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 토마스 불핀치는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썼고 그보다 70 전인 1787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제국 이야기를 썼다. 이후 그리스·로마 신화와 로마 제국 이야기는 세계에서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받고 있으며 작품들을 토대로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매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로마로 불러 들이는데 단단히 하고 있다. 스페인 계단이 보고 싶어 로마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를 로마로 부른 것은 실은 신화 그리고 제국의 이야기를 듣고 읽으면서 상상한 로마의 이미지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바티칸을 제외한다면.


웹툰으로 그려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 


우리가 로마에 것도 고대 로마 때문이겠지. 스페인 계단 보려고 것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 2,000 신화와 제국의 흔적을 보기 위해 뜨거운 태양을 피하지도 못하고 걸어야 했던 우리는 11 20분에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입장했다. 로마인의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의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행정, 종교의 중심지였고, 라틴어로 쓰면 Forum Romanum 이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회의 방식인 포럼의 어원이 되었다. 그런데 유적지 안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 태양을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모자라도 쓰지, 완전히 익을 같은데. 괜찮아, 정도 쯤이야, 하하하, 헤헤헤, 헉헉헉.  


포로 로마노는 미리 예습하고 가지 않으면 돌덩이 구경에 그칠 있다 


<로마의 휴일>보다 <글래디에이터> 사람들에게는 돌덩어리만 남아 폐허가 포로 로마노와 벽은 무너지고 설명을 듣지 않으면 뭐하던 곳인지 알기 힘들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야말로 진정한 로마의 볼거리라고 있다. , 여기가 2,000 제국을 세우고 세계를 지배하며 유럽의 기초를 세운 고대 로마 제국의 중심이란 말이지. 농업의 사투르누스 신전,  불의 여신 베스타 신전,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 칼에 찔리며 "부르투스 너마저" 외친 쿠리아 율리아,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해 만든 세베루스의 개선문, 기독교의 시작 베드로가 갇혔던 마메르티노 감옥, 부유층이 살던 팔라티노 언덕 등등,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2천년 이곳에서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나라의 주권은 왕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권력의 사적 독점을 막고 공적 사용을 위한 정치 체제로 공화정을 시작했던 나라가 고대 로마. 하지만 기원전 44 카이사르가 로마 제국의 사실상 황제가 되면서 로마의 민주주의는 사라져야 했고 제국은 번영을 멈추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은 서기 180년의 로마로 돌아가 가공의 인물 막시무스까지 등장시키면서 왕정에서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갔어야 했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열망을 담아 <글래디에이터> 만든 것이다.


왕이 되고 싶은 남자와 공화정으로 바꾸려는 , 영화 <글래디에이터> 장면


퀸투스, 부하들을 풀어주게. 그라쿠스 의원은 재신임될걸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소원이었고 우리가 꾸어왔던 로마의 꿈이 실현될거야막시무스가 콜로세움에서 코모두스의 칼에 최후를 맞으며 남긴 대사. 결코 잊을 없는 장면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아들 코모두스가 아닌 막시무스 장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라의 정치 체제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돌리라고 부분은 허구적 설정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코모두스가 왕이 되고 폭군이 된다) 그럼에도 리들리 스콧은 가상의 막시무스를 공화정의 대변인으로 내세워 로마의 공화정을 받아들인 세계 최강의 미국이라는 제국에 이런 메세지를 던진 것이다.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가라,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라고.  


멀리 막시무스가 최후를 맞은 콜로세움이 보인다 


점점 강렬해지기만 하는 태양에 우리는 지칠대로 지쳐갔다. 저기봐, 저기 올라가서 이곳을 보면 멋질 같은데. 아이고 사람아, 션을 , 거길 어떻게 올라가. 아내와 션은 모처럼 차지한 나무 그늘을 양보할 없다며 혼자 올라 가라고 했다. 생각보다 한참을 올라갔다. 혼자 오길 다행이네. 눈에 들어오는 포로 로마노를 열심히 찍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으로 보인다고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오래된 돌덩이였지만 멀리서 내려다보니 고대 로마의 도시가 보였다. 그렇게 도시였음을 확인하고 포로 로마노를 나오던 눈에 출구 카페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는 빨간 수박. 와아아, 수박이다. 션의 비명. 핫도그 하나, 맥주, 커피, 그리고 수박까지 먹을 있는 시원한 것은 먹은 같다. 쉬지도 못하고 풀타임으로 직사광선을 맞았다고, 어떻게 맥주를 마시지 않을 있겠어.  


