은 론도 형식(Rondo Form)이라고 부른다. 론도란 "돈다"라는 의미로 A가 반복적으로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A를 3번 사용하는 5부 형식이 일반적. 보통 고전주의 소나타 마지막 악장에 사용된다.


ABACA의 5부 론도 형식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피아노 곡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음악이다. 베토벤의 <Für Elise>. 이 3분 길이의 피아노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는 실은 5막 구조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곡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곡은 아이들이 명곡집 연습 입문곡으로 아르페지오 테크닉만을 연습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슬픈 곡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받아쓰기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위하여


연주를 완성하려면 감정 표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감정 표현을 하려면 곡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곡에 담긴 이야기란 작곡가로 하여금 그 곡을 만들게 한 배경에 관한 것이다. 고전음악을 다루는 책이나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작곡가의 일생과 어떤 곡의 작곡 배경을 알려주는 것들이다. 왜일까? 그 지식들은 음악을 듣기 위한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 표현과 관련되어. 연주자나 감상자 모두에게.


5부 론도 형식의 <엘리제를 위하여>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베토벤 사후 40년 만에 발견된 이 곡의 주인공 엘리제가 도대체 누구인지에 관해 사람들을 그토록 궁금하게 했던 그리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체르니 100번을 연습하기에 이르면 누구나 명곡 레퍼토리 첫 번째로 연습하게 되는 그 유명하디 유명한 이 피아노 명곡의 구조를 대략적으로 보자. 이렇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습해보았다면 머리 속에서도 위 악보에 적힌 멜로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총 105마디로 되어 있고 B 부분이 15마디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체로 20여 개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A 부분은 a단조와 C장조가 번갈아 나타나는 주제 선율에 해당한다. A 부분 20여 마디만 따로 떼어 보아도 a-b-a' 3부 형식이다. B 부분은 F장조, a단조, C장조로 조바꿈이 나타나면서 A 부분보다 비교적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C 부분은 또 다른 새로운 선율로 한 음만 계속 연주하는 오스티나토, 빠른 아르페지오, 불협화음, 반음계 등이 사용되면서 숨 막히는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지금까지 우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솔로를 위한 바가텔 a단조 WoO 59" 일명 <엘리제를 위하여>의 형식과 테크닉적인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감정의 표현을 통한 연주의 완성이다. 청중은 훌륭한 연주에 대한 감탄을 넘어 연주를 통해 베토벤이 그토록 원했던 사랑과 좌절에 대해 공감하여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여러분은 이 곡이 이토록 아름답고 슬픈 음악이었나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베토벤의 삶과 그가 왜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하였는지 그리고 이 5부 형식의 짧은 피아노 곡에 그의 사랑과 좌절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다시 이 곡을 들어 볼 것이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음악, 아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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