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앨리스는 하얀 토끼를 만나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아이들이 꿈꾸는 새로운 상상의 공간이며,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인인 세계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서 앨리스와 토끼와 그 원더랜드를 뚝 떼어다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두 딸의 엄마이자 사진작가인 남편의 보조 역할 정도의 삶을 살던, 그러나 사진을 찍고 싶었던 한 여인이 어느날 온몸이 털로 뒤덮인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어느날 그를 따라 그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이상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파티도 벌이고 급기야 그들을 가족들에게 소개하기까지 한다. 앨리스는 그 이상한 나라에서 토끼와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그리고 그 토끼는 그녀에게 무엇을 보여 준 것일까? <Fur: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 (2006) 를 이렇게 보면 좀더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디앤 아버스는 "Wizard of Odds", 금지된 세계를 탐닉한 "오즈의 마법사" 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금지된 세계? 아마도 이것이 그 이상한 나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사진기를 들고 그곳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를 상상의 스토리로 만든 것이 이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디앤 아버스의 남편은 모델을 앞에 세워 놓고 갖가지 설정을 찍는 사진작가였고, 그리고 디앤 아버스는 그 뒤치닥꺼리를 하는 보조였다. 그러나 사진을 찍고 싶었던 그녀는 어떤 계기로 인해 남편의 보조에서 벗어나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사진에 담은 것은 처음부터 조금은 다른 것들이었다. 그저 상업적 사진을 찍는 남편의 보조로써 "당신이 하는 일은 뭐냐?" 라는 물음에, 머뭇머뭇 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의 모습에서 이 영화는 또한 여성들을 향한 영화이기도 하다.

디앤 아버스의 사진들은 기형적 외모의 인간들의 표정과 몸짓을 많이 담고 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었는데, <Fur: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 (2006) 에 털을 뒤집어 쓰고 나오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대사 중에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상처받기를 두려워 하나, 기형적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할, 심리적 상처를 늘 안고 살아 가겠구나..." 그럼에도 그들이 세상을 살아 간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심리적 고통의 초월성과 그 초월의 결과로써 인간으로서의 어떤 고귀함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난 이 영화를 이렇게 보았다. 디앤 아버스가 사진작가로서의 자기 발견 및 인간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는 그 중요한 순간들을 포착하는 몇장의 사진으로서의 의미로... 그래서인지 후반부 디앤 아버스가 찍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그 사진 쇼트는 매우 강렬하다.

아무런 설정없이 그냥 그들을 찍어도 사진에는 그 고귀함과 초월의 이미지가 그 기형적 외모의 한꺼풀 아래 숨어 있게 된다. 적어도 이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면, 뭔가를 전달하려는 듯이 갖가지 요상한 포즈를 취한 모델들을 담는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와 사랑을 나누거나 동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기형적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물리적 공간에서는 약자일지 모르나, 정신적 공간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초월과 고귀함이라는 것은 아마도 아름다운 배우에게서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니콜 키드먼이 그러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디앤 아버스로 나온다. 니콜 키드먼은 그 눈빛의 매력이 대단한 것 같다. 그녀의 눈빛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누르기 때문에 <Birthday Girl>, <Dogville>, <the Hours> 같은 영화들에서도 아름다움보다는 인물의 이미지가 남는데 성공한 듯 하다. 영화 초반부의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이 영화 속에서는 아마도 시종일관 눈밖에 안보이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그 큰 눈에 대적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디앤 아버스는 어떻게 그러한 기형적 외모의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왜 이상한 나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까? 이것에 대한 영상기록이 <Fur> 라는 영화의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영화는 디앤 아버스의 삶을 재현하여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진 않는다. 대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그 이상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이야기로 그리고 있다는 거다. 이건 어쩌면 아주 재치있거나 필연적인 선택같아 보이기도 한다. 삶의 재현같은 것은 어쩌면 영화감독이 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미디어가 할 일이지.

그녀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사진기를 들게 만든 것은 온몸이 털로 뒤덮인 다모증의 라이오넬이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인도하는 그 하얀 토끼같은 존재다. 영화 속에서 그는 하얀 토끼를 키운다. 그의 온몸을 뒤덮은 털은 그를 세상과 단절시켜 이상한 나라를 만들게 한 동시에 그 털을 깎아 만든 가발은 그의 생계수단이 된다. 또한 그 털로 만든 모피, 그러니까 인모 모피코트를 남기기도 한다. 난 이 인모 모피코트라는 부분이 참 놀라왔다. 동물의 털을 깎아 만든 모피코트를 입은 모델의 그저 그런 사진을 찍는 그 남편의 보조에서 털로 뒤덮인 인간의 상처를 찍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에서 말이다.

적어도 이 영화는 그 기형적 외모를 가진 사람들의 세상을, 앨리스 그러니까 인간을 사랑하는 한 사진작가의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 그 <이상한 나라> 로 만들어, 어른들 그러니까 보통의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매력과 상처의 공간으로 보여주었다는 점, 그리고 상처를 초월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고귀함의 공간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2008년 2월 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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