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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소식을 뉴스로 듣다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K-19>이 생각나서 다시 꺼내 보았다. <K-19>는 2002년 제작된 영화로 원제는 <K-19: The Widowmaker> 이다. 냉전 시대의 소련을 배경으로,  "과부 제조기"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핵잠수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영화는 실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더 무시무시하다. 해리슨 포드와 리암 니슨, 피터 사스가드 등이 출연하며, 남자 감독들보다도 더 남성적인 영화를 만드는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의 작품이다.

배경은 냉전 상황이 첨예했던 1961년, 핵탄도 미사일을 장착한 잠수함 K-19이 첫 항해에 나서지만 북대서양에서의 훈련 도중에 원자로에 이상이 생기면서 난관에 봉착한다. 갑자기 원자로 냉각 장치가 고장이 나게 되고 원자로의 온도가 급속히 올라가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원자로의 폭발을 막으려면 승무원이 원자로 안에 들어가서 파이프 용접 작업을 해야하는데, 설상가상으로 방사능 보호복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잠수함을 버리고 탈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폭발할 경우 주변의 나토 기지까지 파괴되면서 의도치 않게 3차 세계 대전을 발발시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결국 승무원들이 팀을 짜서 10분 간격으로 교대로 원자로에 들어가 작업을 하고 나오게 되는데 단 10분간이지만 방사능에 노출된 승무원들의 증상은 차마 보기 끔찍할 정도이다. 게다가 잠수함 내부의 방사능 수치도 점점 올라가게 된다.

몇몇 승무원들의 희생으로 사태는 통제되기 시작하고 K-19는 소련군 잠수함에게 구조된다. 그 후 7명의 군인은 심각한 수치의 방사능 피폭으로 몇 주 안에 사망했으며, 20명은 고통스러운 증상을 겪다가 몇 년 안에 사망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수십년간 비밀로 지켜졌으며 28년이 지난 뒤 냉전 종식 후에 K-19 탑승자들이 모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명령으로든 자발적으로든 간에 일부의 희생으로 전체의 안전을 얻게 되는 상황은 언제나 불편하다. 군대라는 것 자체가 그런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런 위험 상황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쪽은 대부분 하급 군인(K-19)이거나 노동자(후쿠시마 원전)이다. 국가를 위해서 또는 가족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에서의 공리주의 논쟁처럼 "정의"와 "공정"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당한 희생"을 누군가가 떠맡게 된다. "영웅"이라고 치켜 세우는 것으로 과연 "피폭"의 상처를 덮을 수 있을까.

영화 제목과는 다르게 소련 해군들 사이에서  K-19의 실제 별명은 widowmaker 가 아니라 "히로시마"였다고 한다. 인간은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말이 정말인 것인지 아이러니하게도 K-19의 비극을 겪었던 국가가 체르노빌 사고를 반복했으며 (체르노빌이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었으니까), 히로시마의 비극을 겪었던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를 반복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가 인재가 아니라 불가피한 천재지변이라고 하기에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고 싶다. 원폭으로 인한 피해를 극심하게 겪은 나라가 원자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우며, (일본의 원전은 총 55기이며 14기가 더 추가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지진과 쓰나미, 화산 등 불안정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우려가 된다.

현재 전 세계의 원전은 27개국에서 총 443기가 가동 중이다. 여기다가 건설 중인 것이 62기, 계획 중인 것이 158기이다. (시사인 기사 참고). TV에서 원자력이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광고까지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총 21기가 가동되고 있으며 7기가 건설 중에 있다. "녹색 성장"과 "자원 외교"로 홍보 중인 원전 건설 및 운영은 MB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에 핵 사찰 운운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견제하던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강대국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일본에 있던 원전이 자국은 물론 타 국가의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인접국의 재해가 다른 나라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면에서 원자력 발전은 어쩌면 핵무기보다도 두려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정책적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배제하고 대체 에너지만을 사용하더라도 중국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편서풍에 의해) 무방비 상태로 방사능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무력한 현실인 것이다. (중국의 원전은 현재는 13기가 가동 중이지만, 후쿠시마 사고 전에 이미 27기가 건설 중에 있었으며 50기가 더 추가될 예정이었다.) 자연재해로 발발하든 (후쿠시마), 인재이든 (스리 마일 사건) 간에 타국의 정책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전세계적인 축소 및 폐쇄 캠페인이 벌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황사에 방사능 물질이 섞여 날아오게 되는 날이 오지 않도록 말이다.

일본의 이번 사고는 심지어는 국가가 통제하기 어려운 민영화된 전력회사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 더욱 심각한 점이다. 도쿄 전력이 주가 때문에 초기에 위험성을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이윤이 사람들의 목숨과 맞바꿔지는 상황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원자력의 경우에는 전세계적인 재앙을 만들 수도 있다.

원자력을 포기할 경우에 당장 전력 공급이 문제라고 한다 해도 나는 위험천만하고 값싼 전기보다는 비싼 전기료를 무는 편을 선택할 것 같다. 다음 세대에 폐기물을 전가하는 시한폭탄 발전소보다는 연구비를 모아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우리의 세금으로 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설들을 지어야 하는지 참 갑갑한 현실이다. 세금으로 4대강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암울한 마당에 말이다.


2011년 3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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