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BOY's JAZZ BAKERY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이 두 마을 주민들은 좀처럼 왕래가 없다. 그런데 실은 이 두 마을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 마을 주민들 모두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는 업종에 종사를 한다는 거다. 놀래키는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먼저 H 마을. 흉악하게 찌그러진 괴물, 무시무시한 유령, 섬뜩한 악귀, 오싹한 흡혈귀, 음흉하기 짝이 없는 마법사,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악동들, 온갖 징그러운 벌레들, 그리고 유일하게 착한 너덜너덜 팔다리를 꼬맨 인형 아가씨 샐리가 그들의 지도자 해골 펌킨 킹, 잭 스켈링턴과 함께 우글우글 모여 사는 할로윈 (Halloween) 마을이다.


다음 C 마을. 새하얀 눈으로 덮인 산마을, 빨갛고 노랗고 알록달록한 사탕과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과 장식들, 썰매를 끄는 코가 빨간 사슴, 예쁜 곰돌이 인형들과 장난감 기차들, 분주하게 돌아가는 선물 공장, 열심히 선물 포장을 하는 깜찍한 요정들이 하얀 수염 빨간 제복의 그들의 지도자 뚱뚱보 산타 클로스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사는 크리스마스 (Christmas) 마을이다.


이 두 마을 구성원들이 하는 일이란 "사람들을 놀래킨다. 그리고 즐거워한다" 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공포와 까무러칠 정도의 두려움을 선물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사람들에게 세상 최고의 행복과 사랑과 즐거움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흥미로우면서도 고전적인 설정이다. 대개의 상업 영화가 가지는 영웅과 악당이라는 패러다임과 유사하다. 악당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영웅은 공포의 해소를 통한 행복과 즐거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니까 이 두 마을은 그렇게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영화에서 이 할로윈 마을들의 유령과 악동들은 잔악한 악당보다는 귀여운 악동, 애처로운 고블린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그 이분법적 시각에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이들은 사람들에게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놈들이다. 반면 크리스마스 마을의 요정들과 산타 클로스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본래의 이미지 그대로다.


따라서 이 두 마을 주민의 삶의 목표, 관점, 방식, 철학, 가치관, 인생관, 행복관, 등등등... 모든 것들이 참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두 마을 사이의 왕래 또한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쨌건 통로는 존재하고 입구 또한 산 속 외딴 곳에 분명히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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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 Burton 은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를 바로 이러한 설정에서 출발토록 하고 어떻게 보면 전형적으로 고정된 이 이분법적 설정에 약간의 장난을 시도한다. 할로윈 마을로 하여금 크리스마스를 준비토록 하는 것인데 크리스마스 마을로 하여금 할로윈 데이를 준비토록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는 그렇게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매년 그게 그거인 할로윈 축제에 염증을 느낀 할로윈 마을의 리더 해골 호박대왕 잭 스켈링턴은 뭔가 더 놀랍고 새로운 것이 없을까 고민을 하며 산 속을 헤매다가 크리스마스 마을로 연결되는 입구를 발견하게 되고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을 놀래킬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귀여운 영화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는 거다.

잭은 고민한다.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 "이곳에서는 사람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놀라게 하는 걸까" 잭이 고민하는 이유는 이전의 자신의 방식이 아닌 크리스마스 마을의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제기된다. 유령과 악령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기쁨와 만족으로 인간을 놀래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그래서 잭은 고민에 또 고민을 한다.


결국 잭 스켈링턴은 나름의 해답을 찾게 된다. 그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결정한다. 그래서 우선 락, 샥, 배럴 세 악동들로 하여금 산타 클로스를 할로윈 마을로 유괴 및 감금토록 하고 할로윈 마을의 괴물, 유령, 악귀, 마법사, 귀신들로 하여금 분주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게 한다. 갖가지 기괴한 장난감과 흉칙한 인형을 만들고 하늘을 나는 썰매와 썰매를 끌 해골 사슴도 만들고 잭 본인은 어설픈 산타 클로스처럼 분장을 하기도 한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잭은 해골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 다니며 할로윈 마을에서 정성껏(?) 만든 선물 상자들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자, 아이들과 어른들은 잭이 나누어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과연 기뻐할까?

잭이 아이들이 기뻐하며 놀라겠지 생각하며 신나서 나누어 준 선물들... 하지만 그것들은 실은 여전히 공포와 두려움의 산물일 뿐이다. 왜냐하면 잭은 유령이며 그의 본성이 공포와 두려움이고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서워 해야 하는 본능을 타고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머리만 댕강 남고 잘려나간 몸뚱아리, 잡아 먹으려고 덤벼드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오리 장난감, 크리스마스 트리를 먹어치우는 커다란 뱀... 잭은 이러한 선물들이 아이들을 기쁘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할로윈 마을의 시각으로 크리스마스 마을을 바라본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개 비극으로 끝난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종결되지는 않는다. 우기 부기라는 비밀스런 악의 존재를 만들어 놓고 있으니까.


악당과 영웅, 공포와 구원 같은 이분법적인 틀에서 악당이 영웅이 되고자 하지만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그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양분된 할로윈 마을과 크리스마스 마을 간에 소통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한 쪽은 공포를 주고 다른 한 쪽은 기쁨을 준다. 이것이 오랜 세월 동안 이 세계가 양분되어 굴러 온 방식일지도 모른다.

빈자와 부자, 무지와 지성, 종교와 과학, 전체와 개인, 보수와 진보, 전쟁과 평화, 범죄와 처벌, 보복과 용서... 소통은 어렵다. 부자의 배부름이라는 만족으로 가난한 자의 배고픔의 공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지에서 비롯한 공포의 맹목적인 신앙 또한 지성 및 과학과 양립하기도 쉽지 않다. 잭이 산타 클로스 복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무서운 장난감을 나누어 주는 것은 마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궤변처럼 보이기도 한다. 범죄를 처벌하는 행위 또한 비슷한 모순처럼 보인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은 세상에 나온지 이미 15년도 더 된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능가하는 애니메이션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대니 앨프먼의 음악적 역량이 집대성된 뮤지컬 작품으로 여기며 이 애니메이션의 OST 는 가히 명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난 자꾸 지금 이 어두운 시기를 생각하면 이 영화가 생각난다. 이 나라의 현재 지도자는 실은 할로윈 마을에서 온 무시무시한 어둠과 공포의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인데 마치 자기가 크리스마스 마을의 산타 클로스인냥 변장을 하고는 짠 하고 나타나더니 모든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잡아 먹으려고 쫓아 다니는 무서운 장난감과 몸이 잘려나간 머리통과 커다란 뱀을 나눠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거다. 아니면 우기 부기같이 숨어 있어 드러나지 않는 惡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던지.

블루레이 버전으로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 악몽> 를 보고 나니까 이런 작품은 확실하게 이렇게 봐주어야 할 필요를 확인하게 된다. 참고로 최근 개봉한 <크리스마스 악몽> 은 아직 접하지 못해서 어떻다 말하긴 어렵겠는데 최근 개봉한 <코렐라인과 비밀의 문> 을 연출한 헨리 셀릭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2009년 6월 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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