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은 디스토피아' 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이다.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실은 디스토피아를 사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세상은 디스토피아' 를 되뇌며,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Everything is Dystopian' 이라는 편집증적인 망상 (어쩌면 너무나 현실일지도 모를) 을 떨칠 수가 없다. 그 생리상 가진자를 위해 움직이는 군대와 경찰이라는 공권력 행사 집단과 언론, 종교, 교육이라는 통치 보조 집단으로 구성되는 모든 국가 자체가 디스토피아, 라는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매우 믿는 편이라는 거다.

어제는 9/11 어택 7년째 되는 날. 소방수들이 사상과 상상을 전파하는 책을 불태우고, TV 가 사람들을 세뇌시키며 의식 구조를 지배하니 어디 산속에 숨어 들어가서나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을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 Fahrenheit 451> 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Fahrenheit 9/11> 을 다시 보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디스토피안 영화 중 하나로 분류해야 할 거다. 조만간 디스토피아 영화를 한데 모아서 이야기해 볼까 싶기도 하다.

4년 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때는 함께 그 속으로 뛰어 들어 '9/11 사건'과 '부시'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시청 관점이었지만, 어제는 한발 멀리 떨어져 '돈이 어디서 나와 어디로 왜 저렇게 흘러갈까' 라는 궁금증과 그 돈의 흐름이 최종적으로는 몇몇 자본가의 손아귀에 떨어지도록 (돈 실은 열차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한)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기 위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고 통제된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 그러니까 디스토피안 관점에서 '9/11 사건' 을 다시 본 거다. 그리고 이 영화가 괜히 깐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영화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엘 고어가 패배하고 조지 W. 부시가 승리한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정 당선이라는 주장이다. 하원 의원들의 이의 제기, 몇십만 시민들의 반발과 거리 시위, 계란 세례로 엉망진창이 된 취임식... 그리고 어쨌건 부시는 취임하고 8개월 기간 중 반을 골프를 즐기고 요트를 타는 등 휴가로 보냈다.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부시가 처한 상황은 심각한 듯 했다. 작년 우리나라 대선에서 그 수많은 엄청난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어 7개월을 청와대에서 보낸 지금의 대통령과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1년 9월이 된다. TV 에 출연하기 위해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화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그들의 다양한 표정을 짜깁기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잠깐의 비웃음... 그리고는 블랙 화면 속에서 굉음, 비명, 경악이 믹스된 9/11 무역센터 참사 현장의 사운드가 흘러 나온다.

그 시간, 플로리다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라도 보여 주려는 듯 홍보 촬영을 하고 있던 부시는 교실에 앉아서 그 소식을 듣는다. 뉴욕이 침공당해서 아수라장이 되고 몇천명이 죽었다는...

부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영화는 그가 별다른 표정 변화없이 7분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점을 계속 보여준다. 바보? 상황 파악을 못했나? 아니면 알고 있었나? 오사마 빈라덴의 공격이 있을 거라는 예측 보고서도 무시했던 부시가 그 시간에 거기에서 왜 가만히 그렇게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를 마이클 무어는 의아해한다.

더구나 그 엄청난 사건 직후, 미국 내 모든 공항의 당연한 폐쇄조치 이후임에도 왠일인지 빈라덴 일가는 유유히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떠난 것이 밝혀진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영화는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9/11 사건의 실체가 부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그것을 의심하며 각종 지난 영상 자료들을 모아서 웃어야 할지 열받아야 할지 애매하게 만드는 장면들과 그 특유의 과장법과 개그를 엮어 다닥다닥 붙여 편집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논리적인 배경을 구성해 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화씨 911> 이 주로 부시 주위를 얼쩡대는 영화라면 <루스 체인지> 같은 다큐는 무너지는 무역센터와 들이받는 비행기를 돋보기를 대고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이상한 점들을 찾아내어 이 사건이 조작극은 아닐까 의심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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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이클 무어는 의사당 앞에서 의원들을 쫓아 다니면서 자식을 이라크에 보내라고 부탁한다. "먼저 모범을 보이셔서 자식을 참전시킨다면 큰 애국이 될텐데요..." 모든 의원은 그 자리를 회피한다. "미국 상류층 중에서 누가 자기 자식을 참전시키겠어..." 그리고 마이클 무어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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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회의 누구도 자기 자식을 이라크 전쟁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누가 자기 자식을 희생시키고 싶을까? 당신이라면? 아니면 그 (부시)가?

최악의 동네에서 살고 최악의 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그런 사회 시스템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가장 첫번째 사람들이라는 것이 나는 항상 놀라왔다. 그들이 나서니 우리는 나설 필요가 없다. 그들은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들을 희생시킨다. 우리에게는 놀라운 선물이다. 그들이 보상으로 대신 요구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다시 믿어 줄까?

" 화학무기를 사용했소.", "그들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있소. 그들은 티그리트, 바그다드 그리고 동서남북 어딘가에 있지.", "이라크는 911 사건과 관계가 있어요.", "그들이 완전히 섬멸될 때만 전쟁은 끝날 거요.", "우리는 문명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했소. 추구한 것이 아니요. 우리는 싸울 것이고 이길 것이오."

조지 오웰은 이런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전쟁은 현실이냐 아니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승리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전쟁의 의미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 있다. 계급사회는 가난과 무지를 기반으로 할때만 가능하다. 이 새로운 해석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이와 달랐던 과거는 존재한 적이 없다.

이것은 원칙인데, 전쟁이란 '굶어죽기 직전' 상태로 사회를 유지하도록 기획되는 것이다.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쟁을 벌이고 그 전쟁의 목적은 유라시아나 동아시아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계급 사회 구조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부시 연설) "테네시주에 속담이 하나 있는데, (한번 속으면 속이는 놈이 나쁜놈이고, 두번 속으면 속는 놈이 멍청하다는 말인 듯) 나를 속여?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지만 난 한번 속지, 두번은 안속아."  그래 말한번 잘했다. (우리도 두번은 안속는다.)


그리고 닐 영의 <Rockin' in the Free World> 가 흐른다. 즉, 디스토피아에서 락킹하기. 사실 디스토피아이기 때문에 락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그래서 아직도 20대들이 락음악에 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20대로서 어떻게 락을 안들을 수가 있지?

1980년~1990년대 초반 미국의 모든 가치를 역주행시킨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에 대한 날카롭게 날선 비판의 외침과 기타 쥐어 뜯기... <Rockin' in the Free World> 는 <화씨 911> 의 주제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들은 지금 말과 행동이 지금 전혀 다른데 어찌 그 '말'을 왜 듣고 있는가... 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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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는데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고, 적(?)들을 죽이고 가져온 블러드 오일 보여주며 신나게 달려 보자고 하는 저들의 디스토피아에서 락킹하기...


2008년 9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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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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