포로 로마노를 나오기 달콤한 휴식 


포로 로마노에서 1시간 40분이나 있었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말이야. 1시가 지나면서 거리는 뜨거워져 있었다. 5만명이 들어가 서커스, 연극, 공연, 스포츠, 검투사들끼리 또는 검투사와 맹수의 대결 등을 관람했던, 지금으로 치면 잠실 주경기장에 해당하는 콜로세움은 사람들로 붐볐다. 포로 로마노에서 티켓을 받아놓기를 잘했어. 그럼에도 입장 줄은 길었고 10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입장. 웅장한 경기장에서 코모두스에게 가족을 잃고 노예가 되어 검투사로 싸워야 했던 막시무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노예가 되어 이곳에서 싸우고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수많은 검투사들을 떠올려보았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며 상대방을 죽이라는 로마 시민들의 환호. 하지만 살인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을 죽이지 못한 검투사들도 많았다고 하니까.  


뜨거운 태양 아래 콜로세움 앞에서 절규하는  


<글래디에이터> 영화적 상상으로 보면 콜로세움은 전제 군주제에서 벗어나 다시 공화정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민주주의의 성지가 되는 셈이다. 물론 실제는 아니지만. 멋있는 건물이다. 중간중간 실내에서 쉬면서 바위 덩어리 원형 건물을 바퀴 돌고 나온 시간은 2 30. 바로 옆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옆을 지나 다시 베네치아 광장으로 향했다. 이게 개선문이구나.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로마 통일을 기념해 315 세워진 개선문을 로마를 정복한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가려고 했었다. 그의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으니까. 그런데 실패하자 대신 문을 본따서 파리의 개선문을 만들었다나 뭐래나. 하하하 이게 문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걸 어떻게 옮겨.  


오전에 포로 로마노에 가면서 들었던 어수선한 재즈 스타일의 음악은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연주되고 있었다. 아까보다 연주 실력이 늘었나, 음악이 정리가 느낌인데. 도로 화단에 드리워진 나무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시 들었다. , 시원하다. 그늘과 그늘이 아닌 곳의 차이는 확실했다.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베네치아 광장을 지나 10분을 걸어 다시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3 20. 생각보다는 빨리 왔으니까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가면 되겠네. 그렇게 쉬다보니 어느덧 5 50. , 이제 슬슬 나가자. 로마에서의 마지막 만찬 시간이야.  


비눗방울 놀이는 언제나 즐거워 


저녁을 먹기로 곳은 트레비 분수 근처에 있는 바카노라는 여행 책에서 소개한 식당. 호텔 골목을 지나 식당 가는 길에 목각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 앞에 있던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 뒤에서 션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션은 말을 듣지 않았다. , 잠깐만 뒤에 서보라니깐, 싫다는거야. 션은 울음을 터뜨렸다. 코가 길어질까봐 무서웠나? 이유는 지금도 없다. 대신 벤치에 앉아 피노키오 옆에서 찍는 것으로 만족. 이게 어디야. 하지만 션은 계속 울었다. 그렇게 계속 울기만 하는 션과 상하고 화가 나서 씩씩대던 아내와 함께 하드리안 신전 피에트라 광장을 지나던 , 와아아, 비눗방울이다, 션은 신나게 비눗방울을 쫓아다녔다. 션이 터뜨리는 비눗방울 하나하나에 아내의 속상함도 하나하나 터졌고 우리 가족은 다시 깔깔깔.  


역시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비엔나, 로마 없이 사람들은 식당 실내보다는 실외에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는 계속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했으니까. 어제 식당보다 괜찮은 같은데. 감자튀김에 2가지의 파스타, 그리고 빠질 없는 맥주. 이번엔 2잔이나 마셨다. 오늘은 잔으로는 부족해. 내가 너무 익었어. 결코 감자튀김을 남기지 않는 션이 최후의 조각까지 먹은 시간은 7 30. 로마에서의 일정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배불리 먹고 마신 후의 세상은 희극으로 보이고 치열함과 슬픔을 있는 감각은 억제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억제력을 억제시키는 술의 힘을 빌어 정신으로는 숨길 밖에 없던 분노를 표출하는 거겠지. 로마의 거리는 그저 행복한 세상으로 보였다.


판테온 앞에서 듣는 Pink Floyd  <Another Brick in the Wall> 


감동 만찬 돌아온 판테온 광장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We don't need no education. 따라라딴 따라 따라.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따라라딴 따라 따라.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불세출의 명반 <The Wall>.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하나 들고 <Another Brick in the Wall> 연주하며 판테온 앞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멋진 기타리스트 아저씨. , 아저씨께 감사의 표시 하고 와라, 네가 좀더 크면 들어야 음악이니까 들어봐, 멋지지. 하지만 동시에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런 음악에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면 아재 되는건가. 하지만 이렇게 멋진 음악을 어떻게 외면할 있어. 앞마당 판테온에서의 마지막 밤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과 함께 저물어갔다.


  Pink Floyd <Run Like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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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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