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미하엘 엔데 (Michael Ende) 의 <Momo 모모> 라는 소설이 세상에 나온다. 3년 전 드라마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단숨에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는데,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시가로 말아 피는 이 회색인간 이야기는 오히려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더 들어맞는 이야기다. 1986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지는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이들을 위한 예술영화'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DVD 로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 독일영화이지만 영어대사이고 자막없는 독어 더빙판만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안젤로 브란두아르디 (Angelo Branduardi) 가 음악을 담당했고, 국내에는 안젤로가 음악을 담당했던 영화 3편의 음악들을 엮은 <Musiche de Film> 으로 나와 있어 이 음반을 통해 <모모>의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 조만간 <모모> 생각할까 한다. 다행히 VHS 는 있어서...

<모모> 이후 중간에 <끝없는 이야기> 를 거쳐, 십여년이 지난 1986년 미하엘 엔데는 <Trödelmarkt der Träume 꿈의 넝마시장> 이라는 시집 (또는 노래가사 모음) 을 발표한다.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의 존재 의미는 뭘까?", "꿈? 그건 또 뭐지?", "인생은 고단한 여행길, 사랑이란 이런거야, 삶과 죽음의 차이, 문명에 대한 비판, 엉터리 세상에 대한 미움" 등에 대한 엔데의 사색을 일종의 작은 서정시같은 우화로 표현하고 있다.

허무하면서도 아득하고, 잔잔하면서도 때로는 강렬한 태도로 인간의 인생을 노래하는 이 이야기들은 문학과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의 발명품인가를 말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보니까 이 <꿈의 넝마시장> 이라는 시집은 국내에서 <초록빛 세상> 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가, 이후 1990년 다시 <조나단 길프씨의 허무한 인생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온 것 같다. 나는 이 버전을 처음으로 접했고 그 이후로도 이 책을 구하려고 꽤 노력했었다.



그리고 동일 내용, 동일 번역에 삽화만 바꾼 <인생> 으로 1999년에 재출간되었다가, 2005년에는 조금 다른 번역에 삽화도 다른, 아예 책의 컨셉 자체를 바꾼 듯한 하드 커버 버전의 <꿈을 낚는 마법사> 로 다시 나오고, 구입한 줄도 모르고 두달 뒤에 다시 소프트 커버를 구입, 결국 똑같은 그러나 조금씩 다른 책을 네 권을 가지게 된 셈인데, <조나단 길프씨...> 는 책을 구할 수가 없어 오래전 도서관에서 빌려 제본을 한 것이기도 하다.


<꿈을 낚는 마법사> 보다는 <조나단 길프씨의 허무한 인생 이야기> 번역 버전이 뭐랄까 더 입에 붙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첫 느낌 여운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에게는 <꿈의 벼룩시장> 보다는 <꿈의 넝마시장> 으로 이 시를 읽는다.


나는 오늘 세상의 끝에 있는 꿈의 넝마시장에 갔다.
거기엔 모든 게 있었다. 쓰다버린 물건, 망가진 물건, 중고품과 고물이 된 꿈의 도구들...
좀구멍이투성이의 양탄자, 때려부순 성상, 별,
변발들, 열쇠가 없는 녹슬고 썩은 공중누각들,
한때 사랑을 받았으나 이제는 머리가 떨어져 나간 인형들......

이 모든 잡동사니 속에서 뜻밖에 나는 우리들의 사랑인 아름다운 꿈을 발견했다.
그 황금빛은 흐려지고 그 모습은 훼손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것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되돌려주고 싶어서 창백한 얼굴의 사내에게 값을 물었다.
그는 이빠진 웃음에 엇기침을 하며 턱도 없이 높은 값을 불렀다.

그 꿈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했지만 나는 계속 값을 깎았다.
그러나 사내는 완강하게 깎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꿈을 되살 수 없었다.
그후, 나는 잘 지내지 못하며 더이상 부자도 못되고 있다.
이렇게 마음이 공허한 적은 나에게 일찍이 없었다.
그 꿈은 팔린 것일까. 그 꿈이 어떻게 그곳까지 갔을까?


중고가 되어 넝마시장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우리들의 '꿈의 값'은 어쩌면 계속 오르는 것일지 모른다. 애초에 그 '꿈'을 넝마시장에 내다 버린 것이 문제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의 꿈, 나는 너무 일찌감치 나의 꿈을 넝마시장에 내다 버려놓고는 간간히 되살려고 시도했지만 올라있는 가격을 보고 번번히 '내려가면 그때 다시' 하고는 내려가기를 기대하며 돌아서곤 했다. 흐흐... 그런데 '꿈의 값'은 내려가지 않는다. 꿈을 발견하는 매순간이 더 비싸지기 전, 의 바로 그 순간이다.

너도 나도 꿈을 버려 왔다. 아니, 버리도록 강요와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러면서 그들 쥐색인간들은 '젊은이들이여, 꿈을 가져라' 해괴망측한 소리를 나불댄다. 누구나 가진 꿈을 넝마시장에 버리게 한 다음, 몇개의 악몽만을 시장에 가져다 놓고는 '자 이 꿈을 가지는 자 승리하리라' 꿈의 쟁탈전을 벌이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악몽을 두고 싸우는 동안 나의 꿈은 그렇게 넝마시장에서 '값'이 오르고만 있는 거다.

나는 나의 스무살 결정의 꿈의 번복에 대해 지금도 너무 많이 후회를 한다. 그때 버린 꿈이 지금 넝마시장에 있는데 너무 비싸다. 바보같기는.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부자가 못될까봐 버렸는데 지금 어차피 부자도 못되고 있다. 따라서 그 '꿈'을 되살수도 없다.

나는 지금 스무살들에게 자신의 꿈을 절대로 넝마시장에 버리지 말것을 소원한다. 악몽의 쟁탈전에 자신을 버리지를 말기를 바란다. 그래봐야 결국 부자로 살지 못한다. 아마 높아만 가는 그 중고 '꿈'의 가격만 보며 평생을 한숨짓게 될지 모른다.

2008년 10월 3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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