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바디 스내처

서적2017.03.28 14:14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바 있는데, 실은 다음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서문 격으로 쓴 글이다. 당신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뉴스는 '진실'에 얼마나 접근할 것 같은가,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라는 내용이다.

또는 훨씬 더 전에, 존 카펜터의 <They Live 화성인 지구정복 1988> 이라는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 영화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TV 가 전파를 통해 뿌려 대는 뉴스들, 역시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라는 내용이다. 영화는 자본가와 미디어의 실체를 외계인 침공의 알레고리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또는 더 전에, "거꾸로 우리가 외계인으로부터 피의 침략을 당했다" 고 상상해보자, 라며 화성인의 공격에 의해 무차별 침공당하는 지구를 제국과 식민지에 연결지어, 영국의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H.G. 웰스의 <War of the Worlds 우주 전쟁 1898> 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외계인의 침입' 을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한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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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60년 뒤에 출간된 잭 피니 (Jack Finney) 의 1956년 소설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바디 스내처> 에서는 광선을 쏘거나 사람을 잡아 죽이거나 하면서 공격하는, 물리적인 침략자로서의 외계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Body Snatchers> 로 출간되었다가 돈 시겔의 영화화 이후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로 개제되었음.

대신, 조용하게 잠입해서 사람들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결론적으로는 인간을 죽이는 침입자로서의 정체불명의 적 (외계인) 이 등장한다. 그래서 <바디 스내처> 라는 소설의 내용을 하이 컨셉트로 표현하자면 <우주 전쟁> 의 1인칭 시점의 내러티브 구조에 <화성인 지구정복> 의 줄거리를 살짝 변형시켜 넣은 이야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마주 친 현실에 대해 의심하는 것으로 그 모든 사건의 발단이 시작된다. "이상해,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오래 전부터 알고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갑자기 왜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질까... 이제는 마주 대하기도 두려워... 그 사람들의 감정이라는 것들이 다 증발되어 버린듯한 느낌이야..."

이 소설 이후 12년 뒤인 1968년 출간된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도 비슷한 콘텍스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보이트 캄프 테스트를 통한 Empathetic Response 를 보고 상대방이 기억을 이식받은 레플리커트인지 아니면 인간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읽은지가 좀 되서 가물가물한데 (게다가 원서로 읽었던 지라...) 내 기억으로 책에서는 데커드가 레플리컨트였는지 아닌지 굉장히 모호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최근 다시 공개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 에서는 데커드가 레플리컨트였던 것으로 결론지어진 것으로 안다. 사실 <디렉터스 컷> 에서도 레플린컨트였다는 힌트는 들어 있다.

상대방이 인간의 복제품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판단 근거는 기억에 대한 감정이입, 그러니까 결국은 감정 emotion 이라는 것인데, 로보트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인간을 복제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100% 일치하게 만들더라도 그 특유의 감정의 복제가 완전하지 않다면 대개의 인간이라면 눈치를 챌 수 있다는 생각이 <바디 스내처> 과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두 소설의 공통된 정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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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스내처> 의 줄거리는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계인들은 지구 중에서도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 밀 밸리에 어떤 식물 포자를 침투시킨다.

그리고 이 식물은 마치 열매를 맺듯이 마을 사람들 한명씩 복제를 해서 미완의 형체만 갖춘 인간 열매를 생산-배출하고, 아직 미완인 이 열매 인간은 오리지날 인간이 잠든 사이에 그 자양분을 완전히 흡수하여 완벽한 복제 인간으로서 성장한 다음, 성장이 완료되면 그 사라져 버린 오리지날 인간의 그 흔적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복제 및 대체하는 과정은 완료된다. 그러니까 외계인의 식물을 통해서 신체 강탈 과정이 발생한다는 거다.

그리고 밀 밸리라는 마을 사람들은 한명씩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외계인으로부터 의식의 통제를 받는 복제 인간들로 대체되는데, 그 과정이 완벽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외계인에게 원래부터 감정이 없는 것인지, 완벽한 기억 복제는 되나 완벽한 감정은 복제가 되지를 않는다.

