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전 바흐의 마태수난곡 전곡 공연 이후, 지난 일요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번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칸타타, 협주곡 등이 단 세 명에 의해 연주되었다. 한 명은 피아노, 한 명은 더블 베이스, 그리고 한 명은 드럼... 단 이 세 악기의 어울림만으로 과연 바흐의 그 역동적이며 풍부한 울림의 음악은 어떻게 표현될지...?

한가지 미리 언급할 것은 이 트리오의 버전을 들으면서 원곡에서의 피아노의 양손이 경쟁하는 푸가의 대위법적 긴장감과 다이나믹함이나 코랄에서 느끼는 웅장한 하모니의 감동 같은 것을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흐 음악의 매력이기도 할 부분이다.)

이 것은 피아노-베이스-드럼의 재즈 트리오를 위한 변주의 하나이고, 따라서 그에 준하는 별도의 미학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재즈 연주를 들으면서 바흐 음악의 매력을 듣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만 재즈 스타일의 변주의 매력을 듣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자크 루시에 트리오 (Jaques Loussier Trio) 다. 자크 루시에는 1934년 프랑스에서 태어 났으니까, 올해로 75세가 된다. 그는 1959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26세부터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트리오를 만들어 <Play Bach no.1> 을 시작으로 1963년 <Play Bach no.4> 까지 일련의 Play Bach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대단한 흥행과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니까, 피아노, 베이스, 드럼 구성의 이 바흐 전문 재즈 트리오는 이미 약 50년 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내한한 바 있다.

70년대 후반까지 활동하다가 Play Bach 프로젝트는 공백기간을 가지게 되고, 바흐 탄생 300주년인 1985년 새로운 멤버로 재결성되면서 그 영역을 넓혀 바흐 이외에도 헨델, 바로크 걸작, 에릭 사티, 비발디, 드뷔시, 베토벤, 쇼팽, 모차르트 등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현대적 감각의 재즈 트리오 구성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남겼다. 고전음악를 재즈 트리오로 들어보고 싶으면 이들의 음악도 괜찮을 것 같다.

1997 년에는 베이스 주자가 한번 더 바뀌고, 이 구성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피아노에 자크 루시에, 드럼에 앙드레 아르피노 (Andre Arpino), 베이스에 베노이트 뒤느아 드 세공작 (Benoit Dunoyer de Segonzac) 이 그 트리오를 이루고 있다. 지난 일요일 연주했던 이들도 이 세명이다.



보통은 이런 걸 잘 안하는데, 이번에는 현장에서 구입한 그들의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모음집 (Goldberg Variations) 에 세 명의 싸인을 받기도 했다. 왼쪽에 있는 사람이 자크 루시에, 가운데가 세공작, 오른쪽이 아르피노.

공연은 1부 45분, 휴식 15분, 2부 45분 구성으로, 1부에서는 BWV 850, BWV 140, BWV 971 에 해당하는 곡들이 연주되었으며, 2부에서는 BWV 1068, BWV 147, BWV 1052 에 해당하는 곡들이 연주되었다. 각각의 세션에서 짧은 곡 2곡에 3악장의 긴 곡 한 곡씩을 연주한 셈이다.

DVD 를 보면 자크 루시에는 다른 공연에서도 그런 것 같은데 한 곡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일어서서 지금 뭘 연주했고, 다음에는 뭘 연주하겠다고 조용조용 설명하고 멤버를 소개한다. 표정은 시종일관 무덤덤한 것이 또한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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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작품 중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BWV 846~869, 870~893> 이라는 작품이 있다. 총 2권 구성으로 한 권에 전주곡 (Prelude) 과 푸가 (Fugue) 의 모음곡이 24곡씩, 그러니까 총 48곡씩의 푸가와 전주곡들이 들어있는 셈이다. 일종의 연습곡 (Etude) 모음집으로 피아노를 즐기며 학습하도록 만든 것이기도 하다. 바흐의 가장 뛰어난 업적 중에 하나라고 한다. 참고로 클라비어는 지금의 피아노의 전신에 해당한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24곡인 이유는 한 옥타브내에 C장조부터 B단조까지 총 24개의 장, 단조가 생길 수 있는데, 그 모든 키에서 한 곡씩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한 곡이 한 조성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자유로운 조바꿈이 들어 있다.

그 래서 보통 피아노를 배울 때, 바하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구약성서와 같다고 하고, 당연히 거쳐야 할 처음이자 최고의 과정으로 여겨진다. 이에 반해 신약성서는 보통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 개 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아들은 베토벤이라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삼위일체다. 바흐(부) - 베토벤(자) - 그리고 피아노(령)...

그중 1권의 5번째곡인 BWV 850 은 순서상으로 D장조가 되는데, (C장조, C단조, C#장조, C#단조에 이어서...) 그 중 푸가 5번 D장조가 1부 공연의 첫 곡이었다. 바흐의 인벤션이나 평균율을 피아노로 연습해봤다면 알겠지만, 평균율을 비롯한 바흐의 피아노 곡들은 그 짜임새가 굉장히 정교하면서 다이나믹하다. 비교적 많고 정확한 연습을 요구하면서도 이들을 연주하는 것은 비교적 즐거운 편에 속한다. <Play Bach no.1> 그러니까 첫 음반의 대부분이 이 평균율 곡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바흐의 작품 중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곡을 몇개 꼽으라면, 아마 "G선상의 아리아"로 알려진 관현악 모음곡 3번 (Orchestral Suites no.3), BWV 1068 의 두번째 곡인 "Air" 와 칸타타 147번 BWV 147 의 6번째곡인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이 빠지지 않는다. 이날 공연에서는 BWV 1068 의 세번째 곡인 "가보트" 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이 2부의 짧은 두 곡으로 연주가 되었다.

춤곡의 하나인 "가보트" 에서는 도입부의 베이스의 그 펑키한 리드와 드럼의 다이나믹이 꽤 일품이다. "Air" 가 좀더 대중적인 선율을 담고 있긴 하나 이런 재즈 트리오 공연에는 펑키함이 더 매력적일 요소이며, 아무래도 "Air" 보다는 춤곡인 "가보트" 가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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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 재즈 트리오의 상업적 성공이 이들이 바흐 음악을 훌륭하게 해석했음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그것은 일단 별개의 문제로 놓아야 할 거다. 이 재즈 트리오의 연주가 좋았다고 바흐의 원곡이 좋아지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과도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접근하는 방식과 감성이 다르다. 전혀 별개의 음악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거다. 가령, 푸가는 그 복잡하고 매우 계산적인 대위법적 매력을 듣는 것이 큰 즐거움이지만, 이 재즈 트리오에서는 그것은 상당히 변형되어 리듬의 다이나믹함이 중요시되는 비교적 현대적 감성에 맞게 편곡되어 있다. 베이스와 피아노, 또는 베이스와 드럼의 대립이 폴리포니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킬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가령 첫 곡의 이름도 푸가 5번으로 되어 있지만, 음악 스타일은 전혀 푸가가 아니다. 그것은 그 푸가의 주요 선율의 테마를 차용한 변주의 하나일 뿐이니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것의 형식이 푸가가 아니라는 것을 꼭 이해하기를...

대위법의 가장 기초 형태인 캐논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데,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곡 캐논 변주는 제목에서도 분명히 "파헬벨 캐논에 대한 변주" 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그 곡의 공식 타이틀은 변주라는 거다. 즉,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바흐 연주는 바흐의 테마에 의한 변주며, 그 변주의 미학으로 그 음악을 들어야 한다.


2008년 3월 25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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