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카메라 렌즈는 우리의 눈이 이자의 눈인 것처럼 그리고 그녀의 손이 우리의 손인 것처럼, 자고 있는 마리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려고 뜯겨진 일기장 한 페이지 장면을 잡고 있습니다. 이자는 단어들을 써내려 가고 그리고 우리도 무엇이 쓰여질까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상드린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좋아지고 있어. 살 수 있을 거 같아.
      네가 찾고 있는 그런 삶을 찾기를 바래. 네가 꿈꾸는 삶 말이야. 언제나..."


이 메모를 남기고 집을 조용히 나가려던 이자는 문득 마리가 자고 있는 방안을 열어 봅니다. 그리고 마리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쇼트가 아주 짧게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리고, 카메라는 다시 이자의 시점이 되어 창문 밖 아래를 내려다 보게 되죠.

이어서, 바로 전선 다발을 연결하는 어떤 공장 안의 빈 자리 장면으로 이어지고, 이 빈 자리에 이자가 앉아서 전선을 연결하는 방법을 간단히 듣고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 소녀의 목소리로 뭐랄까 서글픈 노래가 공장소음 속에서 서서히 페이드인 되죠. 이곡은 <Central Station>에서 안토니오 핀토의 그 음악만큼이나 맑고 아름다운 곡이었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이자, 그리고 마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흐르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음악인 얀 티에르센 (Yan Tiersan) 의 그 노래는 지금까지 지속되던 이자와 마리의 삶과 꿈에 대한 모든 영상을 한꺼번에 담아내면서 영화 속에 빠진 우리들을 꺼내어 이제 천사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하죠.

이자는 몇 프랑을 얻기 위해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는 21살 홈리스 소녀입니다. 그러다 어떤 봉제 공장에 들어가지만 미싱을 못 다루는 바람에 쫓겨나죠. 그러니까 공장이 두번 나오는데, 첫번째와 두번째에서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마리는 그 공장에서 만난 소녀이며, 그녀도 21살이었습니다. 마리는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있는 상드린이라는 어린 소녀의 집을 봐주면서 살고 있습니다. 갈 곳 없는 이자는 마리와 함께 지내고 둘은 친구가 되죠. 가난한 이 두 소녀는 많이 달랐습니다.

마리는 금발에 내향적이고 소심한 듯 보이는 소녀이고, 크리스라는 한 남자에 집착하죠. 크리스는 나이트 클럽을 소유했는데, 그의 부유함에는 다소 폭력성이 내포되어 있는 듯 합니다. 크리스 역은 그레고와 꼴랭이 하고 있죠, <올리비에 올리비에>의 섬뜩한 그 올리비에요.

계급이라는 장벽 때문에 잡히지 않을 사랑에 자신의 몸을 버리고 자신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마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자는 더벅머리 명랑소녀이고 비교적 씩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에서 마리의 유약함과 이자의 씩씩함의 아슬아슬한 평행선을 보게 되죠. 잡히지 않을 사랑에 대한 집착을 비교적 긍정적(?) 또는 희망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에서의 이케와키 치즈루라는 생각도 드네요.



우리는 그들의 감정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괴로움을 안고 영화를 보아야 하지만, 그 충돌은 사회적인 모순일 수도 있고, 부자의 폭력과 홈리스의 희생의 간극일 수도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진지해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두 소녀의 그 21살으로써의 삶과 감정은 핸드헬드 카메라의 떨림에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의 모순 안에서 20대를 담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 오히려 나을 것도 같구요. 그러고 보니 21살의 꿈 또는 좌절이 과연 고정쇼트에 담아질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것은 제가 20대는 TV드라마, 특히 일일극을 멀리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TV 드라마는, 특히 스튜디오 씬을 찍을 때, 몇대의 카메라를 고정시켜서 찍기 때문에 그야말로 카메라 앵글 안으로 배우가 들어가야 합니다.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해야 하죠. 이렇게 되면 20대 여배우가 할 수 있는 건 질질 짜거나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모습 뿐입니다. 20대란 카메라가 그 자유분방함과 열정을 좇아가며 담아내게 만들어야 하는 세대인데 말이죠.

우연히 만난 스물 한살 동갑내기 마리와 이자는 자신들의 삶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황하고, 사회의 편견은 그녀들에게 쉼터를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리는 자신의 삶을 버립니다. 그러나 이자는 여전히 그 절망의 사회로 희망을 가지고 또 다시 들어가죠.왜냐하면 그것이 20대이니까요.

<the Dreamlife of Angels>(1998) 는 Eric Zonka 의 1998년에 발표한 장편 데뷔작이며, 이 두 무명배우는 그해 51회 깐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한국의 마리와 이자를 만나고 싶다면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를, 일본의 소녀들을 만나고 싶다면 나나난 키리코 원작을 영화로 한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를 보셔도 좋을 듯.

2008년 1월 2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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