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면 모든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죽고 싶을 만큼 내일 하루를 더 사는 것조차 너무 버거울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내일 하루를 더 버틸 수 있도록 살아야 할 의지를 주는 그 무엇인가가 당신에게는 존재하는가? 사랑하는 가족, 아직 이루지 못한 꿈... 여러분은 반드시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 어떠한 불행과 불운이 나에게 찾아와도 나를 버티게 할 수 있는 그 무엇 말이다. 그리고 그 무엇의 힘으로 불행과 불운을 견뎌내고 그 무엇이 내준 숙제를 기어이 이루어낸 사람들을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베토벤에게는 음악이 그것이었다.


베토벤 이야기 (1770~1827)


하이겐슈타트 유언장


1802년 32세의 베토벤은 동생들에게 유서를 보낸다.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언장. 25세부터 시작되어 점점 악화되기만 하는 귓병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운명의 끈을 붙잡고 온 세계를 음악에 담아내겠다는 편지를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다. 음악은 베토벤이 삶을 버리지 않도록 인도하였고 그는 음악에 그의 모든 것을 다 쏟았다. 이후 1814년까지 12년 동안 3번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5번 교향곡, 6번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5번, 에그몬트 서곡 등 마스터피스들이 만들어진다. 5번 교향곡에 <운명>이라는 부제가 그냥 붙은 것이 아니다.


연주자에서 작곡가로


들리지 않음은 베토벤의 음악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연주자에서 작곡가로. 청년 베토벤은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고 모차르트의 연주는 그를 능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력의 상실은 피아노 연주 수준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1819년에는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노트로 대화해야 했다. 이제는 작곡만이 전부였다. 1827년까지 피아노 소나타 30번, 31번, 32번, 장엄미사, 9번 교향곡 <합창>, 현악 4중주 12~16번 등 극도의 성찰과 관념 세계가 반영된 그야말로 대작들이 만들어진다.


<Copying Beethoven>의 한 장면 : 숲에서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베토벤


난 사람보다 나무가 좋아


유년 시절은 불행했다. 가난했다. 아버지는 베토벤을 모차르트 같은 영재로 키우려 초등학교도 중퇴시켰다. 가혹했다. 그런데 유년시절의 못배움은 청년 베토벤을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게 만들었다. 세계를 음악에 담기 위해. 친구도 별로 없이 혼자 숲에서 놀기를 좋아했고 나무와 대화를 나누었다 "난 사람보다 나무가 좋아" 1802년 유서를 썼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8년 6번 교향곡이 완성되었고 베토벤은 직접 <전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언젠가 만일 <전원>을 듣게 된다면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려 숲에 달려가는 어린 베토벤을 떠올려보라. <전원>은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늘 이별과 좌절의 연속이던 사랑


베토벤은 늘 결혼을 원했지만 한 번도 결혼하지 못했다. 불행했던 유년 시절로 따뜻한 가정과 안식처가 절실했음에도. 그가 사랑한 여인들은 대부분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자유와 평등을 원하지 않았고 신분의 벽은 넘을 수 없었다. 피아노 소나타 27번 <월광>을 헌정한 주치아르디 백작부인, 결국 실연당하고만 <엘리제를 위하여>의 가장 유력한 주인공 테레제 말파티, 몇몇 불멸의 연인들로 추정되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사랑은 이별과 좌절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일까 <월광>이나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사랑의 아픔이 강하게 느껴진다.


<Immortal Beloved>의 한 장면: <월광>을 연주하는 베토벤


영웅을 기다리며


베토벤은 일생동안 영웅을 기다렸다. 신분의 차이로 좌절된 사랑 때문일까. 불행했던 유년 시절 때문이었을까. 그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시민의 정치 참여를 원했고 근본적인 인간애를 갈구했다. 1790년대만 해도 귀족들의 고급 놀이였던 음악은 시민 사회로 퍼져나갔고 1789년에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절대 왕정이 무너지던 그때였다.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고 보편타당한 가치를 실현해줄 수 있는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1804년 3번 교향곡 <영웅>이 만들어졌고 1801년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 1810년 <에그먼트 서곡> 등이 만들어졌다.


인간 승리의 화신


청력 상실을 극복하며 삶과 죽음을 통합한 인간 승리의 화신, 그러면서 평생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영웅을 기다렸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준 자연의 위대함에 감사했고, 성악이 비해 열등했던 기악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따로 놀던 성악과 기악을 결합하고, 고전주의 형식을 완성하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여 본격적인 낭만주의를 열었고, 소나타와 교향곡의 신기원을 이룩한, 최초로 음악을 직업으로 먹고 산 음악가. 그리고 위대한 음악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 그리고 연인에 관해 다루고 있는 영화 두 편이 있다. <카핑 베토벤>과 <불멸의 연인>. 전자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초연을 다루고 있으며 후자는 베토벤 사후 발견된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 다 완성도가 높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베토벤이 이렇게 살았구나 그의 삶을 엿보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두 명의 연기파 배우 에드 해리스의 베토벤이냐 게리 올드만의 베토벤이냐도 한 번 관심 있게 보아도 좋겠다.


