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하게는 부자 감세 정책이 활성화되고, 국내에서는 저축은행 사태가 시한폭탄처럼 터지고, 경제적 약자들이 직장을 잃고 집을 잃는 비극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 시기에 그 암흑의 핵심을 밝히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작년에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바로 2010년 칸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되고, 2011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찰스 퍼거슨 감독의 <인사이드 잡 Inside Job>(2010) 이다.



리먼 브라더스와 AIG 의 몰락으로 대표되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해 그 원인을 파헤치는 이 작품은, 은행들의 연쇄 도산, 월 스트리트를 비롯한 세계 주식 시장의 폭락, 서브 프라임 론에서 시작하여 연쇄 붕괴된 주택 시장, 아이슬란드의 국가적 파산,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사실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으며, 방조된 사고는 더더욱 아니고, 오히려 교묘하게 의도된 범죄의 결과임을 폭로한다.

맷 데이먼의 차분한 나레이션으로 추악한 진실을 밝혀나가는 이 다큐멘터리는 많은 부분이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터뷰이는 크게 두 편으로 나뉜다. 뒤늦게나마 진실을 말하거나 또는 위험을 미리 경고했던 몇몇 양심있는 인물들이 한 편에 있고, 그 반대편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파렴치한 인물들이 있는데, 후자의 인물들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얄밉고도 뻔뻔해서 정말 화면 속으로 들어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이다.(물론 한 대 때리는 정도로 끝날 일이 절대 아니지만.) 그러나 영화는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면서 후자의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순간에도 내내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며, 사실상 꽤나 복잡한 이야기를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아우르면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오래 전, 지역 기반의 소규모 은행들이 운영되고, 채무와 채권 사이의 관계가 단순하던 시절에는 대부분 위험한 거래를 기피했으며, 금융 종사자들의 소득도 별로 높지 않았었다. 그러나 금융계에서 규제 완화를 통해 예금주, 즉 고객들의 돈으로 투기를 허용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재앙이 싹트기 시작한다. 투자 은행들은 금융 혁신이라고 교묘하게 포장된, 사실은 위험도가 매우 높은 "파생 금융 상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시작했으며, 분석이 불가능할 만큼 복잡하게 고안된 파생 상품들은 금융 시장의 거품을  제어할 수 없이 부풀리고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규제가 줄어들수록, 그리고 시장이 불투명할수록, 무분별한 대출이 남발되고, 자금 세탁, 회계 장부 조작, 세금 탈루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부풀려진, 그리하여 붕괴하여 파국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이 금융 사기극의 결과는 양극단으로 나뉜다. 먼저 손해를 본 사람들을 보자. 수천만 명이 크게는 집을 잃고, 직장을 잃고, 작게는 저축과 주식을 손해보고, 억울하게도 세금까지 (구제 금융으로) 은행들에게 퍼주어야 했다. 국가에서 권유한 대출을 받았던 힘없는 약자들은 가차없는 압류를 당했고, 공무원 연금 펀드의 투자 손실은 선량한 연금 수령자들에게 부과되었다.    

반면에 이 과정에서 이익을 본 사람은 수수료 및 수익을 챙긴 금융 브로커들과 어마어마한 보너스를 지급받은 금융 회사 간부들, 중립성을 지킬 필요가 없는 사기업들에 불과한 신용평가회사들, 무려 3000명에 달하는 경제 로비스트들, 금융계를 지원하는 변호사들, 규제 완화를 적극 주장했던 타락한 경제학자들, 그리고 금융계에 적극 협조한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얻거나, 은밀한 거래의 답례로 고위직에 오르는 혜택을 입었다.(영화에서 소개된 예에 따르면, 사악함과 뻔뻔함의 정도가 높다고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정상적인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 황당한 부당 거래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금융 상품의 위험도를 높이면서 마치 마약에 빠지듯이 도박판을 키웠으며, 심지어는 고객이 돈을 잃으면 돈을 벌게되는 파생 상품까지 개발하여 철저하게 이득을 챙겼던 월 스트리트의 사기꾼들은 쉽게 벌어들인 돈을 흥청망청 소비했다. 금융 규제 완화를 관철시켜서 무리한 합병을 감행하여 은행들의 덩치를 키운 사악한 CEO들은 뻔뻔하게 구제 금융을 요구했으며,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은행이 파산하기 전에 거액을 챙겨서 빠져나가거나, 심지어 파산한 후에도 해고당하기는 커녕 사임 절차를 통해서 퇴직금까지 받았다. 규제를 담당해야 하는 공무원/정치인은 규제 완화를 실시한 후에 금융업계에 스카웃되어 거액을 보상받았다. 파생 상품이 위험을 분산한다고 주장하고, 아이슬란드의 금융 개방에 찬사를 보냈던 경제학자들은 사실은 금융 회사들의 컨설턴트를 겸임하면서 모종의 금전적 보답을 받아왔다.(그들은 여전히 금융 개혁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금융 범죄에 연루된 고위직 인사 중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어떻게 이러한 범죄가 가능한 것인지,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상이 정말 놀랍기만 하다. 안 그래도 제조업의 쇠퇴로 노동 계층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던 미국 사회는, 실업률은 늘고, 중산층은 노동시간이 늘거나 대출이 늘거나 하는 생활고가 심해졌으며,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치솟고, 공립교육의 수준은 추락했으며, 극소수의 고소득 직종에게 수익이 집중되는 경향은 심해졌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지만, 말로는 금융 개혁을 주장하는 오바마 정부 역시 "월 스트리트 정부"이기 때문에 진정한 개혁은 없을 것이라고 영화에서는 단언한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쓰여지고, <인사이드 잡>이 제작되는 저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지만, 금융 마피아라고 부를 수 있는 재계 고위층과 정계의 유착은 학계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힘입어 그 결속력이 점점 공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분노와 암담함이다. 결국 소수의 악당들이 공모한 도박판이자 거대한 사기극이,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연결된 전세계의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금융계의 거물들이 수천억원대의 연봉을 받고 자가용 비행기와 해변의 별장을 늘려나가는 동안, 경제 위기의 영향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손실과 불황을 절망을 안겨주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에는 전 국민이 거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도미니크 스트로스-칸(IMF 총재)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댓가를 치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최소한 이 끔찍한 경제 위기의 원흉인,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CEO들, 경제 관료들, 학자들, 정치인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된다. (일부는 인터뷰를 거부했으며, 일부는 뻔뻔하게 또는 순진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우리나라의 청문회에서 많이 본 적이 있는, 도덕성이나 책임감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양심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익숙한 표정의 후안무치의 범죄자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당장 실행은 어렵더라도 그들의 처벌을 요구해야 하며,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금융 규제 완화는 억제되거나 매우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하며, 금융 관료들과 은행과의 결탁을 끊어야 하고, 금융계와 학계, 언론과의 결속도 끊어야 한다. 불필요한 거품은 점차 줄여나가야 하고, 위험한 거래를 유혹하는 보너스 문화 (소수의 화이트 칼라들이 자신의 업무 능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액수의 보너스를 받아 챙기는)는 지양해야 한다. 인센티브 시스템의 허구성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고 싶다면, TED talk 중에서 다니엘 핑크(Dan Pink) 편을 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아직 <인사이드 잡>을 안 보았다면 꼭 보기를 권한다. 

PS 1. 금융 마피아 중의 한 명이 비공식적으로 했던 발언이 인용되었는데 매우 솔직해서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너무 탐욕스럽기(greedy)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 

PS 2. 찰스 퍼거슨 감독은 위키리크스 창시자인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HBO 제작)


2011년 6월 21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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