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오른쪽 스피커에서 Am 코드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는 지미 페이지의 어쿠스틱 기타 인트로가 나즈막히 들리기 시작한다. 테마로 여겨지는 하나의 프레이즈가 한번 연주된 후 이어서 왼쪽 스피커로 고즈넉한 리코더 소리가 들리면, 양쪽 채널에서 나오는 이 두 악기 소리의 조화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이 음악이 상당히 심상치 않다라는 전조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의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리코더와 어쿠스틱 기타 사이로 흘러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제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으로 한걸음 올라 서게 되고, 앞으로 펼쳐질 그 격정의 순간을 숨죽이고 기다리면서 한계단 한계단을 천천히 밟으며 올라가기 시작한다.



천천히 한참을 걸어 오르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던 리코더는 어디론가 숨어들며, 잠깐의 스트로크 간주가 나오고 그때 우리는 한숨 돌릴 수 있다. 그리고 나서는 리코더가 물러난 자리를 어느새 일렉트릭 기타가 아르페지오로 채우기 시작하고, 오른쪽의 어쿠스틱과 여유있는 레이스를 시작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지만 속도는 한단계 빨라진다. 그러다가 첫번째 인트로의 계단은 끝난다.

락 역사상 명곡이라는 명곡은 다 모아 놓아도 이 <Stairway to Heaven> 의 인트로를 따라 갈 곡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거다. 지금의 뮤지션들이 아무리 달콤쌉싸름한 락음악들을 줄줄이 쏟아낸다 하더라도 이 인트로에는 어렵다.



존 폴 존스의 베이스와 존 본햄의 드럼은 그때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후반부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는 모두가 인트로의 변주를 연주하지만, 그 여정은 그리 길지는 않다. 사실 아주 짧막하다. 이 전체 여정에서 베이스와 드럼은 절반도 나오지 않는 셈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올라 온 인트로의 계단들이 아득하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이제 정말 가파른 계단이 있다.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우리의 걸음걸이는 한 단계 더 빨라지고, 우리의 호흡은 더 가빠진다. 하지만 드럼때문일까? 한걸음 한걸음에 힘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의 강한 스트로크와 드럼의 짧은 간주가 나타나면 우리는 거의 다 왔음을 직관적으로 알수 있고, 어느덧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된다. 드디어 그 격정의 순간이 앞에 놓여 있는 건가? 이제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 걸음을 멈추게 된다. 지금 우리 앞에는 깁슨 레스폴을 들고 서 있는 지미 페이지의 그 격정의 솔로가 놓여 있다.

서로가 서로를 휘감아 돌며 가파른 계단을 거침없이 오르는 드럼과 기타 솔로에 숨이 막히고, 그 솔로의 후반부에서 짤막하게 등장하는 슬라이드와의 오버더빙은 짧지만 락의 역사상 가장 심오한 대화를 나눈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멋지고 흥분된 대화를 넘어서는 솔로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솔로라인의 마지막 그 한마디... 반복되는 6잇단음의 가장 전형적인 Am 펜타토닉의 그 딱 한마디이지만... 그 한마디로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이 딱 한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극적인 기타 솔로다.

지금 초특급 기교와 스피드로 정신을 쏙 빼놓는 기타 연주 실력을 가진 수많은 마에스트로들이 있지만 이 솔로에는 안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보통 기타 솔로의 톤과 그 라인을 매우 유심히 반복해서 듣는 편인데, 이렇게 극적인 것을 듣는 경우는 흔치 않다. 최근 뮤지션에게서는 멋진 톤과 솔로를 좀처럼 들을 수가 없는데 존 메이어 정도가 귀가 좋아라 하는 편이다.

그 격정의 솔로가 끝나면 좌우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기타가 16분음으로 끊어대는 현란한 스트로크 뮤트 사운드가 시작되고, 로버트 플랜트와 우리는 달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없다. 달려야 한다.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천국에 이르는 계단의 종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존 폴 존스도 달리고 존 본햄도 달린다...

이게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Led Zeppelin 의 <Stairway to Heaven> 이다. 그래도 많은 뮤지션들이 도전을 하긴 했는데, 수많은 커버 버전 중에서 나는 Far Corporation 이 가장 잘 재현해냈다고 생각한다. 파 코포레이션은 바비 킴볼, 사이먼 필립스, 스티브 루카서를 비롯한 토토의 멤버들과 로빈 맥콜리 등등의 유럽의 쟁쟁한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수퍼밴드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 은 굉장히 스케일이 커졌다. 마지막에 잘 안들리기는 하지만 그 가장 극적인 솔로에 도전하는 스티브 루카서의 연주도 장난 아니다.



레드 제플린은 공연실황을 담은 필름인 <The Song Remains the Same> 의 동명 타이틀 OST 까지 포함해서 총 10개의 앨범을 남겼다. 이 10장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진다. 몇곡을 제외하면 무엇하나 대중적이라 할 만한 음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락을 뛰어넘어 철학과 세계를 담으려 한 프로그레시브락과는 좀 다르고,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락의 미학을 추구했던 딥 퍼플의 음악과도 많이 다르고, 락의 여왕인 퀸과도 매우 달랐다. 레드 제플린을 위한 표현을 굳이 찾으라면 가장 실험적인 밴드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가장 실험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던 밴드...

비틀즈를 락의 모차르트라고 한다면 레드 제플린은 락의 베토벤이어야 할 것이다. 가장 완성도 있는 음악과 사운드를 추구한 것이 레드 제플린이며, 실험정신도 강했다. 다시 말하지만 레드 제플린은 대중을 위한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때는 대중이 그들의 그 난해한 음악을 좋아했던 것 뿐이다. 이것은 요즘의 음악계에서 뮤지션이건 대중이건 꼭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아마도 요즘의 말랑말랑한 락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에게는 너무 난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제멋에 사는 젊은 뮤지션들이 이것은 꼭 알아 두었으면 한다. 그 얕은 미학과 어줍잖은 실험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그저 이 위대한 선배들의 아류를 만들어 내는 것 뿐이라는 것을... 억울하면 일찍 태어났어야 했다. 물론 선배들의 그 위대한 업적에 도전장을 내는 후배들도 가끔씩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대부분 안분지족하며 너무 말랑말랑하게 하향평준화된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 나더러 무덤에 가지고 갈 물건을 하나 고르라면 난 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 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들으며 나는 정말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밟고 올라 갔으면 한다.

2008년 4월 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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