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


광화문 시네큐브도 추석특집을 하는 것인지, 지금 Full Moon Day 영화축제라는 행사를 하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개봉할 영화 중 몇 작품을 미리 선보이는 프리미어 영화제다. 그래서, 지난 주말은, 시네큐브을 찾아 미셸 오슬로 최신작 <아주르 아스마르> 와 장 마크 발레의 <크.레.이.지> 를 봤지.

일본 지브리 박물관 (지브리 스튜디오라고도 하는) 에 가면, 미셸 오슬로 작품 관련 전시를 볼 수 있는데, 현재는 지브리가 미셸 오슬로 작품의 배급사라고 한다.  이국적 색채감으로 유명한 프랑스 아트 애니메이션 감독이지만, 이번 <아주르 아스마르> 는 많이 대중적이고 영상이 심하게 아름다우며, 내용과 메세지도 상당히 직설적이어서 아이들도 볼만 하다. 이 작품은 지브리 라이브러리로 12월에 Blu-Ray 와 DVD 로 출시될 예정이라고...

개인적으로는 특히 캐나다 영화인 <C.R.A.Z.Y> (2005) 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퀘벡의 한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지만, 점점 性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이성으로 억누르기 위해 치열한 정신적 사투를 벌이는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쉴새없이 터지는 사건과 빠른 전개, 톡톡튀는 편집,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에 빠지다 보면, 정신없이 헤맬 수도 있지만, 영화의 기본 줄기, 즉 일관되게 흐르는 영화의 코드를 '이성으로 누를 수 없는 자신의 性 정체성에 관한 심리적 사투' 라고 이해하면 문제없을 듯 하다. 사실 Pink Floyd 의 Shine on You Crazy Diamond 는 누구라도 그 고딩시절을 뒤흔들만한 음악 아닌가.. 이해영 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 와 그 정서가 비슷하긴 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좀 다르다.

<C.R.A.Z.Y> 를 보고 나면 질풍노도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질풍노도... 무슨 광고문구 같기도 한데, 한마디로 질풍노도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라 이거다.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감성의 반항이며, 냉정하지 말고 열정적이라는 것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 고딩때는 청소년기가 정서적으로 불완전한 시기라 하여 질풍노도의 시기다라고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맘에 안든다. 왜냐하면,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어른들의 세계, 즉 구세대에 대항하는 열혈 청년들의 감성 혁명, 질서와 안전을 중시하는 영감님들의 세계, 즉 보수파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정의와 윤리... 같은 질풍노도의 철학을 마치 불완전하다는 식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 같아서...

냉정과 열정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너는 어디에 설 것인가? 라는 물음에, 그냥 내 생각에는 50대 이상은 냉정, 30,40대는 냉정과 열정 사이, 20대 이하는 열정... 보통 이럴 것 같다. 물론 절대적 구분은 아니며, 50대 이상에게 열정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청춘에게 있어 이성과 합리성는 후방에, 예리한 감성과 넘치는 열정이 전방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거다.

따라서 세상은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라고 생각해야 하는 청춘의 감성이 극적으로 표출되어야 하며, 아마도 그 방법의 하나가 음악에 crazy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C.R.A.Z.Y 의 주인공처럼... 그래서 우리나라같은 입시지옥에서는 당연히 음악에 미친 아이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청춘들이 음악을 듣지 않고 영화를 안보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   를 생각하게 되면 참 서글퍼지게 된다.

지금 보면, 우리나라 십대들의 질풍노도는 입시경쟁에 치여 사라진지 이미 오래인 거 같다. 그리고 이성과 합리성이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을 지배한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학벌, 신분사회의 노예가 되서 도대체 뭘 배우고 가르치는지 도통 모를 학원가를 전전하도록 만든 어른들에게 왜 욕을 하며 감성을 폭발시키지 않는지 참 모를 일이다. 그리고 20대가 음악을 이야기하지 않고, 주식과 펀드를 이야기하는 것 또한 정말 슬픈 거다.

질풍노도의 감성폭발, 그 직관적이며 감각적인 감성의 예리함에 서 있는 것이 음악이고 예술이다. 즉, 젊은 세대가 음악과 예술을 외면하는 것은 자기 부정이며, 자기 배신이다. 그래서 <C.R.A.Z.Y> 는 또한 음악에 빠지고 한번 미쳐 봐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이성이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지만, 우리는 감성을 폭발시키고 미쳐야 한다. 이게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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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바흐가 세상을 떠난 1750년부터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1827년까지의 77년... 이 77년이 서양음악사에서 보통 고전주의라고 부르는 그 시기이며, 서양음악사를 대표하는 시기이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바로 우리가 보통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3인방으로 부른다.

고전주의 시대의 꽃을 보통 소나타 (Sonata) 라고 하는데, 칸타타 (Cantata) 가 성악을 위한 것이라면, 소나타는 악기를 위한 곡이라고 보면 된다. 교향곡(심포니), 협주곡(콘체르토) 등도 그냥 소나타의 한 종류라고 봐도 되고... 그리고 소나타는 3막 구조의 연극과 비슷하며, 보통 발단, 전개, 해결 뭐 이 정도의 구성을 가진다.

1막은 어떤 한 인물이 등장하고, 성격이 다른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2막은 이 둘이 갈등하면서 싸우기도 하다가, 친해지기도 하다가, 화나서 돌아서기도 하고, 3막은 다시 우리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며 화해 하고 함께 손잡고 걸어나간다.

소나타는 철저하게 이런 규칙으로 만들어지고 반복과 대조를 통한 균형미와 형식에서 나오는 절제미를 추구하는 음악이며, 이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당시 계몽주의 사고와도 일맥상통한다. 고전주의 시대의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1악장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이 규칙을 사용한다. 물론 연주자도 지휘자도 이 구성을 이해하고 사운드의 기승전결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뜨거운 감성의 발현보다는 다소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형식의 미학을 추구한 고전주의 시대 교향곡들. 그런데, 1770년에 태어난 베토벤이 그토록 위대한 이유는 그 딱딱한 형식과 규칙을 완벽히 따르면서도 자신의 극한 감성과 열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냉정 속에서도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그러니까, 베토벤은 고전주의의 모든 법칙을 수용했으면서도 동시에 대단함 감성을 뿜는 질풍노도였고, 그래서 그는 후기에서는 거의 완전한 낭만주의 음악을 만들어 이어지는 낭만주의의 길을 열었다.

르네상스가 이성이면, 바로크는 감성이고, 고전주의가 이성이면, 낭만주의는 감성, 돌고도는 거긴 하지만. 서양음악사를 통털어 고전음악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고전주의 시대의 차가운 이성과 형식보다는 그 완벽한 규칙 속에 담겨진 베토벤의 뜨거운 감성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하여 지금의 청춘들은 그 고뇌하던 베토벤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냉정한 이성의 세계를 틀로써만 받아 들여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질풍노도의 열정과 감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 그런데, 누가 그리고 무엇이 그러한 열정과 감성을 제공해 줄 것인가?


2007년 9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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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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