따라서 아직 복제-대체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게 된다. 주인공이자 그 마을 의사인 마일즈 베넬과 그의 여자 친구 베키 드리스콜은 자신의 친구들과 친척들의 감정 상태를 보고 "그들이 그들이 아니야" 의심을 하기 시작하며, 결국에는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아 차리게 된다.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어떤 식물에 의해 신체를 강탈당한 채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감정은 결여된 복제품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그 식물의 포자가 여기저기 퍼져 나가고 마을 끝에서는 대량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아내고는, 신체를 강탈당하지 않는 최후의 밀 밸리 사람이 되어 베키와 함께 마을 탈출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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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후반부, 마일즈는 자신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매니 커프만과 식물학자 버나드 버드롱 교수와 논쟁, 아니 거의 완벽한 듯 보이는 논리로 일관하는 일방적인 강의 청취를 한다. 매니와 버드롱은 이미 복제된 상태, 아니 소설 처음부터 신체를 강탈당한 복제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 논쟁에서 마일즈와 매니와 버드롱은 인간의 기능, 존재 이유, 감정의 의미와 가치, 또는 복제된 육체의 의미 등에 대해 쌍방의 치열한 사상을 주고 받는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한쪽은 너는 인간의 가치란 무엇인데 그렇게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며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살려고 하는가, 어차피 지구인 모두가 감정이 결여된 상태로 육체가 복제되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있고 평화로운 마을을 유지할 수 있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네가 그것을 받아 들이느냐 못하느냐에 달렸을 뿐...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다.

글쎄, 난 너의 그 말에 수긍할 수 없다. 살아남고 나의 후손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만 내가 사는 건 아닐거다. 너는 보편적인 생존의 적응성으로서 우주 기생체의 살아 가는 방식인 몸만을 빌리면서 이 행성 저 행성을 떠돌아 다니며 종족을 존속하기만 해서 잘 모르는가 본데, 우리에게는 희로애락의 '감정'이라는 인간만의 가치가 있고, 이건 너무나 중요하며 포기할 수 없는 거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이기도 한.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는 거야. 너같이 인간의 가치를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보는 기생체들이 뭘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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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출간된 1956년 미국은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때라, 반공사상의 절대적인 가치 조장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진보적인 사상, 정치,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고 통제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소설을 反매카시즘 소설로 보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그렇게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다는 생각은 든다. 지금 우리나라 명박시즘 광풍 불려고 하는 거 같다. 2008년판 분서갱유도 나올 듯 하고...

무력을 앞세워 대륙을 침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조용히 잠입해서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고 세상과 타협하게 하고, 감성으로서의 모든 인간의 가치를 버리면 세상을 조용하고 원만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세뇌시키는 침입자로서의 외계인, 과 우리는 지금 조우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부터 어디선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선글래스를 끼고 상대방이 외계인인지 아닌지 조심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보이트 캄프 테스트를 해서 상대방의 감정이 페이크인지 아닌지 조심하고,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모든 것을 의심하며 편집증 속에 갇혀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거다. 설령 내가 신체를 아니 의식을 강탈당하지 않는 그 최후의 인물이 될 때까지... 그게 인간인거지.

정치, 경제, 미디어, 언론, 스타, 스포츠, 영화, 음악, 책 등 이데올로기에서 각종 문화 예술 작품들까지... 모든 것을 의심해라. 그것들이 외계인이 감정없는 복제 인간을 만들어 침투시키고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기 위해 생산해 낸 무시무시한 세뇌 도구일지 알수 없는 노릇이니까.

<바디 스내처> 에서 식물은 무한 증식되면서 복제 인간들을 통해서 온 마을로 퍼져 나간다. 무엇이 무한 증식되고 있으며 무엇을 통해서 퍼져 나가는가, 결국 우리는 이것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자본은 무한 증식되고, 대박의 꿈에 눈이 멀어 주식에 투자하는 복제 인간들이 모인 주식 시장을 통해서 그 자본의 포자가 퍼져 나가고 있다면 틀린 말인가?  물론 "잘 살아보세" 하며 금융과 펀드를 부추기는 미디어는 '감정'을 빼내는 그 주체 자체이며, 뒤에 숨어서 금융 자본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몇몇 소수의 지배자들이 바로 그 외계인의 실체일 수도 있다. 스타 연예 산업도 그 돌아가는 방식이 매우 똑같은 모습을 닮아 있다.

이 나라에 살면서 자본에 의해 복제되지 않고, '인간의 감성' 이라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모두 복제되고 홀로 남은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냐는 거다.

2008년 8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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