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서 1

자기 소개서 2

자기 소개서 3 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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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면접 시험 때의 기억도 흐릿하게 남아 있다. 서너명의 전자공학과 교수들 앞에서 전자기학에 나오는 어떤 현상 하나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내가 이렇게 말을 잘했나, 교수 여러분들 이렇게 설명 잘하는 사람 못 봤지" 자뻑에 혼자 들떠서 씩씩대던 기억. 지금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땐 뭐랄까 학생 선발 시스템이 좀 엉성했지, 내가 들어간 걸 보면. 하하"


석사 과정 1학기, 수업만 들었다. 입학 동기의 절반 이상은 KAIST 학부 과정을 졸업했고 그 중 대부분이 과학고 출신. 그들의 문제 풀이 능력과 지식에 처음에는 좀 놀랐다.(나중엔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뛰어났으니까. "에고, 얘네들과 경쟁하는거야?" 수학 문제 하나 풀지 못해 쩔쩔맸던 기억이 나면서 나는 다시 패닉. "또 시작이구나" 한 학기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때가 좋았지.  (1학기인지 1년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1학기가 끝나고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지도 교수 정하기. 교수에 따라 박사 과정만 8년 할 수도 있고, 석박사를 5년에 끝낼 수도 있다. "8년? 석사 2년 합하면 10년인데 그건 좀 아니다, 싸이코 밑에서 개고생 하더라도 3년 짜리가 낫겠지" 1지망은 빨리 졸업시켜주기로 소문난 A 교수, 2지망은 연구 분야는 맞지만 좀 걸리는 B 교수, 3지망은 에라 모르겠다 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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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수는 자기 소개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소개서라는 것을 작성해 제출하고 면담을 했지만 “넌 NO”, “2지망도 NO” 그리고 “3지망 YES”. 외과 의사 되려고 죽어라 공부해 의대 입학했는데 이비인후과 의사가 되어야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두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1. 대학원 자체를 때려친다 2. 그거라도 열심히 한다. 흙수저가 과연 1을 선택할 수 있을까.


"신호 처리나 디지털 이동 통신이나 뭐 차이 있겠어? 기회봐서 나중에 전공을 바꾸지 뭐. 심지어 A 교수는 싸이코라잖아"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도교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가능하지 않을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는 난 2를 선택했다. 지금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미쳤었나봐.. 하하."


연구실이 정해지고 일상이 시작되었다. 교수가 퇴근하면 연구실은 스타크래프트 게임방이 되었고, 나는 냅스터를 뒤지며 희귀한 음원들을 모았으며, 매일 저녁 여친과 함께 밥을 먹었고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와 예술 영화들을 섭렵하고 다녔다. 이 때가 내 연애시대의 황금시기. 마지막 4학기째. 논문 주제를 정하고 연구 후 꽤 근사한 논문을 작성, 교수들 앞에서 무난하게 발표, 그리고 석사 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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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를 내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문제점을 보완하고 시스템을 개선시키면서 논문이라는 보고서로 정리하다가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빵터지는 결과를 얻기도 하는, 가장 이상적이면서 재미있기까지 한 이 공부의 과정은 매력있었다. 이런 재미에 박사를 하나보다. 1년 반 전만 해도 관두네 어쩌네 그러더니 어느새 이런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나는 당연하다는 듯 박사 과정에 진학. 여친도 박사 과정이었으니 뭐.


박사 1년차. 연구실 살림살이를 맡게 되었다. 교수가 구입한 만년필, 책 구입으로 영수증 처리하고, 교수가 구입한 고가 노트북, 연구실 컴퓨터로 영수증 처리하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속내를 알아갔다. 박사 과정이란 교수-제자의 관계는 주인-하인의 관계임을 체험을 통해 깨달아 가는 일종의 수련 과정이었던 것. 그래서 똑똑한 놈들은 유학가는구나. (모든 연구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절대로 오해 말기를)


그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몇 건의 불편함과 불쾌함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여름방학. "도대체 넌 지금 여기서 왜 그러고 살고 있는 거니" 나 스스로에게 심각하게 질문을 던졌다. "좋아. 운이 좋아 5년 후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치자, 그래서 네가 얻는 것이 뭐야" 질문이 이어졌다. 오랜 고민 끝에 난 결론을 내렸고 그 빌어먹을 교수에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결론을 내린 후에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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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된 태풍 때문인지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그래서 더 잊혀지지 않던 그 날, 트럭을 불러 짐을 실었다. 넓은 교정을 뛰어다니며 자퇴서를 제출하고 큰 돈은 아니었지만 학비를 반납하고 (카이스트는 전원 국비장학생으로 자퇴시 지원 받은 학비를 토해내야 한다) 이런저런 행정 처리를 마무리한 후 트럭을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여친에게 미안했고 어머니께 미안했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고마웠다. 용기를 내어줘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신사에 개발자로 취업하면서 난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첫 직장은 조직의 쓴 맛을 보고 1년 만에 관두긴 했지만) 그깟 학위 하나 포기한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힘들게 용기를 내어야 했을까. 지금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태어나서 했던 일 중 두번째로 잘한 일이야... 하하"  


학위를 인질로 붙잡혀 수년간 교수의 하인 노릇을 하는 것은 그나마 애교다. 인생을 통째로 인질로 잡혀 하는 공부, 세상에 그런 도박이 없다는 것을 우리나라의 수많은 중고딩을 자녀로 둔 학부모님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건축공학이 아닌 전자공학을 선택한 것, 원하는 연구실에 들어가지 못한 것, 딱 이 두가지의 실책 또는 불운으로 내 인생의 돌이킬 수 없는 평생의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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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난 그나마 그 때라도 공부를 그만 둘 수 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떠들고 다닌다. 심지어 재미있어 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지금 불행해? 하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지난 삶과 인생의 아쉬움이 현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단연컨대 이 세상에서 행복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 땐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인생이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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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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