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바로바로 즉결심판을 받아서 죽어 가는 이야기는 의외로 흔치 않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악당의 우두머리는, 특히 직접 액션에 가담하지 않고 최상층부에서 명령만을 내리는 악당 두목은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온갖 나쁜짓을 벌이면서도 막판까지 죽지 않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것은 아마도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다반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Alligator>(1980) 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악인이란 악인은 모두 다 무지막지한 악어 이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극악무도한 악행을 하든, 주인공에게 깐죽거리든, 죄의식을 느끼고 주저하면서 나쁜 짓을 하든 간에 모두 예외없이 처단당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가 등장인물이 조금이라도 재수없게 굴면 "쟤도 곧 죽겠군." 하게 되고, 실제로 예측이 맞아들어 가는 것에 재미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어가 정의의 사도인 것은 또 아니다. 때로는 무고한 일꾼, 형사, 심지어는 어린아이가 희생자가 되기도 하니까.



미국 인디 영화의 대표 기수인 존 세일즈가 각본을 쓴 이 공포영화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의약 회사의 악행을 소재로 한다. 동물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유전자 실험, 불법 사체 유기를 통한 무시무시한 환경 오염, 정치인 매수 등의 온갖 나쁜 짓을 해대는 그들에게 실험실의 강아지들이 짖는 것이 시끄럽다고 성대를 잘라버리는 일은 사소한 범죄로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렇게 동물을 함부로 다루고, 자기 편의대로 시술시켜 버리는 악행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한 일이기에 성대 제거 수술은 결코 작은 악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편의를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양심을 버리는 사람은 다른 악행도 손쉽게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이 이런 위험한 실험을 계속하는 이유는 소위 "유전자 조작 수퍼 카우"를 만들기 위해서라는데, 식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들이 목표가 우스워 보이는 이유는 선진국 사람들이 스테이크 먹는 것을 줄이고 채식을 늘리기만 해도 세계 식량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실험은 뜻하지 않게도 거대한 몸집에 엄청난 식욕을 가진 살인 악어를 탄생시키고, 나머지는 괴수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단순한 줄거리이다. 유독한 물질을 방류함으로써 거대하고 포악한 괴생물체가 탄생한다는 설정 자체만 본다면, 봉준호의 <괴물>(2006) 의 선배 격이 되는 영화가 되겠다.

만들어진 시대를 감안할 때, 악어를 묘사한 특수 효과 및 실사의 사용은 별로 어색하지 않게 연출되었고, 사지가 절단되는 잔인한 장면들이 이어질 때에는 DVD 화질이 조악하다는 것을 고맙게 여기게 된다. 현실에서는 무자비한 인간들에 의해 핸드백 재료로 희생되고 있는 악어지만, 사실 그 외모로 따져본다면, 악어는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을 괴물로 묘사할 경우에 가장 효과적인 동물 중 하나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이빨을 숨긴 채로 그 비정한 눈빛을 번득일 때에 느껴지는 공포감은 꽤나 섬찟하다. 하지만 정의의 구현이 단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더 큰 공포가 아닐까. 인간이 자연에 못된 짓을 할 때마다 즉결심판을 받았더라면, 인류는 지금쯤 멸종 위기에 처해 있겠지만, 문제는 심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니까.

숨은 그림 찾기 하나: 악어가 사는 하수구 벽에 "Harry Lime Lives"라는 낙서가 보이는데, 해리 라임은 <제3의 사나이>(1949) 에서 하수구에서 최후를 맞는 오손 웰즈의 극중 이름이다. 불후의 고전에 경의를 표한 재미난 장면임.


2007년 12월 30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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