다시 <엘리제를 위하여>


5부 형식과 감정 표현


베토벤의 일생에 대해 이토록 거창하게 이야기를 한 이유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다시 한번 듣기 위해서이다. 이전 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음악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테크닉이 좋아도 감정 없는 노래는 감탄은 할지언정 감동은 없다고 하면서 노래의 완성은 감정의 표현이라고 했다. 고전음악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3막 구조가 이상적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처럼 음악도 ABA라는 3부 형식이 가장 기본이 된다고 했다. B는 첫 번째 A에 대비되는 대조와 변화를, 두 번째 A는 반복을 통한 긴장 해소와 안정감을 준다.


ABA 3부 형식을 ABACA 5부 형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론도 형식. 이렇게 하면 보다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B 말고도 새로운 선율 C를 더 사용해서 말이다. 그리고 론도 형식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곡이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이며 이 곡의 구조를 어떻게 5부로 구분할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이 도식화했었다.



그런데 이 악보는 선율, 화성, 리듬만 표기되어 있고 연주 방법이 없다. 점점 느리게(Ritardando), 본디 빠르기로(A tempo), 강하게(f), 약하게(p), 매우 강하게(ff), 매우 약하게(pp), 점점 세게(Crescendo), 점점 약하게(Decrescendo), 페달 사용(Ped & *), 레가토, 스타카토, 이음줄 등. 속도 조절(tempo), 강약 조절(dynamics) 및 음의 연결(articulation) 등의 기호는 단순한 선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라는 것으로 이 글 끝에 올린 영상에는 표기되어 있다. 감정의 기본적인 표현법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ABACA 5부 론도 형식이라고 했는데 5부 형식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연주는 물론 감상할 때에도 이 곡을 5개의 부분으로 나누라는 의미이다.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전체는 부분의 모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호흡에 불러야 하는 노래가 아니며 일필휘지 한 번의 붓질에 써내려 가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분의 또 부분으로 구분하다 보면 최소 단위인 마디까지 내려온다. 그래서 모든 음악은 결국 마디마디의 연구에서 시작한다.


짧지만 애절한 5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


전체 연주 길이는 3분 정도로 매우 짧은 곡에 해당한다. 그러나 마음을 담기에는 충분하다. 첫 번째 A는 약간의 긴장감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주제 선율을 제시한다. 도돌이표를 사용하여 같은 선율을 여러 번 반복하는데 그만큼 애절하다. 이어서 함께 해서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는 듯 분위기를 바꾸는 B가 등장한다. 같은 선율임에도 그리움보다는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한 두 번째 주제 선율 A에 이어 긴장감과 분노가 극에 달하는 C가 등장한다. C는 이 5부 이야기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 부분은 단 한음도 놓치면 안 된다.


한 음만 때리는 왼손의 오스티나토와 오른손 불협음정과 오르락내리락하는 화음의 진행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함, 즉 분노 상태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77~78마디에 약하게 연주되는 화음 부분에서 분노는 좌절로 바뀐다. 그리고 이어지는 셋잇단음표 아르페지오와 상승하다가 미끄러지듯 하향하는 반음계... 이제 연인을 잊어야 한다는 체념 같다. 그리고 같은 선율이지만 이제는 쓸쓸하게만 들리는 세 번째 주제 선율 A로 마무리로 된다. A가 3번 나오지만 모두 같은 A가 아니다. 선율은 같지만 느낌은 다르다. 그리움, 외로움, 쓸쓸함으로.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종합하여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다.



주제 선율 A는 같은 선율이지만 그리움,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으로 그 색이 점점 옅어지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지금까지 쓴 이야기는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음악을 만들 때나 또는 연주할 때 그리고 감상을 할 때 이런 느낌은 아닐까, 라는 마음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느낌과 감정으로 듣고 연주하면 된다.


베토벤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전 글 말미에 <엘리제를 위하여>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라고 했다. 위에서 정리한 베토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면 이 곡이 왜 가장 슬픈 이야기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파헬벨 캐논에 실린 사랑과 이별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베토벤이 신분과 나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어쩌면 일방의 나 홀로 사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며 잊기 위해 만든 곡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새벽을 기다리며 지새운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뜨고 아름답지만 내 맘 속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라는 김광석의 애절한 노래처럼 베토벤은 <엘리제를 위하여>를 만들고 너에게 다가갈 수 없어 답답한 나의 마음과 함께 하며 즐거웠던 시간의 회상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담아 결혼하는 그녀에게 선물로 주고 잊으려 한 것은 아니었을지.


이제 다시 ABACA  5부 론도 형식 그리고 5개의 이야기 <엘리제를 위하여>를 다시 들어 볼 것이다. 이전과 같이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왜 이 곡이 가장 유명한 피아노 명곡이 아니라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인지 들어보기를 바란다. 악보에 ABACA 각 부분을 표기하였다.

   



연주의 완성은 감정 표현이다. 훌륭한 연주자들이 다양한 표현 기법으로 자신의 느낌을 표출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절로 그 느낌이 청중에 온전히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연주자는 속도와 강약의 조절과 아티큘레이션 등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읽어내지 못하면 연주자의 느낌이 전달될 리 없다. 훌륭한 연주에 대한 감탄을 넘어 감동을 받으려면 청중도 감정 표현을 읽어낼 수 있는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고 작곡가의 삶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곡을 그저 벨소리가 아닌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들을 수 있다면 단언컨대 당신의 삶은 훨씬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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